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3박 4일의 여행은 끝이 났다. 입국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짐을 챙겨 인천공항을 빠져나온다. 새로운 한 해를 앞두고 재충전의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12월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봄날 같은 날씨 속에 캐럴로만 크리스마스를 맞는다는 일본 오키나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발길 닿는 곳 어디든 다녀야지 마음먹었던 시간은 홀연 지나고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기다린다.
오키나와에서는 많은 곳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투어버스를 타고 고래상어가 있다는 추라우미 수족관을 갔고, 자전거를 빌려 12월의 해안을 달리다 느닷없이 만난 해변에 누워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나만의 여행 기술인 ‘골목길 산책’도 빠뜨리지 않았다. 낯선 곳, 타인의 삶을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골목길 산책은 어떤 유명한 관광지보다 깊게 각인되어 오랜 후에도 그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따뜻하고 청명한 날씨에도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솜으로 솜솜이 눈을 만들어 가지마다 장식하던 부부, 베란다 볕 좋은 곳에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 잠을 청하던 남자, 마당에서 동생의 유모차를 끌던 여자아이는 집 안을 훔쳐보던 나를 맞닥뜨리고는 “료코(여행)?” 하고 말을 건넸다. 눈을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아이는 몇 년 전 보았다고 했다. 어디서? 여기 오키나와에서? “그렇다”는 아이의 대답을 넘겨들었으나, 그날 돌아온 숙소에서 오키나와에 2016년 처음으로 눈이 내렸다는 인터넷 검색 정보를 확인하곤 아이의 말을 믿지 않고 등을 돌린 고약한 나를 반성했다.
공항버스 안. 몸은 고단할지언정 나른하고도 편안한 안도감이 몸을 감싼다. 기분 좋은 고단함이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온도, 익숙한 풍경을 보며 나는 여행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멀리 낯선 먼 도시에 왔어도 즐겁지만은 않고 슬몃슬몃 고개를 드는 불안감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일상을 다 버리고 떠나야지 했으면서도 바퀴 소리 요란한 캐리어처럼 여행 내내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일상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여행에서의 마지막 밤 차분히 짐을 정리하고 청하는 잠은 왜 더 달콤할까. 집이 가까워지며 뚜렷해지는 답. 이제야 나는 알겠다.
우리는 돌아와 단단한 저마다의 일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먼 곳에서의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올 익숙한 집과 익숙한 일상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늦은 귀가에도 불을 켜두고 먼 곳에서도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가족. 떠나기 전 정리해둔 대로 잘 자리하고 있는 정든 사물. 잘 쉬고 돌아왔느냐고 반갑게 말을 건네줄 나의 사람들. 그리하여 여행이란 우리의 안온한 일상을 더 깊게 들여다보기 위한 트릭이거나 비밀스러운 행위는 아닐지. 또 악착같이 떠나려는 마음은 또 악착같이 돌아오려는 마음과 동일한 것은 아닐지. 너무 고단하면 잠도 들지 않는다는데 생각만 많아졌다. 오키나와는 멀어지고 나의 집이, 일상이 가까워진다.
박용두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
<위클리 공감>의 ‘감 칼럼’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바를 적은 수필을 전자우편(gonggam@hani.co.kr)으로 보내주세요. 실린 분들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