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남북 단일팀 코리아 ‘아리랑 슛’, 졌지만 이겼다

2019.01.28 공감 최신호 보기


핸드볼  ▶남자 핸드볼 남북 단일팀이 1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26회 국제핸드볼연맹(IHF) 독일-덴마크 세계선수권대회 독일과의 개막전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대한핸드볼협회

베를린공항 북측 선수단 마중 대한핸드볼협회 관계자 “울컥”
단일팀이 치르는 조별리그 A조 세계 랭킹 1, 4, 5, 6위 강호 줄줄이
개막전까지 20일, 날마다 지옥훈련 미디어 공개 훈련 30여 매체 북적
독일 개막전 1만 3500석 매진 실수 나와도 남북 서로 토닥토닥
경기할수록 밀고 끌고 손발 척척 2020 도쿄올림픽 기약하며 포옹

지난해 12월 22일 오전(이하 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고 북측 선수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화의 문’이었다. 남측 선수단과 함께 전날 밤 도착해 북측 선수단을 마중 나온 대한핸드볼협회 관계자는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2019 독일-덴마크 세계남자핸드볼 선수권대회(1월 10~27일)에 참가한 남북 단일팀은 남측 16명과 북측 4명 등 선수 20명으로 구성됐다. 코칭스태프는 남측 조영신 감독과 백원철, 강일구, 북측 신명철 코치다.

단일팀이 속한 조별리그 A조는 세계 랭킹 1위이자 개최국 독일과 첫 경기를 치르는 것을 시작으로 러시아(4위), 프랑스(5위), 세르비아(6위), 브라질(27위)과 차례로 맞붙는다. 한국은 19위이고, 북한은 세계 랭킹이 없다. 브라질은 27위지만 2016년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8강까지 오른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더욱이 남측 선수 16명은 세대교체를 단행해 새 얼굴이 많았다. 베테랑 고경수, 박중규, 정의경, 윤시열, 이창우 등이 제외됐고, 기존 선수는 주장 정수영뿐이었다. 사실상 1.5군이었던 셈. 또 단일팀의 의미를 살리려면 기량이 조금 처지더라도 북측 선수들도 기용해야 했다. 조영신 감독의 부담과 고민이 깊어만 갔다.

단일팀은 만나자마자 그날 오후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개최국 독일과의 개막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일. 땀이 흐르고 훈련의 강도가 조금씩 강해지자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하나가 되어갔다.
크리스마스이브이던 12월 24일, 훈련을 마친 단일팀 선수들이 한식으로 회식을 했다.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라 모든 체육관이 문을 닫는다. 덕분에 선수들은 은근히 휴식을 기대했다. 하지만 조영신 감독은 훈련을 강행하기 위해 체육관을 수소문했다. 회식 자리에 다음 날 훈련할 체육관을 확보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선수들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코칭스태프가 준비한 ‘몰래카메라’였다. 선수단은 한바탕 웃었고, 선수들은 크리스마스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혹독한 훈련이 시작됐다. 매일 반복되는 제자리 점프해 박수치기, 엎드렸다 일어나기, 점프해 엎드렸다 뒤로 눕기 등 각 10회 세트로 구성된 몸풀기 서키트에 남북 선수들 모두 비명과 탄식을 질렀다. 이어진 코트 훈련에선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는 선수가 속출할 만큼 땀으로 범벅이 됐다. 조영신 감독의 호통은 남북 선수를 가리지 않았다. “경송아, 빨리 돌아!” “종건아, 집중해!”

핸드볼  ▶남북 단일팀 합동응원 장면│대한핸드볼협회

몰카에 웃고 삼겹살 파티에 함박
훈련을 거듭하며 북측 선수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특히 리경송(22)은 빠른 발과 돌파가 돋보였다. 남북 선수 간 조직력도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떨어졌다. 조영신 감독은 “북측 선수들의 습득력이 아주 빠르다”고 칭찬했다. 선수들도 한결 친해진 모습이다. 남북 선수들이 어울려 몸풀기 족구도 하고, 골 많이 넣기 꿀밤 내기도 했다.
12월 30일 일요일, 1분 1초가 아쉬운 단일팀 선수들은 일요일에도 훈련을 이어갔다. 이날 저녁 단일팀 선수들은 ‘삼겹살 파티’를 했다. 한국 식당에서 돌판에 구워 나온 삼겹살은 선수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이날 선수단이 먹어 치운 삼겹살은 무려 120인분. 협회 관계자는 “잘 싸워준다면야 300인분도 직접 내 손으로 구워서 일일이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2018년 마지막 밤. 베를린은 온통 불꽃 축제로 한 해를 마감하고 있었다. 폭죽이 연신 터지며 하늘로 올라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역사적인 핸드볼 첫 남북 단일팀의 2018년 마지막 날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2019년 새해 시작부터 베를린자유대 코리아학과 학과장인 이은정 교수 부부를 시작으로 단일팀을 응원하는 이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정범구 주독일대사는 선수들과 떡국을 함께했다. 그는 “1월 한 달은 선수단 여러분이 ‘대표 외교관’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베를린에서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한민족의 단합된 힘을 보여달라”고 격려했다.
단일팀을 향한 현지 미디어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1월 4일 미디어 공개 훈련에는 30여 개 매체에서 6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1월 10일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메르세데스 벤츠 경기장은 1만 3500석이 모두 매진됐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까지 자리했다. 남북 공동응원단은 한반도기가 새겨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열띤 응원을 펼쳤다.

21~24위 순위전 일에 극적 역전승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고, 드디어 단일팀의 국가 ‘아리랑’이 연주됐다. 남북 선수 20명은 손을 마주 잡고 공동응원단과 함께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모두들 울컥했고, 응원 나온 현지 교민들도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쳤다. 한국 동포 2세로 한국인 친구들과 경기장을 찾은 이건민(22) 씨는 “할아버지 고향이 북한”이라며 “눈물이 난다. 선수단이 우리 동포들에게도 큰 힘을 준다”고 감격해했다. 북측 응원단 중에는 지난해 6월 베를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8주년 기념 및 판문점 선언 축하 행사에서 북측 합창단으로 나왔던 김진의(14) 군도 눈에 띄었다.

단일팀은 경기 시작 후 첫 공격에서 주장 정수영이 역사적인 단일팀 첫 득점을 올리며 1-0으로 기선을 잡았고, 전반 15분 정도까지 6-8로 팽팽히 맞서며 세계 최강 독일을 당혹스럽게 했다. 북측 선수 리경송은 전반 중반에 교체 투입돼 센터백으로 공격을 조율했으며 후반 20분 득점까지 올렸다. 그러나 경기 초반 김동명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고, 결국 19-30으로 졌다. 사실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북측 동생 리경송이 패스를 놓치고 고개를 떨구자, 남측 형 정수영이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위로했다. 하나 된 코리아. 그것을 이뤄냈다.

경기력도 갈수록 좋아졌다. 세계 4위 러시아에 7골 차로 졌고, 세계 5위 프랑스를 상대로는 전반까지 1점 차 접전을 벌였다. 세계 6위 세르비아에 2골 차로 분패했지만 1만 2000명의 관중은 기립 박수로 코리아 팀을 격려했다. 그리고 마침내 숙적 일본을 상대로 경기 막판 역전극을 펼치며 27-25로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1월 21일, 마침내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30박 31일을 함께한 단일팀 선수들은 서로 진한 포옹을 나누고 눈물을 훔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선수들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단일팀으로 만나자고 기약하며 잡은 손을 놓고 손을 흔들었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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