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군산 새만금에서 희망 찾을까

2019.01.07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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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군산 새만금에서 희망 찾을까 지역경제 고사 위기에 처한 군산을 가다…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회생 모색


청와대 참모진이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 마지막 날인 지난해 10월 20일 특별한 ‘외출’을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스웨덴의 3대 도시 말뫼를 찾은 것이다. 이들이 예정에 없던 지역 산업시찰에 나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1980년대까지 스웨덴은 세계 조선업의 최강자였다. 1970년 말뫼에 세워진 1500t급 골리앗 크레인은 조선 강국 스웨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의 공세에 스웨덴 조선업은 와르르 무너졌다. 자존심과 같았던 이 골리앗 크레인은 2003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크레인이 해체돼 배에 실려 부두를 떠날 때 말뫼 시민 수천 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현지 국영방송은 장송곡과 함께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업 몰락을 상징하는 ‘말뫼의 눈물’이다.

2003년 말뫼와 2018년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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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을 중단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1650t)이 안갯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군산은 15년 전 말뫼와 닮았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이곳에 들어선 1650t급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도 해체될 위기를 맞았다. ‘군산의 눈물’이라 부를 만하다. 여기에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겹치며 지역경제는 고사 직전에 몰렸다. 기자가 군산을 찾은 지난해 11월 1일 비응도동 현대중공업 조선소 앞길에선 때마침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치 위기에 빠진 군산 경제가 ‘보수 공사 중’이란 팻말을 내건 인상을 주는 듯했다. 조선소 인근의 한 교회는 일찌감치 ‘불황의 거리’를 껴안았다. 이 교회는 2018년 들어서만 신자들에게 퇴직 불안과 스트레스를 위로하는 특별기도회를 스무 차례 넘게 열었다. 새 직장을 찾는 신자를 위한 전직 상담도 여러 차례 가졌다. “잘나갈 때는 경영진 덕이고 못 나갈 때는 노동자 탓인가. 더 이상 경영진의 잘못을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말라.” 교회 앞을 지나자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조에서 내건 펼침막이 때마침 휘몰아친 바람에 크게 흔들렸다.
발길을 현대중공업 기숙사 주변 상가로 옮기자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못해 황량했다. 한때 180개 가까운 상가가 밀집해 성업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공장 폐쇄와 함께 폐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근 신축 아파트 단지는 분양률이 20%대로 떨어졌고 원룸촌은 공실률이 50%를 훌쩍 넘어섰다. 위기감은 도시 전체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조선소를 떠나 군산 시내 조촌동 군산고용위기종합지원센터 부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 부대찌갯집에 들어서자 낮 12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식당은 한산했다. 식당 한쪽 구석에서는 중년 남성 넷이 부대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에게선 이렇다 할 대화 없이 가끔 술잔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실직자들이에요. 오전에 근처 고용센터에서 실업 상담을 하고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이들이 대낮부터 소주를 찾는 경우가 많아요.” 식당 주인 최승천(47) 씨가 귀띔했다. “예전에는 이 시간이면 식당이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는데 요즘은 보시다시피 이래요. 이곳 상황을 보면 손님이 ‘줄었다’는 말보다 ‘끊겼다’는 표현이 더 맞아요. 견디면 살고 못 버티면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습니다.”
군산은 최근 지속되는 고용 부진 현장의 최전선이다. 지난해 2월부터 전년 같은 달에 견줘 취업자 수 증가분이 급락하는 등 고용 사정이 악화됐다.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GM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40~50대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를 보면 군산 고용률은 53.1%로 역시 고용위기지역인 경남 통영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남균 군산고용위기종합지원센터장은 “군산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한 명이라도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제조업 일자리 수요가 있는 곳으로 취업 알선을 해주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특히 실직자들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어서 일자리 주선에 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진이 말뫼를 찾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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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 옛 조선소 터에 세워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터닝 토르소’는 전 세계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겨레> 자료사진

 

군산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청와대 참모진이 말뫼를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 추진과 위기에 빠진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해 이들은 ‘한국판 말뫼’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새삼 왜 말뫼일까. 지역사회의 버팀목이었던 조선업이 무너졌지만 말뫼는 쓰러지지 않았다. 눈물로 골리앗 크레인을 떠나 보낸 말뫼는 폐조선소를 그대로 활용하는 친환경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조선소가 문을 닫자 거리로 나온 인재들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집중 투입됐다. 그 결과, 말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친환경 교육·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났다. 옛 조선소 터에 세워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터닝 토르소’는 전 세계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물론 도시재생사업 초기엔 실업 급증, 인구 유출, 부동산값 폭락 등 지역경제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면서 말뫼는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조선업을 포기하면서 2만8000여 개의 일자리를 잃었지만 신재생에너지·정보통신기술(ICT) 등 새 산업에 투자해 200여 기업과 6만3000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1990년대 20만 명으로 줄었던 인구는 2018년 말 34만 명으로 불었다. 한때 20%를 치솟던 실업률은 6%까지 떨어졌다. 이제 말뫼는 태양열·풍력·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100% 자급자족하는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말뫼의 눈물이 웃음으로 바뀐 것이다. 
말뫼의 대변신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군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건져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말뫼 회생의 비결은 정부와 자치단체가 장기 플랜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말뫼 산업시찰에 다녀온 청와대 관계자는 “말뫼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을 다시 세운 것은 1~2년에 이룬 성과가 아니다”며 “10년 넘는 장기 전략을 세우고 차질 없이 추진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진이 말뫼를 둘러보고 나서 열흘 뒤 정부가 발표한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은 군산, 나아가 전북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장기 플랜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0일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고 주변 시설을 둘러볼 만큼 정부가 여기에 거는 기대감은 높다. 정부는 새만금 일대 태양광·풍력단지에 2022년까지 정부예산 5690억 원과 민간 자본 10조 원을 들여 원전 4기 용량(4GW)과 맞먹는 발전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행하는 ‘재생에너지 3020정책’(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확대)의 일환이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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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0일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행사를 마치고 수상태양광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렇다면 새만금이 군산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이 전체 새만금 개발사업과 지역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다. 문 대통령은 축사에서 “새만금에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단지와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가 건설된다”며 “새만금의 태양이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새만금의 바람이 미래를 여는 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주 전 풍력발전의 선도국 덴마크를 다녀왔다”며 “덴마크는 풍력산업이 총수출 비중의 8.5%로 81억 달러를 차지하고 고용 효과도 3만300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북도 덴마크처럼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성장할 좋은 여건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이 지역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낸 것이다.
새만금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선 전북도는 지역경제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며 반겼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선포식에서 “새만금은 지난 27년간 개발 속도가 더디기만 했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한 이 프로젝트로 새만금 권역을 세계 최고의 재생에너지 글로벌 클러스터로 조성해 에너지산업을 확실하게 선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은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 대책인 동시에 침체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원전 4기에 해당하는 발전설비를 대체할 수 있어 원전 사고 위험 없이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며 “사업 실현을 위해서는 도민 참여가 보장돼야 하는만큼 새만금 재생에너지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장기 플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군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성희철(54) 씨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새만금의 조속한 개발이 시급하다”며 “무엇보다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만금개발청이 제시한 사업의 경제효과는 막대하다. 새만금개발청은 “태양광·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에 약 10조 원의 민간자금이 유입되고, 연인원 약 200만 명의 건설 인력이 참여하게 된다”며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앞으로 10년간 연관 기업 100개 유치, 양질의 일자리 10만 개 창출, 25조 원의 경제 유발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산의 눈물이 군산의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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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7일 오후 전북 군산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지엠(GM) 군산공장 폐쇄 철회 노조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하지만 태양광 등 발전시설이 갖는 특성상 고용 창출이나 지역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설 인근의 한 주민은 “지난 대선 때 공약한 환황해권 개발 계획도 재생에너지 사업에 묻혀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새만금 면적의 9.4%만 재생에너지에 활용된다”며 “기존의 환황해권 경제거점 개발계획은 그대로 가고 여기에 더해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추진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민 의견 수렴은 인·허가 과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새만금에서 대한민국 새천년 에너지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며 “정부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지방자치단체와도 긴밀히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만금을 품은 군산이 한국의 말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시민·정부·자치단체·기업이 한데 힘을 합쳐 말뫼처럼 장기 플랜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말뫼의 부활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가 함께 치열하게 대안을 모색하고 미래 산업 유치에 나섰기에 가능했다. 15년 전 말뫼처럼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이 해체 위기에 놓인 군산의 상황은 위기임이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희망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기회임을 말뫼는 보여주고 있다. 군산의 눈물이 머지않아 군산의 웃음으로 바뀔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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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김연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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