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책, 그중에서도 기억 관련 부분이 나오면 빠지지 않는 케이스가 있다. 환자 H.M.(1926-2008). 그는 뇌전증 증세가 있었다. 열 살 때 처음 뇌전증이 나타났는데 이후 심해져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했다.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에 살던 그는 27세 때인 1953년 측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뇌전증 증세는 완화됐다. 헌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기억 저장 장치가 고장 났다. 그 때문에 H.M.은 역설적인 삶을 살게 됐다. 삶은 망가졌으나 기억의 과학에 이바지한 공로로 불멸이 됐다.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수잰 코킨)은 “헨리와 그의 삶을 기리는 헌사인 동시에 기억이라는 과학을 탐구하는 자리”다. 이 책은 H.M. 관련 내용을 어느 책보다 종합적으로 다루고 기억의 과학사를 보여준다.

에릭 캔델의 책을 보면, 심리학과 신경의학의 접점을 좀 더 알 수 있다.
저자 수잰 코킨은 MIT 인지신경학자. 1962년부터 H.M.이 사망하기까지 45년을 연구했다. 맥길대학(캐나다 온타리오 소재) 박사과정 때부터 시작해 MIT로 옮긴 이후에도 H.M.의 기억을 파고들었다. 2008년 H.M. 사망 이후의 작업을 챙긴 것도 그녀였다.
H.M. 연구로 명성을 얻은 사람은 수잰 코킨이 아니다. 그의 맥길대학원 은사인 브렌다 밀너다. 브렌다 밀너는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으로 사람의 복잡한 마음 작용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다. 밀너는 1950년대 초 맥길대학 부설 몬트리올신경학연구소(The Neuro)에서 당시 소장인 신경외과의 와일더 펜필드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H.M.이 수술을 받고 2년이 지난 1955년 그를 처음 만났다. 밀너는 H.M.을 최초로 검사한 심리학자이고, 밀너의 이 검사가 기억 연구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1957년 H.M. 관련 논문은 학계의 고전이 됐다. 수잰 코킨은 밀너 논문이 나오고 한참 지난 1962년 H.M.을 처음 봤다. 수잰 코킨은 당시 맥길대의 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고, 밀너로부터 H.M. 케이스 연구를 지시받았다. 이것이 수잰 코킨과 H.M.의 45년 인연의 시작이었다.
H.M.은 뇌전증 발작 완화를 위해 양쪽 내측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귀와 가까운 쪽이다. 집도의는 동네인 하트퍼드에 사는 신경외과의 윌리엄 스코빌이다. 뇌전증 환자의 좌측두엽 또는 우측두엽 절제 수술을 시작한 건 1950년대 몬트리올신경학연구소 소장 와일더 펜필드였다. 펜필드는 저명한 의사로, 1931년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123만 2000달러라는 막대한 기부금을 받아 몬트리올신경학연구소를 설립한 바 있다.
H.M.은 수술 후 기억을 잃은 유일한 뇌전증환자가 아니었다. 조금 앞선 시기에 와일더 펜필드가 칼을 잡은 환자 F.C.와 P.B.도 같은 일을 겪었다. 펜필드와 밀너는 두 환자 연구를 시작했다. 대학원생이던 밀너는 환자의 인지 기능 연구를 기획하고 지휘했다. 수술 전과 수술 후 환자의 인지 능력을 평가할 검사지를 만들어 수술이 뇌에 미친 영향을 자료화하는 게 밀너의 과제였다.
나는 신경외과의와 심리학자가 이렇게 손을 잡고 일한다는 걸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기억의 생물학자로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캔델의 책을 보면, 심리학과 신경의학의 접점을 좀 더 알 수 있다. 캔델의 <기억을 찾아서>에 따르면, 1960년대에 현대적인 인지심리학이 탄생했다. 심리철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실험동물의 단순한 행동 연구), 인지심리학(사람의 복잡한 정신 현상 연구)이 융합해 태어났다. 새로운 현대적인 인지심리학은 쥐에서부터 원숭이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의 복잡한 정신 과정에서 공유하는 요소를 찾으려 노력했다. 1970년대에 인지심리학은 뇌과학인 신경과학과 만났다. 그 산물이 인지신경과학이다.
브렌다 밀너가 H.M. 집도의 스코빌과 같이 쓴 1957년 논문 제목은 ‘양측 해마 손상 이후 최근 기억의 상실’. 이 논문은 뇌의 해마가 기억에 관여한다는 것과, 기억에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게 핵심이었다. 밀러는 H.M.을 상대로 검사한 결과, 기억 장치가 고장 난 건 펜필드가 해마를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저장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가설은, H.M.이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짧은 기억이 작동하긴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데서 나왔다. H.M.에게 브렌다 밀너나 수잰 코킨은 언제 보아도 낯선 사람이었다.
우리 뇌는 여러 유형의 투숙객이 모인 호텔과 같다.
H.M.이 기억의 과학 분야에서 명사가 된 건, 그가 다른 환자보다 기억을 연구하는 데 좋았기 때문이다. 다른 환자는 알츠하이머, 두부 손상 같은 원인을 갖고 있었으나, H.M.은 유독 기억력에만 손상이 나타났다. 다른 증상 없이 기억력 장애가 나타난 덕분에 그는 사람 뇌의 기억 메커니즘을 연구할 수 있는 완벽한 사례였다고 수잰 코킨은 책에서 말한다. 그는 또 상당한 유머 감각을 가졌다. 그는 인지심리학자가 수없이 찾아가 자신을 조사하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조사를 했으나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조사에 성실히 협력했다.
기억을 잃으면 사람의 정체성은 파괴된다. 기억은 그저 생존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질을 만들어낸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개인사를 토대로 만들어지며, 그게 파괴되면 ‘좀비’가 되고 만다. 다행히 H.M.은 수술 전에 갖고 있었던 장기기억을 일부 갖고 있어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파괴되는 걸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장기기억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단기기억은 작동했다. 수잰 코킨은 헨리로부터 과학자가 배운 한 가지는 “기억이 어떤 단독 기능이 아니라 여러 다른 기능의 조합이라는 점이다. 우리 뇌는 여러 유형의 투숙객이 모인 호텔과 같다. 각종 기억이 유형별로 각기 방을 하나씩 차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도널드 O. 헵은 기억의 과학 초기에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차이를 가설로 내놓은 심리학자다. 그는 1949년 장기기억에는 뉴런들이 연결되면서 물리적인 변화가 발생하나, 단기기억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놨다. 그는 수잰 코킨의 맥길대학 은사다. 수잰 코킨은 “헵이 제시한 신경망 모델은 기억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영역을 뇌 안의 물리적 변화와 연결함으로써 심리학과 생물학을 이어주었다”고 말한다. 코킨에 따르면 오늘날 신경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동시에 활성화하는 신경세포는 한 다발로 묶인다”라는 헵의 법칙을 외운다.
H.M.이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기억의 일부가 작동함을 보여줘 또 놀라게 했다. 그는 손기술이 학습으로 향상된다는 걸 보여줬다. 연구자는 거울만을 보고 종이 위에 그린 도형을 따라 연필로 그려보기를 그에게 시켰다. 하루, 이틀, 사흘이 되자 그는 거의 완벽하게 이를 해냈다. 그의 뇌가 학습하고 그 학습 내용을 저장한 것이다. 이 같은 기억을 오늘날에는 무의식적 기억(또는 암묵 기억, 절차 기억)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학자들은 기억을 크게 ‘의식적 기억’과 ‘무의식적 기억’으로 나눈다. 의식적 기억은 말 그대로 의식이 끄집어내는 기억으로 ‘외현 기억’ 또는 ‘서술 기억’이라고 한다. 의식적인 기억에는 스토리를 화자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일화 기억’(또는 ‘자전 기억’)과 조선왕조 연대표와 같은 단편적인 지식인 ‘의미 기억’이 있다. 의식적 기억 장치가 H.M.은 망가졌다.
‘무의식적 기억’은 자전거 타는 법 등 몸에 숙달되는 절차 기억이 이에 속한다. 자전거 타는 기술은 처음에는 말로 들어서 익히나 몸에 익숙해지면 무의식으로 넘어간다. 자신도 모르게 자전거에 올라타게 된다.
H.M.은 1966년부터 사망하기까지 MIT 임상연구센터에만 50회 입원해 조사를 받았다. 수잰 코킨 팀의 면밀한 연구 대상이 돼줬다. 뇌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뇌 영상기구가 나올 때마다 그는 불려가 검사를 받았다. 1970년대에는 뇌 컴퓨터단층촬영술(CT)이 나왔고, 1990년대에는 자기공명영상(MRI) 기술이 나와 H.M.의 뇌에 어떤 손상이 발생했는지를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H.M.은 2008년 사망했다. 그는 기억의 과학 발달을 위해 자신의 뇌를 기부했다. 수잰 코킨의 지휘 아래 그의 뇌는 2401개 조각으로 쪼개졌으며, 철저히 연구됐다.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와 있다. H.M.은 영원히 현재 시제로 살았다. 떠올린 과거가 거의 없었고, 때문에 확인할 데이터베이스가 없어 미래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안다. 공개됐다. 헨리 몰레이슨.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