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제막식에서 김구, 안중근, 유관순 등 순국선열을 재현한 동상 모델들이 행위극을 하고 있다.│한겨레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한반도와 세계 각지 한인 밀집 지역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해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해 저항권을 행사하고, 한민족의 독립을 외친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3·1운동’입니다.
기미년(己未年)에 일어났다 해서 ‘기미 독립선언’이라고도 하는 이 만세운동은 대한민국의 시초가 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됩니다.
당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은 어린 학생들부터 장삼이사까지 남녀노소를 망라했습니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100년 전 독립을 외쳤던 이들의 뜻을 지금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다른 100년을 함께 쓰자고 제안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100년 역사의 의미를 곱씹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휘경여중 역사동아리 이부현(오른쪽) 양과 김진경 양│곽윤섭 기자
팔찌와 배지 직접 만들어 역사 새긴다
휘경여중 역사동아리
“오른손에는 태극기를 높이 들어 용맹함과 의지를, 단단하게 묶은 댕기 머리는 누구와도 맞서 싸워 굴복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표정 없는 얼굴은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용맹함과 정신을 배워보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고 있는 한복 차림의 댕기 머리 소녀. 배지 속 소녀와 질문에 대답하는 교복 입은 소녀들의 얼굴이 묘하게 겹친다. 교복 입은 소녀들은 여성 독립운동가 배지를 만든 서울 휘경여중 역사동아리 멤버 이부현 양과 김진경 양이다.
“여성 독립운동가가 이렇게 많다니…”
시작은 뭐 하나 특별하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 말고도 이렇게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다는 걸 몰랐어요.” 김진경 양의 말처럼 역사동아리 활동을 하기 전에는 모두가 그랬다. 2017년에 역사동아리가 만들어지자 이부현 양과 김진경 양은 멋모르고 함께했다.
지도를 맡은 김고운(32) 역사 교사는 “첫 캠페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기부 팔찌를 만들어 판매했던 것도, 이번 여성 독립운동가 배지도 모두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라며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아이들의 활동이 소문나면서 10여 명으로 시작했던 동아리는 2년 새 휘경여중의 인기 동아리가 되었다”며 대견함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따분한 수업이 아닌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작업한 활동이 재밌었다”는 두 소녀의 말에서 휘경여중 역사동아리 활동의 힘이 보였다. 아직은 어렵고 배울 게 많지만 소녀들의 방식대로 재밌게 역사를 알릴 수 있는 표현 수단이 팔찌와 배지였던 것이다. 여성 독립운동가 배지는 이부현 양 주도로 300개 사전주문 제작방식으로 만들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인근 학교에서도 문의가 들어왔다.
판매 수익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기부
여성 독립운동가 배지 탄생 배경에는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의 도움도 컸다. 이부현 양과 김진경 양은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여성독립운동학교’에 참여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을 들으며 배운 내용을 학교에 돌아와 동아리 부원들과 공유해나갔다. 여성 독립운동가 배지의 판매 수익금 15만 원 전부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에 기부한 배경이다. 이 돈은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에서 추진하는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 건립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두 소녀는 2년간 불태웠던 역사동아리를 후배들에게 맡기고 학교를 떠난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생긴 김진경 양과 능동적으로 일하는 경험을 체득한 창업 꿈나무 이부현 양의 미래에서 역사와 IT의 동거를 잠시 상상했다. 우연에서 비롯된 작은 관심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 작은 ‘배지’에서 미래세대의 희망이 보이는 이유다.
심은하 기자
▶곽윤섭 기자
‘산타 김구’ 등 상상 더해 인간적 모습으로
역사 인물 그래피티 레오다브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남성이 그래피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대형 캔버스에 완성한 작품은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얼굴. 선생의 트레이드마크인 눈과 안경을 모티프로 숫자 100을 형상화했다. 2019년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임을 선포하고 기념하는 의미의 작업이었다.
그래피티의 주인공은 작가 레오다브(LEODAV·본명 최성욱·39). 그는 2013년부터 독립운동가 등 역사 인물을 주제로 그래피티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외벽(유관순, 안창호, 이봉창 등)과 신촌과 이대 후문, 연세대를 잇는 ‘토끼굴(윤동주, 이한열 등)’에 있는 그래피티다.
“아이 태어나자 ‘어른으로서 역할’ 생각”
지금까지 그래피티로 보여준 역사 인물만 20여 명. 이런 특별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건 지난 2013년 태어난 큰아들 최레오(6)의 영향이 컸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니까 역사나 사회, 정치에 대해 관심이 커졌어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른이자 아버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등 생각이 많아졌죠. 마침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도 터졌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래피티로 역사를 알리기로 했죠.”
2013년 9월 28일 정독도서관 외벽에 그린 유관순 열사 그래피티가 시작이었다. 이날은 유관순 열사 서거일.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싶어 되도록 그가 태어났거나 서거한 날에 맞춰 작업했다. 인물이 태어난 날짜와 서거한 날짜도 적었다. 외국인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이름은 영문으로 적었다.
‘지금 살아 계셨으면 뭘 하셨을까’ 등 상상도 더했다. 업적도 중요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 이어폰 꽂은 유관순, 빵을 든 이봉창, 대자보 들고 있는 안중근,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김구가 탄생한 배경이다. “유관순 열사는 당시 학생이었으니 살아 계셨으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지 않았을까요. 안중근 의사는 이 그래피티 작업하던 시기와 연관이 있어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화제였거든요. 살아 계셨으면 이렇게 대자보를 들고 서 계셨을지 몰라요.”
“김구 선생 말씀처럼 문화의 힘 대단”
여러 인물 중 레오다브가 가장 아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산타 김구’. “산타 복장이 어울릴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시죠? 의미요? 우리에게 굉장히 큰 선물을 주려고 노력한 분이잖아요. 김구 선생이 그 옛날 힘든 시기에도 ‘문화의 힘’을 많이 강조하셨거든요. 제가 예술가여서 그런가요. 더 애정이 가요. 지금 우리 민족이 케이팝 등 저력을 보여주는 거 보세요. 선생 말씀처럼 문화의 힘이 정말 대단하죠.”
레오다브는 오는 2월 15일부터 광화문 CKL 스테이지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의 ‘1919 영웅, 2019 콘텐츠로 만나다’ 전시에도 참여한다. 그래피티를 비롯해 독립운동가 아이콘 티셔츠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다른 작가들의 피규어, 휴대전화 케이스, 이모티콘, 웹툰 등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외국에 가면 생활 속에 체게바라, 간디 등 역사 인물 아이콘이 담긴 제품이 많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에도 멋진 분들이 참 많은데 생활 속 아트 상품 등으로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청연 기자
▶곽윤섭 기자
‘불편한 옷’ 편견 깨고 우리 얼 맥 잇는다
한복문화 활동가 권영주 씨
“오늘 의상이요? 유관순 열사 생각하며 입었습니다.”
흰 저고리, 검은 치마. 한 손엔 태극기를 든 한복문화 활동가 권영주(38) 씨가 치마를 펼쳐 보이며 웃었다. “전통한복이에요. 도안은 직접 했고, 제작은 바느질 방에 맡겼죠. 이 한복 입고 ‘플래시 몹’도 많이 했어요. 한복과 우리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옷이라 좋아합니다.”
권 씨는 일상적으로 한복을 입는다. 갖고 있는 한복만 100여 벌. 한복을 좋아하고, 한복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싶어서다. 올해는 이름 앞에 수식이 하나 더 붙었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획소통분과 위원이다.
한복 입고 지구촌 75여 개 도시 누벼
“그간 캠페인, 플래시 몹 등으로 우리 얼이 담긴 한복을 알려왔어요. 한복을 입고 가두 행진을 하고, 아리랑에 맞춰 특별한 동작을 선보이고, 태극기를 흔드는 등 퍼포먼스를 한 건 과거 역사가 현재에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고 곱씹어본 흔적이기도 해요. 제게 한복이 역사 공부를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100년 전 뿌리를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
권 씨와 한복의 인연은 지난 2013년 한 온라인 카페에서 ‘경복궁에서 한복 입고 모이는’ 행사에 참여하며 시작됐다. “약 200명. 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한복을 입고 모일 수 있구나, 감탄했죠. 어릴 때부터 한복을 참 좋아했는데 크면서 명절 때나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행사 덕에 편견이 깨졌죠.”
그 후 비영리단체 ‘한복놀이단’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복 입고 노는’ 행사(플래시 몹·파티·교육 등)를 다양하게 기획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독립운동가와 광복절 등 역사를 주제로 한 행사도 많았다.
2014년에는 한복만 입고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나는 한복이 좋은데 마음속으론 ‘이 옷이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스스로 확신을 가지려고 시작한 프로젝트죠.” 그 후 스페인, 러시아, 네팔 등 20여 개국 75여 개 도시가 추가됐다.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몸에 잘 맞게 입으니 한복은 불편한 옷이 아니었다. 우리 옷을 입었다는 데서 오는 자부심도 더해졌다.
영국 BBC, 플래시 몹 소개하기도
“독립운동가 김구, 유관순은 각각 두루마기,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죠.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 얼을 지키고 싶은 두 분 마음과도 맥이 닿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당시엔 자기 정체성을 숨겨야 해서 한복을 입고 싶어도 못 입은 분들이 있었겠죠.”
2015년부터 권 씨는 네이버 카페 ‘한복여행가(cafe.naver.com/hanboktraveler)’를 이끌고 있다. 2017년 멤버들과 진행한 ‘한복과 꽃’을 주제로 한 플래시 몹은 영국 BBC에도 소개됐다. 오픈 카톡방 90여 명, 카페 1400여 명. 권 씨는 “한복을 좋아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놀랐다. 우리가 한복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며 웃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권 씨는 베트남 사람들과 독립·광복을 주제로 한 행사도 계획 중이다. 3·1절에는 독립운동가처럼 옷을 입고 모이는 행사인 ‘애국지사를 닮다’를 경복궁 근처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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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