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선의 믿음의 배신

2019.01.28 최신호 보기


재활용  ▶게티이미지뱅크

“그거 그냥 버리세요.” 친환경을 표방하는 모 협동조합 매장에 제품 빈 병을 가져다주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빈 병을 재활용한다기에 그간 모아놓은 병들을 세척해 갖고 갔는데, 병에 붙어 있는 제품 스티커 때문에 이대로는 재활용할 수 없다고 했다. 가내수공업으로 배운 기술을 재활용해야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업을 도운 경험을 살려 절차탁마의 심정으로 손톱을 갈아가며 현장에서 가까스로 스티커를 떼어냈다.
“그거 그냥 버리세요.” 내 귀에 앵무새가 살고 있나. 다시 돌아온 건 칭찬 대신 친절한 절망. 이번에는 스티커를 떼어낸 곳에 접착제 흔적이 남아 있어 여전히 재활용이 어렵다고 했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이유라면 애초에 잘 떨어지지도 않는 접착제는 왜 쓴 것이며, 재활용은 왜 한다고 했는가. 협동조합 측에서 추가로 세척 작업을 하면 재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 오히려 버리기를 독려했다. 쉬운 방법이었지만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말하지만,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의의 폐기는 모두에게 일어나고 만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대부분은 재활용되는 줄 알았다. 무지의 소치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배신이기도 하다. 재활용 쓰레기는 상당 부분 일반 쓰레기와 함께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국가별로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과 비율은 다르지만, 일상에서 흔히 보는 종이컵, 특히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은 10%가 채 안 된다. 그렇다면 그 많던 플라스틱은 누가 다 먹었을까. 결국 사람이 먹었다. 사람은 플라스틱을 버렸지만, 플라스틱은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
사소해 보였던 문제가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버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소각과 매립은 쓰레기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쓰레기의 형태만을 변환할 뿐이다. 그것은 다시 대지로 환원된다. 미세 플라스틱, 미세먼지, 미생물(바이러스)의 전면적 대두는 우리가 쓰레기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매일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재활용 쓰레기 문제는 서로 다른 층위의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이야기다. 밖에서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공기청정기를 상시로 쓰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화력발전소를 가동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마스크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다.

작은 것들의 역습을 막아내기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너무 크다. 그래서일까. 지구를 대체할 곳을 찾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이유가. 생각한다. 우주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의 기술을 보유한 인류가, 왜 지구의 모순 해결을 주저하는지. 왜 죽어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방치하는지. 단지 비용 문제라면 우주 개발도 만만치 않은 것 아닌가.
얼마 전 미국의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가 화성에 안착했다. 탐사선이 지구로 보내온 첫 번째 사진은 공교롭게도 렌즈에 먼지가 잔뜩 낀 사진이었다. 우주에 탐사선을 보낼 기술이 있어도 렌즈에 먼지가 끼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지구에서는 고성능 카메라 없이도 눈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탐사선이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복귀했을 때, 그것은 고철이 될까, 역사적 사료가 될까. 재활용은 중요하다.

우희덕 서울 금천구 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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