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표 위원장
‘포용성장’ 전도사 4인 직격 문답
포용성장과 포용국가가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핵심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내년도 국정 방향”이라고 말했다. 앞서 9월엔 포용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3대 비전과 9대 전략을 확정했다. 경제정책(포용성장)과 사회정책을 통합한 국가 발전전략(포용국가)을 제시한 것이다.
현 정부의 ‘포용국가’ 정책 기조를 가다듬는 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등 네 명의 전문가에게 포용성장과 포용국가의 전략 및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 투자 많은 기업, 1인당 매출도 높다”
▶조흥식 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내년도 국정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포용성장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포용성장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나?
“그동안의 성장 전략은 대기업 중심, 수출 중심이었다. 수십 년 동안 선성장 후분배를 마치 신화처럼 떠받들고 살았다. 이렇다 보니 성장의 열매는 일부 상위 계층, 대기업 등에 집중됐고, 소득분배는 매우 배타적이고 배제적으로 이뤄졌다. 이대로 가다간 아예 수요 기반 자체가 악화돼 지속적인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금융위기 이후 이런 인식이 널리 퍼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나서 포용성장을 주장하게 된 배경이다. 성장의 결실이 고루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 말하자면 ‘모두를 위한 성장’이 포용성장의 뼈대다.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분배 개선이 아니라, 모두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분배와 재분배에 힘을 쏟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야 사회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다.”(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포용성장에서 혁신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
“보통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을 구분하려 드는데 그건 잘못이다. 둘은 구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면 새로운 고용의 밑바탕이 되지 않나. 둘은 연동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도 ‘포용적 혁신’을 강조한다. 혁신은 대기업만 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 심지어 자영업도 할 수 있다. 전반적인 사회 혁신이 가능하도록 밑돌이 되어주는 게 바로 포용성장이다.”(성경륭)
-포용성장은 정부가 강조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와도 연결되는 것인가?
“그렇다. 유럽에선 로 로드(low road)와 하이 로드(high road)를 구분한다. 굳이 따지자면 이윤 중심 기업이냐, 사람 중심 기업이냐의 구분이다.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후자의 길을 가고 있다. 노사 합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엄청난 예산을 교육훈련에 투자한다. 고용관계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시장 밖의 사람들도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투자에 힘쓴다. 최근 연구해보니, 한국에서도 사람에 대한 투자가 많은 기업일수록 1인당 매출액도 월등하게 높게 나오더라.”(성경륭)
“포용성장 성공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 펴야”
▶성경륭 이사장
-2019년 경기 전망이 어둡다. 정부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대목은 무엇인가?
“경제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우려스럽다. 미중 무역분쟁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금리도 인상 쪽으로 방향이 잡힐 테고.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더 확실하게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 포용성장의 성공을 위해 내년도에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실제로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재정 당국이 세수 추계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20조원 정도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한 번은 틀릴 수 있지만 되풀이해서 틀리는 건 문제다. 세수 추계 모델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다.”(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정부가 포용국가전략회의를 열어 3대 비전과 9대 전략을 발표했다. 그 중심엔 포용성장이 있다. 정부 초기에 강조했던 소득주도 성장은 이제 새로운 정책 기조인 포용성장에 길을 내준 것인가? 포용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은 어떤 관계에 있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 슬로건이 진화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정부 초기 세 바퀴 성장을 들고나오지 않았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셋 말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약간의 혼선이 빚어졌다. 언론에서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에, 기획재정부는 혁신성장에,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경제에 힘을 쏟는다는 식으로, 마치 셋이 대립구도에 있는 양 낙인을 찍어버렸다. 전혀 사실과 다른데도 말이다. 셋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언제나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셋이 대립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포용성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경제정책의 통합적 접근을 강조하기 위해 포용성장을 제시한 것일 뿐, 소득주도성장을 대체한다거나 실패를 또 다른 성장론으로 가리려 든다거나 하는 주장은 완전한 곡해다.”(홍장표)
-그런데도 소득주도성장은 1차 분배에 무게를 둔 반면, 포용성장은 2차 분배(재분배)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주는데?
“소득주도성장 패러다임엔 처음부터 1차 분배와 2차 분배 개선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분명히 있었다.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비용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패키지로 가자는 게 일관된 메시지였다. 언론에서 최저임금 인상만을 주목해서 마치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인상’인 것처럼 몰고 갔다. 추진 과정에서 일정상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먼저 갔을 뿐인데, 소득주도성장은 사회안전망 확충 등 2차 분배엔 소홀한 것처럼 몰아가는 건 잘못된 일이다. 대표적으로 일자리 안정자금이나 ‘문재인 케어’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왜 문재인 케어는 소득주도성장의 하나로 보지 않는지 궁금하다.”(홍장표)
“지금은 재정건전성 신화 붙들고 있을 때 아냐”
▶배규식 원장
-3분기 가계동향 통계를 보면 소득분배 구조가 더 나빠진 것으로 나온다. 지난 1년 반 동안 정부의 불평등 해소 대책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방향성은 분명히 제대로 잡았다. 총론적으로는 잘됐다. 다만 각론에서 약했다. 모든 정책은 선후, 강약, 완급, 이 셋을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지금 우리 상황은 1분위와 2분위 대책과, 3~5분위 대책이 완전히 달라야 한다. 각 분위에 맞게 더 정교한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진다. 3% 성장도 낙관하기 힘든 상태다. 이런 때일수록 복지보다 성장에 더 매진해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불평등과 성장률, 국민소득 규모는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인데, 3만 달러 아니라 2만 달러라 해도 구성원들끼리 잘 나누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언제까지 성장률 타령만 할 텐가. 중요한 건 누진적 조세제도를 잘 갖춰서 성장의 열매가 최대한 고루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이다. 그래야 사회 자본이라 할 신뢰도 쌓이고 구성원들의 역량도 제고돼 성장 잠재력이 커진다. 그 방법밖에 없다.”(조흥식)
-불평등을 줄이는 데 정부 차원의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고 폭을 좀 더 넓혔으면 좋겠다. 지역으로도 눈을 더 돌려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지역공동체 쪽을 보면 훌륭한 실험을 하는 곳이 적잖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만 해도 꽤 가치 있는 실험이다. 문제는 지역에서 실험해볼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아쉽다. 국민들 피부에 와닿는 몇 가지 영역에서만이라도 제대로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재정정책을 과감하게 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재정건전성 신화만 붙들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세금 퍼준다 얘기하는데, 선진국 어느 나라치고 세금으로 복지제도 운영하지 않는 곳이 있나.”(조흥식)
“위축된 심리 되살리는 게 관건”
-불평등을 줄이는 해법과 관련해 정부가 특별히 노동시장과 관련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특수고용직 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다른 선진국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그래서 1차 분배와 2차 분배를 어떻게 동시에 개선할지가 관건이다. 불평등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2차 분배 개선에만 매달리면 결과적으로 비용도 많이 들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 대단한 실험을 하고 있는 거다. 실험에 따른 부작용이 일부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방향은 분명히 제대로 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과감한 정책을 편 나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건 대단한 실험이다.”(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노동 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때, 혁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나라 따라잡는 시대는 끝났다. 추격자 모델은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다. 사회 전반의 혁신 없이는 3% 성장도 어려운 단계이고, 중국과의 격차 면에서도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업 현장, 특히 중소기업의 혁신도 매우 중요하다. 주먹구구식 경영관리가 여전하고 생산능력, 관리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 지금 자영업은 과잉 경쟁으로 한계에 봉착해 있는데, 똘똘한 모델을 찾아낼 필요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장의 혁신이 핵심이다.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배규식)
-2019년 일자리 전망은 어떻게 보나?
“일자리는 심리 효과가 절대적이다. 2017년에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예외적인 경우라 봐야 한다. 기저 효과로 인해 2018년은 평균적으로 10만 명 정도였다. 2019년은 역기저 효과로 올해보다는 조금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이 과거 극심한 불황에 빠졌을 때 10년간 일자리를 10만 명 늘렸다. 그러다가 2011~2017년엔 270만 명이나 늘어났다. 하지만 성장률 차이는 고작 1%포인트 정도였다. 과도하게 위축된 심리를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배규식)
최우성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