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처음 배운 것은 동화책에서다. 왕자와 공주, 난쟁이와 마법사 따위가 나오는 동화에서, 신기료장수는 이야기의 배경인 중세 대표 직업군의 하나로 재단사, 양치기, 대장장이 등과 함께 자주 등장했다. 그는 마을에 일어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공주의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 내로라하는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부마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어릴 적 나는 이 단어를 어떻게 새겨야 좋을지 몰라서 자주 갸우뚱거렸다. 다른 어려운 어휘에 그런 것처럼, ‘신기료장수’라는 말 옆에는 별표(*)가 달렸고 같은 페이지 하단에는 ‘신을 깁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의문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알게 된 사실만큼이나 똑같은 크기로 의문점이 불어나버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신기료장수. 소리 내어 중얼거려 보기도 했다. 발음부터 이상스럽다. 신발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의 첫 음절이 ‘신’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다행(?)이고 납득이 갔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의미가 ‘기료’라는 형태와 소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부끄럽게도 불과 얼마 전이다. 밑굽이 심하게 닳은 구두, 바닥이 너무 매끈해서 빙판길에 미끄러지기 딱 좋게 생긴 구두가 여럿이라 솜씨 좋은 신발 수선집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 단어, 신기료장수가 떠올랐다. 과연 좋은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기가 무섭게 어원과 유래가 우르르 쏟아진다.
가장 허탈한 대목은, 그게 한문이라고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순우리말이라는 사실이었다. 사과 장수가 “사과 사려” 하고 외치듯, 신 깁는 이가 “신 기리오” 하고 외치고 다니는 데서 ‘신기료장수’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인터넷 백과사전은 내게 알려주었다. 아아, 그림이 있는 동화책이라 그림동화인 줄 알았는데, 크고 나서 보니 전래동화를 모으고 정리한 사람 이름이 ‘그림(Grimm)’이라서 그림동화라고 불린 걸 알았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헛헛해졌다.
그럼 신기료장수는 왜 장수일까. 그것은 이들의 기술력을 당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낮춰보았던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들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했던 전문가 그룹이 바로 ‘갖바치’다. 갖바치는 신을 만드는 단계부터 업무를 꿰고 있는 데 반해 신기료장수는 단순히 수선하는 데 그치니, 장인(匠人)이라기보다는 장사치에 가까운 개념으로 업의 특성을 이해한 것이다. 고무신이 대중화된 1920~1950년대에 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다. 시골 장날이면 어김없이 나와 있던 신기료장수의 일은 이렇게 요약된다. ① 터진 고무신에 접착제를 바른다. ② 달군 쇠에 넣고 눌러서 때운다. 이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작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신기료장수가 이런 말이었다니. 나는 좀 약이 오른 기분이 되었다. 신기료장수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이미 실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사어(死語)나 진배없었다. 뜻이 즉각적으로 통하는 ‘신발 수선공’이라는 말을 놔두고, 굳이 어린이용 동화책에 신기료장수라는 고답적인 단어를 등장시킬 까닭이 뭐람. 하지만 그쪽에서도 할 말은 있을 법하다. 예컨대 당시 이 일에 관여한 아동문학가나 번역가라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그냥 신발 수선공이라고 하면, 가죽신을 고쳐 신던 과거 유럽의 시대상이 드러나지 않아요. 우리말에 유사한 역사성을 가지고 등장한 말이 ‘신기료장수’니 이보다 적합한 말이 없지요. 게다가 ‘신 기리오’ 하고 외치는 데서 유래한 순우리말이라는 멋진 이야기도 담겨 있으니 아이들에게 배우도록 권장할 만한 어휘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갖바치도 사라지고, 고무신도 사라지고, 신기료장수 자체가 우리 삶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신기료장수’라는 말만큼은 소멸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마법처럼 기이하고 신기하다.
“다 됐소. 밑창을 댔으니 빙판에 미끄러지는 일은 없을 거요.”
신기료장수 할아버지가 반짝반짝 닦은 구두를 내게 들어 보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난로의 불빛을 받고, 그의 주름진 얼굴과 미소는 동화 속 현자의 것만큼이나 신비롭게 빛났다. 나는 다시는 넘어지지 않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구승준 | 번역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