▶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7일 2차 정상회담장소인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정말로 그동안 협상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 협상을 중단한 것은 우리가 가진 하나의 옵션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월 27~28일 이틀 동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하 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의지와 기대감을 여러 번 내비쳤으나, 비핵화 방안과 대북제재 완화 등 쟁점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앞으로 북한과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향후 협상에 대한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북한과 협상을 중단한 직후 숙소인 JW 메리어트 호텔로 돌아와 연 기자회견에서 회담이 결렬된 이유를 “북한이 모든 제재를 해제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결렬 이유와 관련해 “영변 핵시설에서 플러스알파(+α)를 원했다.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게 있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영변 핵시설 외에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면서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체계가 빠져 있어서 우리가 합의를 못 했다. (핵) 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들을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월 27일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에서 원탁 식탁에 앉아 만찬을 하고 있다. | 연합
“박차고 나온 게 아니라 해야 할 일 많아”
그동안 북미는 북한이 취하는 비핵화 조처와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처를 둘러싸고 긴 협상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종료되기 전까지 “제재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동결 혹은 폐기 등의 조처를 취하는 대가로 미국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허용,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등 이른바 ‘스몰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결렬됐으나 북한과 좋은 관계를 강조했다. 또 이번 협상 과정에서 아베 일본 총리나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했다고 말해 주변국들과도 의견을 나누었음을 시사했다. 기자회견장에서 ‘(회담장) 분위기가 안 좋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좋은 분위기였다. 회담을 파기하려고 박차고 나온 게 아니라 좋은 분위기로 나왔다. 단순 취소가 아니고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단계별로 남아 있다. 해야 할 일에 대해 서로 입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대통령들이 그동안 북한과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는데, 어떤 경우 8년간 북한과 협상을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우리는 서로 좋아한다. 우리 사이엔 따뜻함이 있었다. 내 생각에 이는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누가 회담 결렬을 선언했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관계는 계속 유지된다. 지난 기간 인질을 미국으로 송환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을 더 안 하고, 로켓 발사도 안 하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믿는다. 그리고 아베 총리와도 얘기를 했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모든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3월 1일 새벽 김 위원장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모든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을 수행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 단계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며 “이런 기회마저 다시 오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의 회담은 둘째 날 확대회담장의 문이 닫힌 이후, 일정이 예정보다 지연되면서 이상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회담 첫날인 2월 27일까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2월 27일 저녁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연 ‘단독회담과 친교 만찬’ 환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사방에 불신과 오해들이 있고, 적대적인 낡은 관행이 우리의 길을 막으려 했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다시 마주 걸어서 260일 만에 하노이까지 왔다”며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한 기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그는 “이런 훌륭한 회담, 훌륭한 상봉이 마련된 것은 각하의 남다른 통 큰 정치적 결단이 안아온(가져온)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진전이 더 빨리 가기를 바라지만 우리 관계는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정말 대단한 경제 잠재력이 있다”며 “위대한 지도자 밑에서 놀라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며, 우리도 그 부분을 많이 돕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8일 단독 정상회담을 마치고 메트로폴 호텔정원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
분위기 급변하며 공동선언 서명식 취소
회담 이튿날 확대회담장 문이 닫힌 뒤부터 일정이 미뤄지며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 정상회담으로 본회담을 시작한 건 28일 오전 8시 55분. 이때까지만 해도 두 정상은 ‘좋은 결과’를 한목소리로 자신했다. 김 위원장은 단독회담 시작과 함께 취재진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오늘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반드시 좋은 성공을 얻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확대회담 모두 발언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의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의 답”이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확대회담이 길어져 11시 55분 예정했던 오찬이 별도의 공지 없이 한 시간 넘게 지연되면서 이상 기류가 감돌았다. 오후 12시 25분 갑자기 “오찬이 30분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정상의 애초 계획이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찬과 공동선언 서명식이 취소됐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호텔에서 대기 중이던 백악관 기자들에게 “협상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30~45분 안에 마무리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메리어트 호텔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인했다.
오후 1시께 백악관 출입 기자들이 기자회견이 열리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차량에 탑승했다. 그로부터 20여 분이 흐른 뒤 두 정상이 회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후 1시 24분께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 차량을 이용해 호텔로 돌아갔고, 같은 시각 김 위원장도 숙소인 멜리아 호텔로 돌아갔다. 이로써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에 이루어진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은 막을 내렸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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