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도착하다’는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기 시각문화를 통해 신여성(新女性)을 조명한 국내 첫 전시다.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루어졌던 우리나라 역사, 문화, 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시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신여성 선각자 5인의 삶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 신여성 선각자 5인의 삶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12/22/20171222153113838_LXQCGHFR.jpg)
▶ 1 신여성 선각자 5인의 삶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 자료, 유품과 함께 현대 작가들의 오마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3부 전시 ⓒC영상미디어
국립현대미술관은 12월 21일부터 2018년 4월 1일까지 덕수궁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개최한다. 회화, 조각, 자수, 사진, 인쇄 미술(표지화, 삽화, 포스터 등), 영화, 대중가요, 서적, 잡지, 딱지본 등 작품 100점, 자료 약 400여 점 등 모두 500여 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이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소개된다. 근대기 신여성의 등장, 존재의 의미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과 대중매체 자료들이 총망라 됐다고 보면 된다. 좀처럼 기획되기 힘든 전시인 셈이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 중 플로리다 한 미술관(Harn Museum of Art) 소장의 김은호 ‘미인승무도’(1922), 일본 조시비미술대학 소장의 박래현 ‘예술해부괘도(1)’(1940) 등 국내 미공개작 22점이 최초로 공개되기도 한다.
‘신여성’이란 용어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해 20세기 초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됐다. 국가마다 개념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정치적,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근대기의 새로운 교양을 쌓은 여성상을 의미한다. 조선의 경우 근대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여성이 1890년대 이후 출현했으며, 이 용어는 언론 매체와 잡지 등에서 191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해 1920년대 중반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구여성’의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신식 교육을 받고 신문명의 세례를 받은 이들 신여성은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된 동시에 편견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겉치레와 외모에 치중하는 ‘모던 걸’의 대유행은 상업주의와 맞물려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 ‘욕망’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신여성 이난영의 생전 유품과 자료 신여성 이난영의 생전 유품과 자료](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12/22/20171222153745483_YHTYOALZ.jpg)
▶ 2 자료를 통해 교육과 계몽, 현모양처와 기생, 연애와 결혼, 성과 사랑 등의 키워드로 점철된 신여성의 이미
지를 대중매체에서 어떻게 소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부 전시 3 대중문화예술인 이난영의 생전 유품과 그녀가 직접 연주했던 악기들 ⓒC영상미디어
총 3부 구성, 국내 미공개작 22점 최초 공개
‘신여성 도착하다’전은 모두 3부 구성이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온 퍼레이드(on parade)의 1930년대식 표현으로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일렬로 늘어선 모습을 일컫는다)’,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 그리고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으로 진행된다. 3부에서 소개되는 대표적인 신여성 중 하나이며 일제강점기 사회운동가이자 여성주의자 주세죽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유배됐던 카자흐스탄의 척박한 땅이 3채널 영상으로 펼쳐지면서 시작된다. 주세죽에 대한 오마주 신작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칸칸마다 연도가 역순으로 프린트돼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과거로의 이동이다. 그 계단을 다 오르면 신여성을 만나기 위한 장소로의 도착이랄까. 시작부터 흥미롭다. 1부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대중가요, 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여성 이미지가 공적인 영역에서 시각적 볼거리로 재현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딱지본 소설의 표지화나 <대한매일신보>나 <매일신보>의 상품 광고 등에서부터였다. 교육과 계몽, 현모양처와 기생, 연애와 결혼, 성과 사랑, 도시화와 서구화, 소비문화와 대중문화 등의 키워드로 점철된 신여성 이미지들은 식민 체제하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이념적,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각축을 벌이는 틈새에서 당시 신여성을 향한 긴장과 갈등 양상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제는 희귀 자료가 된 근대기 잡지와 딱지본 소설 표지들과 당시 신여성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구두나 양산, 화장품 등이 전시돼 신여성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2부는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상당히 희귀한데 1910년대 전후로 미술계에서 활동한 첫 여성은 김능해, 원금홍 등 기생 출신의 서화가들이었다. 사군자나 서예에 특기를 보였는데 기생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맞물려 근대적 의미의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20년대부터 고급미술 영역에 자리 잡은 것은 여학교나 미술학교 출신의 신여성 집단으로 나혜석, 이갑향, 나상윤, 박래현, 천경자 등이 대표적이다. 또 전명자, 박을복 등 자수과 유학생들도 미술계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여성 작사가나 가수들의 음반이나 악보들 여성 작사가나 가수들의 음반이나 악보들](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12/22/20171222153857764_6QGB6536.jpg)
▶ 4 여성 작사가나 가수의 음반이나 악보들 5 2부 전시에선 미술대학 출신의 유학생 여성 미술 작가들의 회화 작품이 전시돼 있다. ⓒC영상미디어
신여성의 도착, 그리고 다시 출발
3부는 남성 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다섯 명의 신여성인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운동가 주세죽이 조명된다. 나혜석은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연 화가이자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금기를 깨뜨리는 글쓰기로 주목받은 여성해방론자요 소설가였다. 최승희는 여성 최초로 창작현대무용을 발표했으며, 이난영은 가수로서 조선 민중의 심금을 울린 ‘목포의 눈물’로 주목받았다. 1세대 여성문학가 김명순은 여성이 남성뿐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의해 타자화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했다. 주세죽은 조선 여성이 겪어야만 했던 겹겹이 고통을 극복하려 했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자료나 작품을 넘어 그녀들이 살아낸 뜨거웠던 삶, 그 자체가 뿜어내는 힘은 엄청났다. 신여성에 ‘대한’, 그리고 신여성에 ‘의한’ 작품·자료를 망라한 이번 전시는 20세기 여성 중심의 문화사를 역동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강은진│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