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컬링 국가대표 춘천시청(리틀 팀 킴) 선수들이 2018년 11월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의 ‘후지사와 팀’을 꺾고 정상에 오른 뒤 활짝 웃고 있다.│연합
벌써 1년이 지났다. 전 여자컬링 국가대표 ‘팀 킴’으로 불리는 경북체육회(김경애·김초희·김선영·김영미·김은정)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해 ‘영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갖가지 재미있는 영미 패러디물이 등장했고 ‘팀 킴’은 ‘영미’와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로 이뤄졌다는 코믹한 팩트로 웃음 바이러스가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9개월 뒤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팀 킴’의 웃음 뒤에는 분노와 슬픔이 감춰져 있었다. ‘팀 킴’ 선수들은 2018년 11월, ‘한국 컬링의 대부’로 불리던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 직무대행과 그 일가의 갑질로 상상하지 못할 피해를 봤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딸·아들·사위·조카 대표팀 특혜
문화체육관광부가 경북체육회, 대한체육회와 합동으로 실시한 특정감사 결과 ‘팀 킴’의 호소와 김경두 전 직무대행 일가의 갑질은 거의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팀 킴’ 선수들이 받아야 할 상금과 후원금 9386만 원이 지급되지 않았고, 상금 중 3080만 원은 김경두 전 직무대행 가족이 횡령한 정황도 포착됐다.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욕설과 폭언, 인격 모독을 하고 소포를 먼저 뜯어 보는 등 사생활을 통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들이 언론 인터뷰를 할 때 김경두 전 직무대행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라고 강요했다는 주장도 사실이었다.
김 전 직무대행 일가는 또 해외 전지훈련비, 국내 숙박비를 이중 지급받는 등 국고보조금, 경상북도 보조금 등 약 1900만 원을 부적정하게 집행·정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는 부당하게 집행·정산된 지원금 2억 1191만 원을 환수 조치했다.
국가대표도 사유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경두 전 직무대행은 조카를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채용했고, 사위인 장반석 전 국가대표 믹스더블 감독을 적당한 행정 절차나 근거 없이 트레이너로 계약했다. 딸인 김민정 전 여자컬링 대표팀 감독은 2015년 이후 선수로 활동하지 않았는데 ‘우수 선수’로 영입해 특혜를 줬다.
또 아들 김민찬은 건강상 이유로 군에서 조기 전역했는데도 건강 확인 없이 남자컬링 선수로 계약하고 평창올림픽에 주전으로 뛰게 했으며, 과도한 연봉을 책정하는 편의를 제공했다고 감사반은 조사했다.
국민 세금으로 지은 의성컬링센터도 사유화했다. 컬링장을 운영하면서 부당하게 사용한 돈이 2014년부터 5년간 5억 원에 이르고, 약 4억 원의 의성컬링센터 매출을 적게 신고하거나 의성컬링센터 사용료(약 11억 2870만 원)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등 조세를 포탈한 정황도 적발됐다.
문체부는 김 전 직무대행과 그의 사위인 장반석 전 감독에 대해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보조금 관리법 위반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국세청에 조세 포탈 내용을 통보하기로 했다.
감사 결과를 접한 ‘팀 킴’ 선수들은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상금과 관련해 저희도 의심만 했지 이렇게 많은 금액이 부당하게 취해졌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많이 놀랐다”고 했다. 이어 “계속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행히 ‘팀 킴’은 재기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김경두 전 직무대행 일가의 갑질에 대한 ‘눈물의 호소’ 이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지만 지난 2월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컬링 여자일반부 결승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팀 킴’ 선수들이 2월 12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겨울체육대회 컬링 여자일반부 4강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연합
엎치락뒤치락 명승부 연출
아울러 ‘리틀 팀 킴’ 춘천시청(김민지·김혜린·양태이·김수진), ‘컬스데이’ 경기도청(김은지·엄민지·김수지·설예은·설예지) 등 ‘3강’이 경쟁하며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여자컬링 흥행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춘천시청은 2018년 8월 2018~2019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팀 킴’을 꺾고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2018년 2월 송현고를 갓 졸업한 스무 살 동갑내기로 이뤄진 춘천시청은 시니어 국제대회 데뷔전인 2018년 9월 중국 월드컵 1차전에서 예선 1승 5패로 부진했다. 그러나 11월에 열린 2018 아시아 태평양 컬링선수권 대회에서 값진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리틀 팀 킴’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동메달 팀인 일본의 ‘후지사와 팀’에 3-6으로 밀리다 막판 12-8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리틀 팀 킴’은 이어 2019 컬링월드컵 3차 대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팀이자 개최국 스웨덴(스킵 안나 하셀보리)을 6-4로 제압하고 우승하는 등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스웨덴은 평창올림픽 결승에서 ‘팀 킴’을 꺾고 우승한 팀이다.
이번 겨울체전은 4강전에서 ‘팀 킴’과 ‘리틀 팀 킴’이 맞붙어 눈길을 끌었다. 컬링은 경기 수가 많아 겨울체전 개막 전에 사전 경기로 열렸는데도 컬링 여자일반부 경기는 언론의 큰 관심 속에 치러졌다. 두 팀은 명승부 끝에 연장 11엔드에서야 ‘팀 킴’이 6-5로 이겨 승패가 갈렸다. 아쉽게 진 ‘리틀 팀 킴’은 동메달을 가져갔다. ‘팀 킴’의 새 스킵 김경애는 춘천시청에 대해 “후배들이 좋은 기량을 펼쳐서 잘한 것 같다. 우리는 영상 분석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대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팀 킴’의 결승전 상대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컬링과 걸 그룹 ‘걸스데이’의 합성어인 ‘컬스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끌었던 경기도청이다. 2014년 소치 국가대표와 2018 평창 국가대표의 맞대결로 열린 것이다. 경기도청은 당시 소치 멤버 중 김은지와 엄민지만 남았다. 엄민지는 “그냥 경기도청으로 불리고 싶다”며 새로 정비한 팀으로 새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태극마크 쟁탈전 불꽃 튈 듯
결승전도 명승부였다. ‘컬스데이’는 6-6 동점이던 마지막 10엔드에서 결승점을 뽑아 경북체육회 ‘팀 킴’을 7-6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내며 겨울체전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사실 경기도청 ‘컬스데이’는 그동안 경북체육회 ‘팀 킴’과 국가대표 선발전이나 겨울체전 등에서 자주 마주친 오랜 라이벌 팀이다.
여기에 ‘리틀 팀 킴’ 춘천시청은 오는 5월 월드컵 1, 2, 3차 대회 우승 팀끼리 치르는 ‘왕중왕’전에 출전한다. 이 대회가 끝나면 다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야 한다. 2019~2020 국가대표 선발전인 2019 한국컬링선수권대회는 오는 7월 열리는데 경북체육회, 춘천시청, 경기도청의 치열한 태극마크 쟁탈전이 예상된다.
‘팀 킴’ 김은정은 “우리나라 여자 팀이 많이 성장한 것은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세계 무대에 어느 팀이 나가든 한국이 정상급 실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라이벌 대결로 한층 흥미로운 여자 컬링이 ‘팀 킴’의 눈물을 닦은 뒤 웃음 짓고 있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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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