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신 여학생 신여성 비로드… 세월 따라 멋따라

2019.01.28 최신호 보기


한복

1900년 전후
<미스터 션샤인>의 멋부림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미국이 조선을 침공한 신미양요가 발생한 1871년 이후 1900~1905년, 열강들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고종황제 시대가 배경이었다. 이 드라마의 의상을 담당한 조상경 감독은 “고애신(김태리)의 의상은 1880~90년대에서 1910년대 개화기 시대에 맞춰 고증을 거쳤다”라며 “당시는 소매 폭이 좁고 동정이 정말 얇았다. 단, 치마 뒷부분은 끌리게 했다. 이것이 당시 한복의 멋 부림 방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한복  ▶사진·자료 제공│대구박물관

1900~1920년대
간소화와 어깨허리
1900년대 이후 한복은 간소하게 변한다.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겨드랑이 아래의 선은 길어졌으며, 깃머리는 둥글게 변했다. 한복의 형태적 변화와 함께 흰색 옷을 금지하고 색깔 있는 옷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복 간소화는 이화학당의 외국인 교사들에 의해 먼저 시도되었다. 우선 가슴을 조여 입어야 하는 띠허리 대신 활동이 자유로운 어깨허리를 치마에 달았고, 이후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또 여성들이 외출할 때 의무처럼 머리에 덮어 썼던 장옷을 벗을 때가 왔다. 1910년 즈음 장옷 대신 우산을 쓰기 시작했다. 우산 혹은 양산은 처음에는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점차 신여성의 상징으로 보편화되었다.

한복  ▶사진·자료 제공│대구박물관

1919년 독립만세운동과 여학생
“만세운동 때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혹시 일본 경찰에 잡혀 모욕당할지 모르니 치마허리 대신 반드시 어깨허리를 만들어 준비해야 해.” 이때를 기억하는 대구 신명여학교 졸업생 김학진 여사의 회고다. 만세를 부를 때 활동성을 높이고, 옷고름이 풀렸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이 아이디어는 근대 한복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한복  ▶사진·자료 제공│대구박물관

1930~1940년대
새 소재와 실용화
신문물의 유입과 생각의 전환은 의복 간소화와 더불어 실용화 경향을 이어갔다. 저고리 길이가 허리선까지 길어지고 품도 커졌으며 진동과 소매통이 둥글고 넓게 변화하면서 편안해졌다. 치마는 하나의 통으로 만들었고 길이가 짧아졌다. 한복의 변화는 옷감 소재에도 적용되었다. 조젯 같은 양장지로 저고리와 치마를 만들었고 모슬린, 서지 같은 모직물과 인견 등 수입 직물을 즐겨 사용하면서 유행을 이끌어갔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신여성과 모던 걸이 있었다. 신여성(新女性)은 1920~1930년대 신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을 뜻한다. 당시에는 서구 대중문화에 빠진 허영에 찬 존재로 묘사되었지만 한복에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드는 변화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다.

한복  ▶사진·자료 제공│대구박물관

1950~1960년대
서양 스타일과 브로치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한복에 서양 스타일이 더해졌다. 저고리 길이가 조금 짧아졌고 앞뒤 길이에 차이를 두었다. 저고리의 도련과 소매의 곡선은 더 둥글게 변화되었고 깃 너비도 넓어졌다. 고름은 리본처럼 묶기도 하고 브로치로 여밈을 대신했다. 한복 주머니 대신 들기 시작한 가방은 1960년대에 이르러 클러치백 형태로 유행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비로드(벨벳) 한복이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이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사라질 수 없는 멋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고급 벨벳 옷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음에도 남색과 자줏빛 비로드 치마와 저고리를 소유하는 것은 큰 자랑거리였다. 결혼식은 신식 스타일로 변했지만 아직 혼례복은 한복을 입었다. 웨딩 한복은 1950~196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1970년대 초부터 예식장 문화가 발달하면서 서양식 웨딩드레스가 대체하게 된다.

한복  ▶사진·자료 제공│대구박물관

1970년대
나들이용 격식 맞춰 장식
1970년대부터 한복의 예복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는 여성이 점점 줄었다. 한복은 나들이 갈 때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만 입었고, 저고리에 브로치를 하고 같은 옷감으로 저고리와 치마를 맞춘 한복을 선호했다. 실용성보다는 장식적인 성격이 강해져서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고름은 넓고 길어졌다. 치마 길이는 길어지고 폭은 에이라인(A-line)에 가까워졌다. 이때 유행한 아리랑 치마저고리는 저고리 고름을 리본형으로 만들고 서양의 드레스처럼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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