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누군가의 흔적이다. 길든 짧든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밟으며 지났고 때로는 자연이 머물렀다. 올림픽 아리바우길도 그렇다. 한 할머니가 20년 넘게 쌓았다는 노추산 자락 돌탑 무더기와 거대한 소나무가 베어 나간 자리도 이러한 흔적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평창동계올림픽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
하나로 이어진 길을 따라 6코스까지 걸어왔다. 정선 읍내 시장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어느새 평창의 험한 산줄기를 지나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다.
▶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에 있는 어명정. 2007년 경복궁 복원 당시 쓰인 금강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세워진 정자다. ⓒ(사)강릉바우길
7~9코스는 어느 구간보다 풀 내음 가득한 초록빛이다. 곧게 자란 금강소나무 숲 솔 향이 온몸을 휘감고 돈다. 솔바우 전망대에 올라 강릉 시가지를 눈에 담고 내려오면 소나무에 감싸인 작은 학교가 보인다. 그곳을 시작으로 고택을 돌아 바다를 마주하면 긴 여정은 끝이 난다.
7코스 11.7km
보광리 게스트하우스 - 명주군왕릉
▶ 7코스를 가득 채운 금강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뉴시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기존 강릉바우길 3코스에 해당한다. 보현사부터 명주군왕릉까지 이르는 이 구간은 일명 ‘어명 받은 소나무길’이라고도 불린다. 다소 독특한 이름은 ‘어명이오’라고 외치고서야 이곳 소나무를 베어낼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었다. 이름처럼 거니는 길마다 퍼지는 솔 내음에 취해 머릿속이 초록빛으로 가득 들어찬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가 흔히 보는 굽은소나무가 아니다. 곧게 뻗어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금강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소나무와 기본 형태는 같지만 줄기가 조금 더 붉고 마디가 길게 자란다. 대관령 전체가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소나무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길이다.
소나무와 함께 걷던 숲을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 10여 분 걸었을까. 길 한편에 자리 잡은 정자가 보인다. 2007년 경복궁을 복원할 때 기둥으로 쓰인 금강소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 위에 세워진 정자다. 예부터 오래된 목조 건축물 대부분이 금강소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때 베어낸 세 그루의 금강소나무는 밑동 지름 90cm의 대경목이었다. 당시 산림청과 문화재청은 도끼로 나무를 내려찍기에 앞서 ‘어명이오’를 외쳤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자 이름도 ‘어명정’이다.
어명정에서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산길로 접어들자 송이 향이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규모의 숲을 이룬 아름다리 소나무 밑으로 송이버섯 밭이다. 푸른 숲 속에 온전히 빠져들 때쯤 펑퍼짐한 모양의 술잔바위가 보인다. 술잔처럼 생긴 구멍 세 개가 바위에 움푹 파여 있다. 비가 내려 물이 고였다면 술이 채워진 잔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술잔바위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길도 여전히 소나무 숲이다. 이젠 익숙해져버린 초록빛보다 하얀 눈과 어우러진 겨울의 소나무가 궁금해진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목 끝은 명주군왕릉이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5대손이자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다. 명주군왕릉을 삼왕릉이라고도 하는데 김주원의 2대손까지 명주군왕직을 세습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멋스러운 소나무는 이곳마저 에워싸고 있다.
8코스 11.0km
명주군왕릉 - 송양초등학교
▶ 명주군왕릉으로 향하는 길가에 늘어선 갈대가 관광객을 맞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명주군왕릉에서 시작되는 8코스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던 마을길이다. 앞선 코스에서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면 8코스는 일상과 여행이 맞닿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심스테파노의 길’이라는 별칭은 이곳을 둘러보는 또 다른 묘미다. 조선시대 말 천주학자인 스테파노가 강릉 골아우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서울에서 내려온 포도청 포졸들에게 잡혀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면서 그가 걸었던 행적이 심스테파노의 길로 명명됐다. 때문에 천주교 순교자를 기리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걷는 길이기도 한다.
참으로 걷기 편안한 길이다. 솔바우 전망대를 오르는 길에는 야자매트가,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이 있어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을 조성하면서 설치했다는 전망대의 데크로드는 잠시 몸을 쉬어가기에 충분하다. 솔바우 전망대에 서자 강릉 시가지가 훤히 시야에 잡힌다. 높은 교각이 고속도로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도 멀리 보인다. 날씨가 맑을 때는 주문진과 안인해변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때에 따라 호젓할 순 있겠지만 반가운 정적이기도 하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넝쿨 식물이 선물하는 멋스러움은 가히 장관이다.
8코스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추리’ 마을 표지판이 나타난다. 본래 지역명은 위촌리다. 1916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절 골아우, 새잇말, 항생골, 지암 등 자연 마을을 합쳐 위촌리가 됐다. 위촌리라는 지명은 조선 인조 때 강릉 김씨인 위촌 김상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이곳에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우추리는 위촌리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골아우에 소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여기서 소가 나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구간의 종점이자 다음 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송양초등학교다. ‘송산에 맑은 새암 기름진 들에 우리의 후손들 영원히 살 곳…’으로 시작되는 교가 2절처럼 소나무가 푸르게 잘 자란 동산이 학교를 품고 있다. 교목 또한 변함없는 모습을 상징하는 소나무다. 내내 푸르렀던 구간을 뒤로하고 드디어 마지막 구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9코스 17.7km
송양초등학교 - 오죽헌 - 경포대 - 경포해변
▶ 경포해변 백사장에 설치된 조형물 주변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시작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의 문을 닫으러 가는 시간이다. 오르락내리락하며 때로는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했던 지난 구간들과는 또 다르다. 송양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조금 얕은 산을 넘고 죽헌저수지까지 돌고 나면 오죽헌이다. 한국 건축주택 중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자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라는 수식어가 빛을 발한다. 건축사 측면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검은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마당 가득 들어앉은 햇살이 짧아지는 만큼 아쉬움이 커진다. 하절기(3~10월)와 동절기(11~2월) 관람시간 및 매표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유의하길 바란다.
오죽헌을 지나 선교장에 들어선다.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1703년에 건립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상류층 주택이다. 99칸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지난 5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주 무대로도 알려졌다. 300여 년 동안 잘 보존된 원형과 인근 자연미의 조화로움이 고택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선교장은 원래 경포호수에 접해 있었다. 선교장이란 명칭도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를 타고 다녀야 했기에 붙었다. 12㎞에 달했던 경포호수 둘레가 4.3㎞ 규모로 줄어들면서 곳곳에 지금의 도로가 개설됐다.
선교장에서는 고택에서 보기 어려운 이색 외관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랑채인 열화당 전면에 설치된 차양이다. 조선 말기 러시아공사관 사람들이 강릉 산업 조사를 위해 선교장에 머물렀을 때 받았던 대접에 감사하는 표시로 선물한 것으로 전해진다.
131.7km에 이르는 역사·문화·생태 탐방로의 종착지는 바다 앞이다.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반긴다. 기념사진을 찍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은 없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에 아쉬움을 실어 보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지만 이 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끝이 나겠지만 올림픽 아리바우길의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계절마다 달라질 경관을 기대해본다.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