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은행나무가 이렇게 많았던가. 가을이 돼서야 실감한다. 자연계에 흔하디흔한 초록빛으로 숨죽이고 있다가,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고 엽록소를 잃어가며 은행잎은 눈이 번쩍 뜨이는 노란빛으로 ‘나 여기 있었소’ 하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 거리마다 골목마다 명도 높은 노란색으로 팡팡 폭발한다.
근데 폭발하는 건 빛깔만이 아니다. 냄새도 폭발한다. 노랗게 익은 은행 열매가 내뿜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감싸 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떨어진 열매를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도 있다. 지난가을엔가는 무심코 어느 상점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대뜸 한소리 들었다.
“문 앞에 매트 있어요. 거기에 신발 바닥 닦고 들어오세요!”
그때도 노란 은행잎이 길가에 수북이 쌓여가던 시월의 중순쯤이었다. 상점 주인은 온종일 가게 바닥 청소만 하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게 왜 굳이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데? 세상에 나무가 얼마나 많은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노랗게 물든 가로수 길이 내다뵈는 식당으로 약속 장소를 정한 내가 무색하게 창밖을 보며 핀잔을 했다.
“우리나라 도심 환경을 생각해봐. 공해도 심하고 토양이 비옥한 것도 아닐 테고. 은행나무같이 생명력 강한 나무가 흔한 줄 알아? 게다가 병충해에도 강해서 사시사철 벌레 꾀는 법이 없다고. 은행나무 바로 다음으로 많이 심는다는 플라타너스만 봐도 송충이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는데….”
게다가 친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은행 냄새가 그리 싫지가 않다. 꽤나 오래전 얘기지만, 주위 사람들이 은행 냄새를 두고 하도 난리를 치기에 왜 나는 여태 그런 생각이 한 번도 안 들었나 싶어서, 이상한 경쟁심 또는 탐구심으로 가을이 되기를 기다려 길거리를 배회한 적도 있다. 코를 마구 벌름대면서.
숨을 훅 들이마시자, 과연 감각기관을 얼얼하게 만드는 지린내 비슷한 악취가 코 점막을 통과해 폐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걸 똥 냄새에 비긴다는 건 말도 안 돼! 똥에도 은행에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먹을 수 없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의 냄새는 엄연히 다른데, 은행이 뿜어내는 냄새의 끝에서 새콤하고 달콤한 과육의 여운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톡 쏘는 톱 노트(top note)의 공격(?)을 견뎌내고 나면 고소한 견과류의 맛도 베이스 노트(base note)로 넘실댄다.
쳇, 독한 지린내를 잠깐만 견디면 제법 운치 있는 냄새도 맡아질 텐데…. 욕먹는 은행의 처지에 감정이입이라도 된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은행 냄새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새록새록 맡아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근데 앞으로는 냄새 때문에 성가실 일도 없을 거 같아. 열매를 맺는 건 은행나무 암그루뿐이잖아. 옛날에는 사람들이 수그루만 심고 싶어도 구별이 어려워서 이 모양이 됐지만 요새는 DNA 분석으로 성 감별을 해서 암그루를 수그루로 교체해나갈 거래. 그러면 은행 냄새 같은 것도 다 옛날 얘기가 되겠지.”
뭐야, 그러면 우리나라 초등학교 선생님만 성비가 안 맞는 게 아니라 은행나무도 수적으로 완벽한 남초(男超) 사회를 이루려나. 나를 안심시키려는 친구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뭐든지 성비(性比)가 맞는 게 좋지 않나 하는 미신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자연계의 다른 종은 모르지만, 적어도 은행나무 수그루는 암그루에 비해 너무 못생겼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까짓 일로 기분이 살짝 울적해지기까지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은행나무 암그루가 가지가 좌우로 벌어져 수형(樹形)이 아름다운데 비해, 수그루는 가지가 위로만 빽빽하게 향해서 멀리서 보면 제멋대로 파먹은 솜사탕이나 쥐어뜯어놓은 면봉처럼 멋대가리가 없다.
그제야 창밖에 보이는 은행나무가, 친구의 전망대로라면 앞으로는 보기 드물어질 암컷 은행나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 오후의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나무는 찬란한 노란색을 뿜어냈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마치 금화처럼 반짝였다. 그 아래 포대자루를 들고 서서 막 주워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어릴 적 배운 격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는 건 다 금이다. 금쪽같은 가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김은하 | 번역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