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429조 원과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째로 국회에 섰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또 한 번 촛불혁명의 위대성과 역사적 책무에 대해 답했다. 국민이 물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부정부패와의 단호한 결별, 불평등과 불공정의 시정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재정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앞세워, 한국 사회와 경제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 특히 20년 전 IMF의 극복 과정에서 악화됐던 저성장, 양극화, 비정규직, 저출산 등 그동안 누적돼온 문제에 대해 단지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국가공동체를 지목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으며, 동시에 그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많은 분들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한국 경제의 문제와 위기는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IMF 직전인 1995년을 계기로 우리 경제는 다소 낯설고 생소한 세계화의 과정에 진입했으며, 그동안 한국 경제에 내재돼 있던 수출·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의 한계가 표면화됐다. 김영삼정부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에 1% 이상씩 성장률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2% 이하의 성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됐다. 더욱이 이러한 저성장의 부정적 영향이 불평등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임금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은 상위 10%가 총소득의 45%에 이르는 부분을 점하도록 급증했으며, 하위 20%의 소득분배는 여전히 감소 상태를 유지해 분배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과정에서 급격한 양극화가 형성됐다. 가계에 비해 기업,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 비정규직에 비해 정규직의 소득비중이 쏠렸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가계부채의 급증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동시에 진행돼 구조화, 고착화됨으로써 더 이상 저성장과 양극화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경향은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진행되는 경향으로서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은 곧 세계적 관점의 경제사회적 위기에 대한 해답이란 점에서 정부가 ‘사람 중심 경제’를 위한 재정계획을 계획한 것은 이제라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촛불혁명으로 나타난 위대하고 각성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문재인정부는 진작부터 경제운용의 원리로서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국정목표를 정했으며, 최근 ‘사람 중심 경제’라고 명명했다. 이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며, 일자리가 늘고 가계소득이 증가해 내수가 총수요를 이끌어가는 경제, 모든 사람과 기업이 공정한 기회와 규칙 속에서 경쟁하는 경제, 혁신과 창의로 새로운 기업과 새로운 산업이 창발하는 경제를 말한다. 결국 ‘사람 중심 경제’란 일자리와 소득이 주도하는 내수 확대의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바퀴 경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첫째, 공공부문의 고용 창출과 공공서비스 확대, 생명·안전을 다루는 부문부터라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중소기업 추가 채용과 세제 지원 등 한국의 노동시장을 반영한 일자리예산을 19조 2000억 원으로 증액했다.
둘째,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자영업자의 영업력 확충을 위한 조치, 아동수당 신설, 의료비 부담 경감조치, 통신료나 카드수수료와 같은 생활비 인하, 장애인 연금과 기초연금의 인상과 확대 등으로 국민소득을 확충해 소비를 증가시키고자 했다. 여기에는 총수요가 증가하여 생산이 늘고 다시 고용이 증가하는 경제의 선순환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는 ‘소득주도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혁신의 생태계를 조성하며 신산업 창출을 위한 재정투자와 규제 재설계의 ‘혁신성장’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산안에는 가습기 피해구제나 미세먼지 등 환경 위해요소를 극복하고, 먹거리의 안전 강화, 이외에 자주국방역량을 확대해 통일에 대비하는 예산, 저출산 극복을 위한 투자와 교육의 희망사다리 마련, 고등교육의 질 개선과 같이 의료, 복지, 노동, 교육, 국방 등에서 재정의 국가책임을 수행하려는 적극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판단된다.
이한주 가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