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직원이 정시퇴근 뒤 둘째 아이 500일 기념 가족파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GS칼텍스
노동시간 단축 시행 6개월이 지난 지금, 해당 사업장 직장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연장근로를 포함한 노동시간 한도를 주 최대 52시간으로 낮추는 노동시간 단축이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약 3500곳을 시작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주 최대 52시간제는 노동자의 근무시간 축소에 따른 소득 감소와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 등을 고려해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보완하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했다. 탄력근로제란 주 52시간 근무를 일주일이 아닌 별도로 정한 2주·3개월 단위로 지키는 제도다.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시차 출퇴근제’ ‘시간선택제’ ‘집약근무제’ 등 유연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주 52시간제와 유연근무제는 직장인들의 인식과 생활에 큰 변화를 주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육아와 자기계발 등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과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GS칼텍스와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체험담을 들어봤다.
▶GS칼텍스 직원들이 사내 컬링대회에서 팀을 이뤄 경기를 펼치고 있다.│GS칼텍스
오후 3시 PC 꺼지고 동호회 준비
오전 9시 20분, 서울 강남구 논현로 GS타워. 출근 시간이 20분 지났는데도 GS칼텍스의 김 차장(39)은 아이를 사내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뒤 여유 있게 회사로 들어선다. 김 차장은 맞벌이며 두 아이의 아빠다. 첫째 아이는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는 사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침이면 전쟁이다. 아내는 가족 식사와 옷을 챙기고 김 차장은 아이들의 등교를 책임진다. 어린이집은 아침 8시부터 등원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는 8시 30분 이후에야 등교가 가능하다. 김 차장은 “아이를 등교시키려면 출근 시간이 30분 정도 늦어져 고민이었다. 마침 탄력근무제가 시행돼 팀장님과 상의했더니 30분 늦게 출근하도록 승인해줬다”고 말했다.
오후 2시 50분, 퇴근 시간이 한참 멀었는데도 차 대리(35)는 목을 푼다며 발성 연습을 시작한다. 3시가 되자 그의 PC는 꺼졌다. 사내 합창 동호회 활동을 하는 차 대리는 “오늘 저녁 대전에서 취약계층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있어 동호회원들과 함께 간다”고 말했다. 출장이나 반차로 처리되느냐고 묻자 둘 다 아니라고 한다. 미리 자신의 근무시간을 날짜별로 조정해뒀기 때문에 정상적인 퇴근이라는 것이다. 차 대리는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오늘 3시간 빨리 퇴근하고 다른 날 1시간씩 더 근무하도록 사전에 맞춰놓고 조직장의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오후 5시 50분, 퇴근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동료들이 하나둘 업무를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반면 김 차장은 퇴근하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남은 업무를 처리한다. 30분 늦게 출근하는 것으로 회사 시스템에 입력해놨기 때문에 김 차장의 PC는 6시 반에 꺼졌다. 아이들을 보고픈 마음에 그는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GS칼텍스는 유연근무제의 일환으로 ‘시차 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육아와 직무상 필요한 직원들이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을 기본으로, 직속 상사와 협의해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육아로 어려움을 겪는 임직원을 위해 사내 어린이집(지예슬)을 운영하고, 어린이집 활용이 어려운 남성 직원들에게도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다.
연 1회 이상 5일 이상 연속 휴가
GS칼텍스는 지난해 5월부터 ‘스마트워킹 타임(Smart Working Time)제’를 도입해 일하는 방식을 개선했다. 직원이 사전에 계획한 근무시간에 맞춰 컴퓨터가 자동 종료되도록 ‘PC 오프(Off)제’를 시행하고 정시 퇴근을 권유하는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안착에는 ‘서류 없는(Paperless) 보고’가 큰 몫을 했다. 구두·온라인·모바일 보고를 활성화하고 회의 주제는 사전에 공지해 1시간 이내에 회의를 마치도록 했다.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업무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휴가 활성화를 위해 결재 권한은 하향 이양했다. 휴가를 변경할 때 조직장의 승인 절차를 폐지하고 본인이 결재해 통보하는 ‘휴가 본인 승인제’를 시행해 휴가 사용과 변경을 쉽게 한 것이다. 연장 근무가 발생하는 조직의 임원에 대해서는 관리 책임을 묻는 ‘근로시간 임원 관리책임제’를 병행해 ‘스마트워킹 타임제’의 실효성을 높였다. 장기 휴가 사용을 꺼리는 관행을 바꾸고 직원들의 재충전을 위해 2주 이상의 리프레시(Refresh) 휴가 사용도 권장한다. 연간 1회 이상 5일 이상의 근무일 연속 휴가와 매달 1회 이상 팀장의 휴가 사용을 의무화해 직원들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GS칼텍스 노사는 지난해 3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합의한 바 있다. 홍보팀 권준오 부장은 “탄력근로제가 워라밸은 물론 업무 집중도 향상과 프로세스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직원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는 최근 논의되는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이 연장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정유회사의 특성상 생산설비 정기보수(TA) 기간 중에는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법에 규정된 근로시간을 준수하기가 매우 버겁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가동 중지(셧다운)나 공정 트러블이 생길 경우 긴급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공단 사내 어린이집 교사가 눈밭에서 아이들의 눈썰매를 끌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국민연금공단
사내 부부로 아이 등·하원 역할 분담
전주 덕진구 국민연금공단 본부. 총무지원실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ㄱ씨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1년간 맞춤형 근무(오전 8시~오후 5시)를 활용했다. 맞춤형 근무는 1일 법정 근무시간(8시간) 범위 안에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일찍 출퇴근하거나, 늦게 출퇴근할 수 있는 제도다. ㄱ씨는 서둘러 복직하는 바람에 만 1세인 아이를 어린이집에 긴 시간 맡겨야 했다. 그는 “늦은 시각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시무룩해진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갈수록 커졌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사내 부부인 남편이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자신은 맞춤형 근무로 일찍 출근한 만큼 빨리 퇴근해 아이를 데려왔다. “1시간이라도 일찍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어 기뻤다. 아이도 좋아하지 않았겠나. 아이가 아직 답변을 정확하게 못 하지만….” ㄱ씨는 어색하게 웃었다. 동료들이 배려해준 덕분에 ‘칼퇴’가 가능했다는 그는 이 제도가 사내에서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유연근무를 활용하는 직원이 매우 적은 본부에 근무했기에 맞춤형 근무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사에는 맞춤형 근무 비율 상한에 걸려 못 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직원은 본사와 지사, 성별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제도를 이용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국민연금공단 목공예 동호회원들이 퇴근 뒤 친환경 재료로 학습용 원목 책상을 만들고 있다. 완성한 책상은 취약계층 어린이들에게 기증된다.│국민연금공단
휴가·연차 안 쓰고도 여행·집안일
국민연금공단 연구원인 30대 남성 ㄴ씨는 집약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다. 집약근무제는 주 40시간을 근무하지만, 1일 8시간 이상 초과근무 하는 대신 일주일에 5일 미만으로 출근하는 제도다. ㄴ씨는 한 달에 한 번 1주 동안 월~목요일은 오전 8시~오후 7시까지 10시간 근무하고, 금요일에는 쉰다. 업무 시간이 유동적인 연구원들이 이 제도를 자주 활용한다.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그는 “근무시간과 업무량은 같지만 출근일이 하루 줄어들다 보니, 해당 주에 처리할 업무의 처리 기한이 임박한 느낌을 받아 스스로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월요일이나 금요일을 쉬니 주말의 활용도도 높아진다. “휴가를 내지 않고도 근거리로 여행을 가거나 밀린 집안일을 할 수 있고, 주말에 충분한 휴식으로 재충전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
역시 연구원인 30대 여성 ㄷ씨도 집약근무제로 한 달에 한 번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쉰다. 그는 “치과 진료나 부모님 병원 동행 등 평일에 처리해야 하는 개인적인 일이 생겼을 때 연차를 따로 쓰지 않고도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집약근무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말과 연이어 2박 3일의 가족 여행을 갈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집약근무 제도는 현재 연구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실별로 인원 비율이 정해져, 개인당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공단의 다른 부서로도 이 제도가 확대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연근무로 일터 얽매이지 않고 업무
군포·의왕지사의 30대 여성 ㄹ씨는 지난해 6개월 동안 오전 9시~오후 2시까지 시간선택제(단시간 근로)를 활용했다. 단시간 근로는 주 40시간보다 적은 20시간이나 30시간(1일 4시간 또는 6시간)을 근무한다. 워킹맘인 그는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심신이 힘들어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단시간 근로를 하면서 삶에 여유가 생기자 가정과 육아에 좀 더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월 단위로 신청할 수 있는 유연근무가 앞으로는 인사철(1월, 7월)에 최소 6개월 단위로 신청 가능하게 하고, 지사의 부족한 인력은 신규 일자리 채용으로 충원이 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현재 부서 인원의 10%로 제한한 단시간 근로가 20%로 상향돼 더 많은 직원이 가족 친화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일과 삶의 조화로운 양립을 위해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수요자 중심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맞춤형 근무와 시간선택제의 신청 요건을 폐지하고 근무 유형을 다양화해 직원들의 활용 기회를 확대했다. 특정한 근무 장소를 정하지 않고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스마트워크 근무제’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9월 현재 전체 직원(6667명)의 약 30%(1994명)가 유연근무제에 참여하고 있다. 국민소통실 윤영섭 부장은 “직원들은 유연근무제 시행 효과로 근무 만족도와 애사심의 향상을 꼽았다”고 설명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직장에서 다양한 근무시간 선택제도를 지원하면 ‘아이 키우기 좋은 일터’가 될 수 있다”면서 “100세 시대에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은 다양한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를 통해 저출산 문제 극복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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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