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날짜·이름으로 만나보는 임시정부 이야기
‘3·1운동’의 전개로 국내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선 우리만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민족을 하나로 모으고 독립운동을 이끌어 나갈 지도부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것이죠. 그 뜻이 모여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가 탄생합니다.
임정의 탄생은 약 50년에 걸친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의 시작, 임정을 4개 열쇠말로 만나봅니다.
상하이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외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대한민국의 첫 집은 중국 상하이에 세워졌습니다. 국내도 있고, 해외에도 여러 곳이 있는데 왜 하필 상하이였을까요?
3·1운동 직후 국내외에는 모두 8개 임시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이 가운데 연해주 대한국민회의, 국내 한성정부 그리고 상하이 임시정부 등이 수립 주체와 과정이 명확하고 실질적인 기반을 갖춘 임시정부였습니다. 한데 이 세 곳이 지역적 기반, 인적 구성 등이 각기 다른 탓에 통합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한성은 국내여서 행정 관리, 독립운동 전파 등이 쉽지만 일제 감시와 간섭 등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러시아 연해주는 한인이 많이 거주하고 국경도 가까웠지만 청일·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영사관과 경찰관서를 설치해둬 우리 임정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데는 큰 부담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상하이는 해상교통의 요지였습니다. 다수 독립운동가들이 망명해 있었고요. 또한 조계(租界, 청나라(이후의 중화민국)에 있었던 외국인이 행정자치권이나 치외법권을 갖고 거주한 조차지)도 있어 일본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1919년 4월 11일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구성원. 돌베개 제공
1919년 4월 10일 밤 10시. 현순, 손정도, 이동녕, 조소앙, 여운형 등 29명이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 진션푸루의 한 양식 주택(현순의 자택)에 모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임시국회와 같은 ‘임시의정원’(이하 의정원)을 설립하기로 합의합니다. 밤새 이어진 제1회 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나라의 이름), 국체(국가 형태), 임시헌장 등이 채택·제정됩니다.
전문(全文) 10조로 이루어진 임시헌장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국체를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구 황실을 우대한다고 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유엔(국제연합)의 전신인 국제연맹에 가입한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4월 11일은 이렇게 대한민국 국가와 그 체제가 만들어진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정 ‘선포일’(4월 13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로 기념했습니다.
4월 11일이 임정 수립 기념일이라는 근거는 많습니다. <한민>(독립운동단체 기관지) 17, 18호 기사에는 ‘임시정부가 4월 11일에 정부 수립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나옵니다. 1937년 이후 4월 11일에 임정 기념식이 수차례 시행된 기록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1919년 9월 11일 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법.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제정한 기존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내용을 대폭 보강한 것이다. 임시헌법에도 국호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으로 적혀 있다. 돌베개 제공
1919년 4월 11일 첫 의정원 회의에서 가장 먼저 정한 것은 ‘국호’였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먼저 제안한 이는 신석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찬반이 나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의정원 회의에 참석한 여운형의 전기를 보면 당시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국호는…대한민국으로 낙착되었다. 그렇게 결정될 때까지 상당한 격론이 거듭됐다. 대한민국 외에 조선 또는 고려공화국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은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국호로서 그 대한 때문에 우리는 망했다. 일본에게 합병되어버린 망한 나라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석우를 비롯해 ‘대한’을 주장한 사람들은 “대한은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일본으로부터 되찾아 독립했다는 의의를 살리자”는 논리를 펼친 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국호에 ‘민국’을 붙였을까요? 학자들은 1917년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한 <대동단결선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선언은 1917년 14명 독립운동가가 상하이에서 발표한 것으로 군주가 포기한 주권을 국민이 계승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선언에 비춰봤을 때 대한제국의 ‘제’를 ‘민’으로 바꾼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 권리를 행사하는 나라’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100주년
▶지난해 12월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제막식에서 김구, 안중근, 유관순 등 순국선열을 재현한 동상 모델들이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한겨레>기자
올해는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부는 100주년을 모든 국민들이 함께 기념할 수 있도록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식 행사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문화축제로 개최합니다. 클래식·국악 공연, 시대별 대표 K-pop 공연, 근현대사 미디어아트 및 평화의 빛 점등을 통해 국민들이 역사와 미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문화콘텐츠도 선보입니다. 한말 의병 활동을 소재로 하는 대형 창극 ‘호남의병 혈전기’ 제작(전라남도) 및 일제 식민지 치하 저항시인 4인(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는 ‘우국시인 현창 문학제’(대구시)도 개최합니다. 임정 100주년을 기념해 레지스탕스 영화제도 개최합니다. 독립운동가 스토리 영상(나의 독립 영웅) 100편 및 대한민국 역사 100년간 기억할만한 인물을 다루는 미니다큐멘터리도 제작합니다. 방송3사(KBS·MBC·SBS)는 독립운동가의 항일투쟁 등을 배경으로 하는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도 준비합니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