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같이’가 어때서? 나 알고 보면 신성해!

2019.01.28 공감 최신호 보기


돼지

꿀꿀! 안녕? 나는 ‘꿀순이’라고 해. 이렇게 인사를 나누게 되어 반가워. 올해가 나와 내 친구들의 해라는 건 다들 알고 있겠지? 그래서 내 얘기를 좀 해볼까 해.
올해는 그냥 돼지의 해가 아니라 ‘황금돼지의 해’야. 그런데 왜 황금돼지의 해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내가 직접 설명해주지!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 열두 띠 동물을 뜻하는 ‘십이지’는 알고 있지? 옛날에는 십이지와 함께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등 십간(十干)을 조합해 시간과 날을 표현했어. 이를 두고 육십간지 또는 육십갑자라고 불렀지. 십이지와 십간의 조합으로 보면 돼지해는 을(乙)해·정(丁)해·기(己)해·신(辛)해·계(癸)해 이렇게 다섯 번이야.

그런데 왜 올해를 ‘황금돼지의 해’라고 할까? 답은 십간인 ‘기(己)’에 숨어 있어. 한국인들은 전통 색상을 다섯 가지(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로 나눴거든. 그걸 ‘오방색’이라고 하는데 십간 중 무(戊)와 기(己)는 오방색 가운데 황(黃), 즉 ‘노란색’을 상징해. 그래서 올해는 원래 ‘노란 돼지의 해’가 돼야 하는데 노란색 중에서도 최고는 황금이라 ‘황금돼지의 해’로 부르게 됐다고 해.

돼지

‘기(己)’가 노란색이라 황금돼지해
나와 같은 돼지들은 언제부터 이 땅에 살기 시작한 걸까? 나도 정확히 모르지만 신석기 유적지에서 멧돼지 화석과 뼈, 이빨 등이 나온 걸로 봐서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여러분과 함께 살았던 것 같아.
나는 사람들하고 매우 친밀한 동물로 알려져 있어.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만 봐도 알 수 있지. 가(家)는 지붕(?) 밑에 돼지(豕)가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거든. 지금도 전북 남원 지역과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중국 산둥(山東)성 등지에는 친환경적 돼지 변소인 ‘돗통시’가 남아 있다고 들었어.
나는 예로부터 하늘에 바치는 신성한 제물이기도 했어. 그래서 어떤 집에서는 나를 따로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

우리 돼지 선조 중에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돼지들도 있었어. 대표적인 일화 하나만 얘기해줄게. 혹시 고려의 도읍지였던 송악(개성)이 우리 선조가 잡아준 명당터였다는 사실 알아?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중국으로 가기 위해 서해를 건너던 중 용왕 부탁으로 여우를 죽인 적이 있어. 용왕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작제건을 사위로 맞았지. 작제건은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때 돼지까지 얻어서 왔어. 그런데 작제건이 고향 집에 와서 돼지를 우리에 넣으려고 하자 돼지가 도망쳐버렸어. 어딜 갔냐고? 명당인 송악 남쪽 기슭에 갔던 거야. 하는 수 없이 작제건은 돼지가 누운 곳에 집을 짓고 살았어. 여기가 바로 훗날 고려의 도읍지 송악이야. 조선시대 궁궐이나 사찰의 추녀마루를 보면 우리 돼지 중에서도 잘 알려진 저팔계 잡상도 볼 수 있을 거야. 잡상은 궁궐 같은 큰 건축물을 지으면서 재앙이나 악귀를 쫓기 위해 추녀마루에 다는 대칭 모양의 장식이야.

돼지  ▶지난 1월 18일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국립민속박물관 ‘행복한 돼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곽윤섭 기자

많이 먹고 살쪘다고? 그것도 오해
“새해에는 돼지꿈 꾸세요!” 사람들이 이런 덕담 나누는 걸 자주 봤어. 내 꿈을 꾸고 복권을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 내 꿈이 용꿈과 더불어 길몽, 즉 좋은 일을 몰고 오는 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야.
옛날에 자손이 귀한 집에서 아들을 낳으면 열 살이 될 때까지 ‘돼지야~’라고 불렀어. 나는 새끼를 낳을 때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낳거든. 나처럼 자손이 번창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 것 같아. 그런데 말이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참 많더라. 그래서 속상할 때도 있어. 솔직하게 얘기를 해볼게.

“돼지? 더럽지 않아?” 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당신은 얼마나 깨끗하냐?”고 묻고 싶어.
사실 나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깨끗한 편이야. 나는 잠자는 장소와 대소변 보는 장소를 구분해서 쓰는 습성이 있거든. 대소변 보는 곳을 따로 만들어주면 냄새를 맡고 그곳에서만 볼일을 보지. 대소변 보는 장소가 아닌 곳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해.

“돼지같이 먹기만 하고 살만 쪄서 어쩌니….” 어떤 부모가 살찐 자녀한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어. 근데 이것도 큰 오해야. 나는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야. 일정한 양만 먹으면 그 이상 먹지 않지. 대부분 농가에서 우리에게 사료를 무제한으로 과도하게 먹여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돼지들은 정량을 지키면서 먹어.

돼지  ▶국립민속박물관 ‘행복한 돼지’ 전시장에 걸려 있는 1970~80년대 이발소 그림│국립민속박물관

엄마 젖꼭지도 내거 따로 있어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머리도 좋은 편이야. IQ가 얼마냐고? 75~85 정도야. 개들은 보통 60이거든. 그 친구들보다 머리가 좋지. 인간으로 치면 3~4세 아이 지능과 비슷할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해줄까? 새끼 돼지들한테는 각자 무는 젖꼭지가 정해져 있어. 돼지는 한 번에 열 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데, 그렇게 많은 새끼들이 한꺼번에 젖을 먹으면서도 절대 다른 형제가 물었던 젖꼭지를 무는 일은 없지. 어미가 몸의 방향을 바꿔도 마찬가지야. 왜 똑같은 젖꼭지만 빠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새끼인데도 자기가 물었던 젖꼭지를 잊지 않는다니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의미 아닐까?

돼지띠 해에 태어난 사람 중에 우리가 알 만한 사람들로는 누가 있냐고?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조선 여류 시인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린 허난설헌 등이 대표적이지.
유명 방송인 중에도 돼지띠가 많아. 1935년생 배우 이순재, 1947년생 가수 나훈아, 배우 윤여정, 1959년생 가수 이문세, 인순이, 1971년생 배우 고현정, 김남주, 오연수 등이 대표적이지. 젊은 가수나 배우 중에서는 1983년생 배우 정유미, 가수 손담비, 1995년생 가수 설현, 방탄소년단 뷔와 지민 등도 돼지띠로 알려져 있어.

내가 사는 동물복지 농장처럼 모든 돼지들이 행복하길
올해부터는 우리 돼지들도 아주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사실 나 말고 대다수 친구들은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거든. 아까 말한 것처럼 돼지들은 자는 곳과 용변 보는 곳을 구분해주면 깨끗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들은 많지 않지. 나 같은 어미 돼지들은 ‘스톨(stall)’이라 부르는 폭 60~75cm의 좁은 쇠틀에 갇혀 3~4년간 오로지 새끼 낳는 일만 하다 죽는 경우도 많아. 좌우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쇠틀에 갇혀 온종일 생활하고 새끼까지 낳는다고 생각해 봐. 끔찍하지?

다행히 나는 내 친구들과 달리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내가 사는 곳은 경남 거창에 있는 동물복지 농장이거든. 동물복지가 뭐냐고? 동물이 가진 기본적 습성을 존중하는 걸 말해. 가축이 타고난 삶의 방식을 유지하게 하는 거지. 제발 다른 돼지 친구들도 이런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2019년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여러분이 나와 내 친구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어떤 동물인지, 어떨 때 고통을 받는지, 언제 즐거워하는지 말이야. 나는 여러분의 동물 친구잖아.
여러분! 황금돼지의 해, 나 닮은 복 많이 받아. 그리고 우리 돼지 친구들도 복 많이 받자! 꿀꿀~.

김청연 기자

참고자료│<동물민속학자가 들려주는 열두 때 이야기>(리젬). <열두 띠 열두 동물 이야기>(상서각). <돼지, 오해하면 안 ‘돼지’>(농촌진흥청)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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