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고 주먹도끼 이화여고 주먹도끼](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9.01/04/20190104182632461_DTZZAKGX.jpg)
유관순 열사 후배 이화여고 학생들과 3·1운동 및 임정 100년 현장을 가다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수립 100주년이다. 100년이 훌쩍 지난 이 시대에 시민들이 3·1운동과 임정의 정신을 되새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하는 헌법 전문을 통해, 임정은 3·1운동으로 건립됐다고 명기하고 있다. 3·1운동으로 수립된 임정의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며 이는 2016년 촛불혁명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이처럼 3·1운동과 임정은 단지 역사 속의 사실이 아니라 100년이 지난 오늘을 규정하는 현재적인 가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3·1운동과 임정의 정신을 이 시대에 재현하고 시민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설계한다는 데 100주년의 의미가 있다. <위클리 공감>은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시민과 교감하기 위해 유관순 열사의 후배이자 ‘평화의 소녀상’ 전파에 앞장선 이화여고 역사 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과 3·1운동 및 임정 현장을 찾았다. 시민들도 3·1운동과 임정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새로운 100년을 다짐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학교 한쪽에 꿋꿋하게 서 계신 유관순 선배님의 동상을 볼 때마다 스스로 묻게 돼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할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짐해봤어요. 100년 전 3·1운동은 선배님들이 앞장섰지만 3·1운동 100년의 정신을 알리는 데는 저희가 앞장설게요.”
거침없이 휘날린 치마저고리. 앙다문 입술과 부릅뜬 두 눈. 서울 정동 이화여고 교정에서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의 모습은 뜯어볼 수록 장엄하다. 먼 데를 응시하는 꼿꼿한 시선과 당당하게 펼쳐보인 어깨는 열사의 강인함과 자주성을, 차가운 바람에 내몰린 맨손과 맨발은 민족의 수난과 역사의 풍랑에 맞서 살아간 날들을 상징한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소리 없이 마주해온 열사의 모습은 그렇게 늘 당당했다.
초겨울 칼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지난해 11월 28일 오후. 열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건 그의 후배인 이화여고 역사 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이었다. 동아리 회장을 맡은 이나연(2학년) 학생을 비롯해 이유진(2학년), 김나현·김민지·허란(1학년) 등 5명의 학생은 이날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그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100년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이들에게 100년이 지난 이 시대에 3·1운동과 임정의 정신을 되새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민들이 순례길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
![주먹도끼1 주먹도끼1](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9.01/04/20190104185316180_HTLJDXTS.jpg)
▶이화여고 역사 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인 서울 종로구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의 피 묻은 옷을 살펴보고 있다. 신소영 <한겨레> 기자
정부가 준비하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찾아보니 엄청 다채롭더라고요. 100주년의 실질적인 주인은 국민이잖아요. 그래서 저희 동아리도 100주년 기념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려고 해요.”(이나연)
정부는 국민 대토론회를 비롯해 독립운동가 마을 조성 사업, 독립운동 관련 자원봉사 프로그램 운영 등 100주년 기념사업을 국민과 함께 추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업이라도 국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3·1운동과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 중에는 한반도 화해 무드를 타고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도 많다. 학생들의 기대도 크다.
이번 순례길은 학생들이 정부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의지로 기획됐다. 순례길은 유관순 열사 동상에서 시작했다. 3·1운동을 얘기하면서 유관순 열사를 빼놓을 수 없다. 1918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생이던 유관순 열사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옥중에서도 만세시위를 이끌다 1920년 9월 28일 출소 이틀을 남기고 생을 마쳤다. “3·1운동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분이 선배님이라는 점에서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껴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후배로서 더 기분이 남다릅니다. 선배님을 마주하면서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기르고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정신을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할게요.”(이유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다. ‘주먹도끼’ 동아리는 2016년 5월부터 전국 100개 고등학교에 ‘우리 학교 작은 소녀상 건립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응이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으나 참여 학교가 하나둘씩 늘어나 곧바로 100개 학교를 채웠던 뿌듯한 경험을 갖고 있다. “만약 저희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교실에서 책으로만 접했다면 소녀상 세우기 등 무언가 실천에 이르지는 못했을 겁니다. 수요집회에 참석해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그분들의 삶을 피부로 느끼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어요.”(허란)
일행이 이번 순례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교과서로 배우는 3·1운동과 현장에서 느끼는 3·1운동은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은 교과서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찾아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학생들은 국민도 직접 순례길에 동참해 3·1운동과 임정의 정신을 되새겨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0년 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졌잖아요. 아마 국민 여러분이 사는 곳 주변에도 3·1운동이나 임정 현장이 한 곳쯤 있을 거예요. 직접 가서 100년 전 역사의 의미를 피부로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김민지)
학교를 나와 일행이 찾아간 곳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주먹도끼 학생들이 전국 53개 고교 1만6000여 학생들의 마음을 모아 2015년 11월 세웠다. 1학년 김민지 학생이 목도리를 벗어 소녀상에 둘렀다. 온기를 느끼기라도 한 걸까. 소녀상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듯했다. 허공을 떠돌던 두 발을 땅 위로 내딛고 바로 선 소녀상은 친구들을 마주하듯 움켜쥔 손을 활짝 펼쳤다. 일행이 다가가 두 손을 쥐어주자 이들의 온기로 주변은 마냥 포근했다.
“판문점에서 북쪽 학생 만나고 싶어요”
![주먹도끼2 주먹도끼2](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9.01/04/20190104185417614_85ROFBS6.jpg)
▶‘주먹도끼’ 학생들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성환철 지도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신소영 <한겨레> 기자
소녀상과 작별 인사를 하고 일행은 서울 강북삼성병원 안의 경교장을 찾았다. 경교장은 임정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곳이다. 김구 선생 등 임정 수반들은 1945년 광복 뒤 상하이에서 귀국해 경교장을 본거지로 삼고 통일·반탁 운동을 펼쳤다. 김구 선생의 사상을 담은 ‘나의 소원’도 경교장에 머물던 시절 쓰였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의 뿌리가 바로 3·1운동과 임정입니다. 이 시대의 시작이자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만 우리가 올곧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3·1운동과 임정 100년을 통해 우리가 건져 올려야 할 정신이자 의미겠지요.”(성환철 주먹도끼 지도교사)
헌법을 보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쓰여 있다. 임정이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라는 뜻이다. 광화문을 가득 채우며 세계를 감동시킨 촛불혁명은 100년 전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전개된 3·1운동에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3·1운동과임정의 정신을 재현하고 시민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설계한다는 데 100주년의 더 큰 의미가 있다.
경교장을 빠져나오자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고 사위가 어둑해졌다. 학생들은 곧바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안국역으로 향했다. 안국역 주위에는 독립운동 집회 장소로 쓰였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터 등 독립운동과 관련된 장소가 많다. 안국역은 지난해 9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 테마역으로 새단장했다. “명색이 역사 동아리인데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네요. 다음에 동아리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와야겠어요.”(허란)
안국역 4번 출구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100년 하늘문’이 학생들을 반겼다. 역사로 들어서는 계단 천장에 자리한 100년 하늘문은 임정 상하이 청사 대문을 본떴다. 100년 하늘문을 열고 내려가면 알록달록한 색깔의 ‘100년 기둥’이 보인다. 800여 명의 독립운동가 사진이 100년 기둥에 아로새겨져 있다. 100년 기둥 주위로 벽을 따라 민족사의 흐름을 강물로 꾸민 ‘100년 강물’이 펼쳐졌다. 8개 테마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새겨 다시 세운 ‘100년 걸상’도 만나볼 수 있다.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를 위해
![주먹도끼3 주먹도끼3](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9.01/04/20190104185401134_AM9B3HDU.jpg)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회원들. 신소영 <한겨레> 기자
“3·1운동을 이끈 이들 가운데 많은 여성이 있지만 사실 유관순 열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주먹도끼는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묻혀 지낸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 알리는 일을 꾸릴 계획입니다.”(성환철)
안국역을 빠져나와 일행은 1919년 3월 1일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출발지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 힘입어 임정이 탄생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팔각정 앞에 일행이 모였다. 100년 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선조들이 독립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는 심정으로 일행들이 전한 이번 순례길의 소감엔 결기가 묻어났다.
“저희도 3·1운동 및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에 거는 기대가 커요. 역사 동아리 회원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누구보다 열심히 기념행사에 동참할 겁니다.”(김민지)
“식민지 시대인데도 나라를 굳건히 지킨 분들이 있었고, 그래서 임정이 세워졌잖아요. 그 정신을 이어받아 더 좋은 역사를 써 나가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김나현)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현재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사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이분들을 잊지 말고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이유진)
김연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