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전경 | 한겨레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게 오는 2월 10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정확히 3년 전 그날, 정부의 일방적 폐쇄 결정으로 개성공단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그리고 3년여 동안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세월을 보냈다. 올해 안에는 ‘희망 고문’이 끝났으면 하는 게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새해 들어 입주 기업들은 곧 개성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또 한 번 잔뜩 부풀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공업지구에 진출했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라며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 재개 용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제는 북한 당국의 ‘비핵화 조처’와 이에 상응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만 남았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현지에서 생산 활동하던 중소기업은 모두 123곳이다. 이 가운데 사업을 완전히 접은 기업은 지금까지 한 곳도 없다. 10여 곳이 장기휴업 상태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통일부에 등록한 ‘남북협력 사업자’의 지위를 아무도 반환하지 않았다. “30개 안팎의 기업은 베트남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했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어떻게든 회사를 유지하며 개성공단이 문을 열기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봄 중소기업중앙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입주 기업들의 96%가 재입주 의사를 밝혔다. 해외로 나간 기업들까지 포함한 설문조사 결과다. 개성공단의 매력을 경험한 기업이라면 재입주 의사는 확고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김서진 상무의 설명이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성과인 개성공단은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토지와 노동’이 결합한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적 성공 모델이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 따라 개성공단은 생산설비와 부대시설을 더욱 확장한 마스터플랜까지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부침을 거듭하다 2016년 2월부터는 장기 폐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경협 생태계 큰 변화
입주 기업들은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한다면 군사·안보적 변수나 정권의 성향에 따른 외풍을 사전에 철저히 차단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개성공단 같은 민간 경협사업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남북관계의 특수성은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평화체제를 먼저 확고하게 다진 뒤 민간 차원의 다양한 경협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달라진 정책 기조이기도 하다. ‘평화가 경제다’라는 구호에 깔린 인식은, 항구적 평화체제를 지속가능한 경제협력과 공동 번영의 전제 조건으로 보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재가동할 경우 남북 경협사업의 생태계는 확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주변 정세의 호전에서 비롯된 변화이다. 중소기업계는 이런 생태계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해 7월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중소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남북경협 재개 시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49.5%나 나왔다. 북한의 풍부한 노동력과 값싼 임금, 원활한 의사소통, 중국 동북3성과 극동 러시아 등 신시장 부상 등이 남북경협 참여의 주요 이점으로 꼽혔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은 의류, 신발, 완구, 전자부품 등 대부분 영세 제조업이다. 남쪽에서 원부자재를 조달해 북쪽의 값싼 임금을 활용하는 임가공 사업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이런 단선적인 사업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개성공단처럼 비용이 적게 드는 북의 생산기지는 남쪽의 영세 제조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고 국내 산업기반과 일자리의 국외 유출을 막게 하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영세 제조업의 고비용·저수익 구조는 개성공단 하나만으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렵고 임금이나 토지 사용 비용이 적게 든다는 매력도 북한의 경제발전에 따라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다.
“값싼 생산기지 아닌 시장 잠재력 봐야”
따라서 새로운 남북경협 시대에는 국내 제조업의 진출 지역을 좀 더 넓히고 방식과 형태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다양한 형태의 제2, 제3의 개성공단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의 홍순직 수석 연구위원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개발 전략은 지역별 특색에 맞는 산업을 여러 곳에 조성하면서 인민경제의 생필품 소비수요를 충족시켜줄 시장화의 촉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북한을 단순히 값싼 생산기지가 아니라 잠재력이 큰 시장의 하나로 보고 우리 기업들은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성, 신의주, 나진·선봉 등 기존의 대규모 경제특구 지역에서 수출 임가공업 중심으로 진출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북한의 지역별 생활밀착형 수요를 살펴보자는 얘기이다. 북한 내 취약한 생산 토대의 개선과 현대화에 참여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도 중소기업이 남북경협의 기반을 탄탄히 할 수 있는 사업이다.
남한의 중소 제조업이 진출할 1차 후보 지역으로는, 북한 당국이 2013년에 발표한 21개 경제개발구가 우선 거론된다. 이 가운데 북·중 접경권의 위원경제개발구와 혜산경제개발구, 서해권의 송림수출가공구, 와우도수출가공구, 동해권의 현동과 흥남 공업개발구, 청진경제개발구 등은 원부자재 조달 여건과 판로가 비교적 안정적인 제조업 후보 단지로 꼽히고 있다. 북의 여러 지역에서 제조하는 상품은 남북 간 생산 연계와 분업을 강화하면서도 북한의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대외 교역과 시장경제의 경험을 쌓게 하는 학습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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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