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한완상](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9.01/04/20190104185209493_93QUD2B8.jpg)
▶한완상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2018년 12월 24일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위클리 공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한겨레> 기자
인터뷰 l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한완상 위원장
“세계가 감동한 3·1운동의 평화주의 정신을 드높일 조형물을 세우려고 한다. 장소는 용산 미군기지에 조성될 생태공원의 외곽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한완상(83)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은 2018년 12월 24일 정부서울청사 3층 사무실에서 가진 <위클리 공감>과 인터뷰에서 정부 부처간 협의를 전제로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1936년생인 한 위원장은 이날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식민지 고통이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고통스러운 듯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어갔다. “제국주의의 침탈로 쌓인 민족적 트라우마가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다. 젊은이들은 이 억울한 아픔을 잘 모른다. 남북 분단과 냉전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었다. 통일의 길로 가려면 여유가 있는 쪽에서 먼저 평화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은 선제적 사랑이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념사업추진위원회](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9.01/04/20190104191742692_KWQF4S7Y.jpg)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 회는 대한민국의 과거 100년을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여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는.
=초 국무회의에서 기념사업추진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구성하기로 결정한 뒤에 청와대로부터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촛불시민의 혁명으로 출범하게 된 이 정부가 70여 년 동안 켜켜이 쌓여 있는 분단의 트라우마와 그 억울한 아픔을 평화적으로 치유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과거를 바로잡고 맑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어서 책임이 막중하다.
-3·1운동의 정신은 무엇이며 세계사적 가치를 평가한다면.
=3·1운동의 가치는 비폭력 평화주의에 있다. 1910년 일제에 병탄이 된 이래 일본 경찰과 헌병의 무자비한 폭력 통치를 겪었는데도 총칼에 굴하지 않고 태극기만 들고 평화시위를 펼침으로써 세계에 감동을 줬다. 1년 전인 1918년은 인류사상 최대의 대량 학살로 점철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기이다. 우리 민족은 더 이상 제국주의의 폭력적인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1917년 러시아 유혈 혁명도 우리 국민은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비폭력 평화주의는 독립선언문에 잘 나와 있다. 독립, 자유, 정의, 양심, 진리와 같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점이 세계에 감동의 파도를 일으켰다. 3·1운동의 공익적 가치는 두 달 뒤 중국의 5·4운동으로 이어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5·4운동을 지목했다. 인도의 독립 영웅 네루가 딸에게 쓴 옥중 편지를 엮은 <세계사 편력>에는 한국의 여학생 등이 일제에 항거한 3·1운동 얘기가 나온다. 전국의 10% 가까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비폭력 운동을 펼친 사실에 인도 지도자 간디도 놀라워했다. 폭압적 통치에 비폭력·평화혁명으로 맞선 3·1정신을 나침반으로 삼아 미래의 밝은 문을 열어나가야 한다.
-3·1운동을 지난 2016년 촛불혁명에 견주는 시각이 있다.
=그해 겨울 촛불시위 현장에 손주들과 함께 나갔다. 한 사람의 영웅의 명령도 없었지만 추위 속에서 6개월이나 모두가 영웅이 되어 지속시켰다. 연 1700만 명이 참여했는데 한 건의 폭력 사건도 없었다. 효자동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은 차벽에 30대 남자들이 올라타자 소녀들이 “내려와, 내려와”를 제창했다. 반응이 없자 “비폭력, 비폭력”을 외쳤고 결국 남자들이 내려왔다. 3·1운동의 부활이 아닌가. 어느 나라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겠는가? 시민들의 절제된 민주 정신의 집합체였다. 낡은 체제를 극복해 아름다운 시대를 여는 기쁨, 진짜 축제는 이런 것이구나.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과는 또 다르게 한국의 축제는 폭력 없는 명예혁명을 이뤄냈다. 딱 하면 촛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꺼지고, 아침에는 깨끗하고 고요한 광장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우리의 집단지성과 집단감성의 선진성을 느꼈다. 이게 어디서 나왔을까? 그 역사적 유전자는 3·1운동에 있다.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먼저 임시정부라는 표현에 이의가 있다. 임시정부는 예행 연습하는 정부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1919년 4월 11일은 임시든 정시든 우리 정부를 강토에 세울 수 없었다. 일본이 강점해 주권, 국민, 영토를 다 강탈해가고 문패마저 바꿔 달았다. 임시정부라고 하면 일제의 이러한 강탈 사실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망명 임시정부로 불러야 한다. 해외에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 모여 3·1운동 한 달 만에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민주공화제를 헌법 강령 1조로 제시한 것은 가히 혁명적 성격을 띤다. 당시 서구 강국들은 대내적으로 민주공화정을 내세웠지만 대외적으로는 약탈적 제국주의 패권 경쟁에 나섰다. 민주공화제 정신을 대내·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실천하려 했던 민족은 우리밖에 없었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 자산이다.
-100주년 기념사업 중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것은.
=3·1독립운동의 평화와 민주 정신을 제대로 드러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조형물이 없다. 프랑스 에펠탑이나 미국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감동적인 상징물을 세워야겠다. 용산 미군기지에 조성될 생태공원을 절대로 훼손하지 않으면서 3·1운동 정신을 고양하는 표상물이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사항은 국토부 등 정부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 독립운동가를 높이 기리고 그 후손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프로그램도 매우 필요하다.
-남북 공동으로 열릴 100주년 기념행사에 관심이 쏠린다.
=남북이 3·1운동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치른다면 70여 년 분단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분단 이후 남북은 서로를 주적으로 규정하고 악마화했다. 적대 관계를 유지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권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역사적인 악순환에 종말을 고할 수 있는 것이 남북 당국 간의 기념행사다. 북한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해 그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집필한 미완성의 ‘동양평화론’을 살려내야 한다. 3·1운동의 평화 정신을 한반도 평화 정착의 소중한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끝으로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100여 년간 제국주의의 침탈로 쌓인 민족적 트라우마가 채 씻기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이 억울한 아픔을 잘 모른다. 일제 35년 수탈의 식민지 고통이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졌다. 남북 분단과 냉전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었다. 노동 생존권을 외치면 색깔론으로 탄압하지 않았나? 적대적 공생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통일의 길로 가려면 여유가 있는 쪽에서 먼저 평화 만들기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은 곧 선제적 사랑이다.
한광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