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보고 책 읽고 동네 사랑방

2019.01.28 최신호 보기

문화  ▶강미옥 관장이 청조갤러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집에 들어서면 주인은 없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다
사진 공짜, 커피 2000원, 수다 무한
사진가이자 시인인 강미옥 관장
국수 먹으러 왔다가 세 나와 바로 계약
매듭·자수 등 문화 강좌도 열 계획

“집 근처에 이런 좋은 공간이 있어 너무 좋아요. 자유롭게 앉아서 수다 떨고 차 마시며 좋아하는 자수 놓으니 정말 행복하네요.”
“친구와 차 한잔하고 멋진 사진도 보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영원히 이 자리에 있길.”
손님들이 갤러리 방명록에 남긴 글들이다.

이곳은 경남 양산시 교동에 자리한 무인 북카페이자, 사진 전시도 열리는 청조갤러리다. 청조갤러리의 관장 강미옥(55) 씨는 지난해 6월 이곳에 갤러리 문을 열었다. 지난 1월 8일, 인구 34만 명의 도시 양산시의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 한 귀퉁이에 있는 청조갤러리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 주인이나 종업원의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은 들리지 않고 ‘사진 전시장 관람 무료, 북카페 이용 시 기본(커피, 음료) 1인 2000원을 투입구에 내고 이용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2000원을 종이 상자에 넣고, 원두커피 기계에서 아메리카노 등 다섯 가지 커피 음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갤러리 겸 카페를 둘러봤다. 1월 현재 청조갤러리에는 ‘모래 조각가 김길만 모래인생 30년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쪽 공간엔 20여 명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원목 좌탁 3개가 놓여 있고, 다른 쪽 공간엔 사진 작품이 걸린 전시 공간이 있었다.

문화  ▶지난해 10월 인근 학교 학생들이 청조갤러리를 찾아 독서실처럼 공부하는 모습│청조갤러리

집주인이 최고 애호가이자 단골손님
사진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강 관장은 어떻게 갤러리를 열게 되었을까? 강 관장이 고등학교 시절 강영환 시인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강 관장은, 그러나 20대 중반에 결혼하면서 직장 일과 가정을 같이 돌보느라 10년 넘게 문학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었다. 20년 전 양산으로 이사 온 무렵 <양산시보>에 글을 하나 보냈는데 덜컥 실렸다. 지역 문학회에서 연락이 왔고 잊고 있던 문학과 다시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한 10년 전에 전남 순천으로 문학 기행을 갔는데 거기 동행했던 사진작가 한 명이 카페에 올린 사진을 보고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면서 바로 중고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다고 한다. “뭐든 선뜻 잘 뛰어든다”라고 강 관장은 말했다. 그러곤 주말마다 방방곡곡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시와 사진에 몰입했다. 현재 강 관장은 삽량문학회 편집장으로 디지털 사진과 시가 결합된 ‘디카시’를 지역 신문에 연재 중이다.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2017년엔 디카 시집 <기억의 그늘>(눈빛출판사)을 내기도 했다.

“우리 같은 시인이나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북카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양산에 마땅한 사진 전시 공간이 없다는 것도 오래전부터 아쉬웠다. 계절별로 무더위나 추위,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쉼터, 동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쓰일 수 있는 역할도 할 수 있는 갤러리 겸 북카페를 열려고 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국수를 먹으러 왔다 (당시 이곳은 인기 있는 국숫집이었다) 자리가 나왔다는 쪽지를 보고 바로 집주인을 만났다. 가격도 맞았고 뒤에 마당도 있고 옥상정원도 좋았다. 하루 만에 결정했다. 오늘 못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라고 강 관장이 기억을 떠올렸다. 마침 근처에 살면서 자주 갤러리를 찾는 집주인 황금출(71) 씨가 마실 나오듯 들어섰다. 황 씨는 “그때 가게를 보러 온 강 관장의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이런 사람이라면 세를 줘도 될 것 같았다. 북카페 겸 갤러리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었는데 이럭저럭 세월이 흘러가버렸다. 나이가 있으니…. 이제 옆에서 이 집을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임대료 올릴 일 없으니 이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하시라”라고 덕담을 했다. 황 씨는 갤러리가 문을 연 이후 가장 열렬한 애호가이자 후원자,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는 강 관장이 바쁜 날이면 갤러리 문을 대신 열거나 닫기도 하고 청소를 해주기도 한다.

문화  ▶강미옥 관장은 사진가이기도 하다. 1월 9일 오전 양산시 명동공원에서 모래조각 작업을 하는 김길만 작가를 촬영하는 강 관장

“눈치 안 봐도 되고 부담 없어”
이날 저녁에는 갤러리에서 ‘김길만 모래인생 30년 사진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민경윤 양산시 학부모연합회 회장에게 청조갤러리를 자주 이용하는지 물었다. 민 회장은 “단골이다. 양산에 64개 학교가 있고 그 회장님들, 그러니까 학부모를 만날 일이 많은데 찻집이나 어딜 가든 두세 시간 넘게 학생들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 지난해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곤 너무 좋았다. 우선 찻값이 싸다. 요즘 ‘밥값보다 커피값’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긴 5명이 와도 만 원이면 된다. 게다가 초등학생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에게 일반 커피숍은 눈치가 보이는데 여긴 그런 게 없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간식을 먹고 작품도 구경하며 왔다 갔다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우리 집 딸(김유빈·고3)이 갤러리에 온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하더라. ‘여긴 커피숍도 아니고 사랑방, 옆집, 이모 집 같다. 동네 아는 누구네 집에 갔는데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더라.’ 엄마들이 아주 편히 이 집에 온다. 일반 카페와 다르게 별로 꾸미지 않고 양치만 하고 와도 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문화  ▶지난 1월 8일 저녁 사진전 개막식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모래 조각가 김길만 씨의 직장 동료, 동네 주민들이 전시를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하루 손님 10명 “유지비는 돼 시름 덜어”
개막식 손님들이 모두 갤러리를 떠난 뒤 다시 강 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처음에 전광석화처럼 갤러리를 준비하면서 내심 걱정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북카페다.” 2000원짜리 차 손님 받아서 임대료는커녕 전기요금이나 빠질까 싶었단다. 인테리어 비용에 이것저것 합쳐 초기 비용만 1000만 원이 들었다. 수업료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첫 두 달은 하루에 손님이 한 사람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강 관장은 “밤에 잠이 잘 안 오더라.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남들한테 이거 한다고 해놓고 ‘봐라. 결국 문 닫았네’라는 말은 듣기 싫었다. 그러다 동네 손님들이 남긴 방명록을 하나씩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라고 했다.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 그리고 하루에 몇 명이나 오는지 물었다. 그는 “평일 낮에 올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주부들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주말이나 저녁에 온다. 인근에 양산여고 등 학교가 세 곳이나 있어 학생들이 독서실 삼아 꽤 온다. 여름엔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니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어른, 아이 합쳐 하루에 열 명은 오는 것 같다. 가끔 단체 손님이 모임 뒤풀이로 차 마시러 오기도 한다. 이젠 가게 유지비 정도는 나오는 거 같아 시름을 덜었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 무인 카페인데 혹시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을까? 강 관장이 에피소드를 말했다. 한번은 어른 3명이 커피 3잔에 간식 1인분 해서 8000원어치를 드시는 걸 봤다. 그 팀이 오기 직전에 돈통을 비우고 외출했기 때문에 혹시 싶어서 확인해보니 4000원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산하고 드시는 거냐?” 물으니 했다는 것이다. 돈통 이야기를 했더니 “잔돈이 없었다”면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 말았다.

그래도 학생들은 착하더라. 한번은 방명록에 “내일 와서 갚겠다”고 적혀 있었다. 다음 날에 와서 돈통에 돈을 넣었는지 확인하진 않았다. 강 관장은 “무인으로 하기로 했으니 양심에 맡긴다. CCTV가 돌아가긴 하지만 아직 전시된 작품이나 비치된 책이 분실된 적은 한 번도 없어 CCTV를 확인하진 않았다. 내 생각에 가끔 입장료 안 내고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입장료 안 내고 커피 마시는 사람이 10%는 되는 듯한데 뭐 어쩌겠나. 그러려니 한다. 처음 온 학생들에겐 카페 사용 설명을 꼭 해준다. 2000원 내고 하루 종일 놀다 가도 좋다. 그런데 2000원을 안 받기 시작하면 이곳을 찾는 다른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는 모양이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학생들의 경우 5명이 와서 3잔 마시고 공부하기도 하는데 역시 그러려니 한다”라고 했다.

“사진과 문학 강의 땐 무료 제공”
앞으로 계획에 대해 강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방과 카페, 갤러리 기능은 유지하면서 문화 강좌의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현애 강사님을 모셔서 전통 매듭, 천연 염색, 야생화 자수 등 전통 수공예 수업 장소로 활용하려고 준비 중이다. 사진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강의를 열겠다면 무상으로 대여해줄 생각이다. 올해 가을쯤엔 포트폴리오를 공모해 선정된 한두 명의 작가들에게 초대전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지난해 내가 갤러리를 열던 때가 장미꽃이 만개했을 무렵이다. 봄이 오고 곧 5월이 되면 갤러리 앞 공원의 장미꽃이 멋지다. 청조갤러리를 많이 이용하시라.”

양산/글·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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