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주간을 맞아 단순하게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미처 몰랐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광주, 경기, 충남, 제주 등 전국에서 열리는 가을 여행주간 행사에 참여하면 가까이 있었지만 의미를 몰랐던 문화·예술품들을 느낄 수 있다.
▶ 근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룬 광주 양림동 문화지도 ⓒ연합
요즈음 문화예술을 배우며 즐기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예술과 문화를 느끼고 즐기는 게 가을 여행의 주목적이다.
광주, 경기, 충남, 제주에서 열리는 ‘아트투어버스’ 프로그램은 각 지역의 핵심 예술·문화 코스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10월 28일 출발하는 예향 광주아트투어는 광주 송정역→광주디자인비엔날레→양림동(윌슨 선교사 사택/호랑가시나무 창작소/최석현 나전칠기/오웬기념각/이장우 고택/한희원미술관)→대인예술시장→송정역 순으로 둘러본다.
전통적인 예향의 도시 광주의 주요 문화예술 거점을 따라 떠나는 아트투어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대인예술시장 등 광주만의 대표 문화 거점들을 방문하고 광주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양림동에서 작가와 만남의 자리를 갖는 등으로 구성돼 있다.
▶ 광주아트투어 코스에 포함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왼쪽) ⓒ광주아트투어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뉴시스
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의 문화예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신념이 만나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문화교류 기관이다. 올해로 제7회를 맞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미래들’이란 주제 아래 4차 산업혁명시대 디자인이 미래에 갖는 역할과 가치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광주 양림동은 광주에서 근대 문화가 가장 먼저 퍼져 옛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으로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거점이 되기도 해 ‘광주의 몽마르트’라 불린다. 대인시장은 광주의 중심지인 대인동에 자리한 전통시장으로, 문화와 예술이 접목된 시장으로 유명하다. 대인시장 내에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으며, 야시장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윤회매(輪廻梅)는 밀랍으로 만든 매화 작품을 말하며 벌이 꿀을 채집해 벌집을 만들고 꿀이 밀이 되고, 밀이 다시 매화꽃이 되는 것이 불교의 윤회설·상생설과 같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양림동의 윤회매 문화관에서는 작가 다음(茶?) 김창덕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새벽을 사랑하는 화가로 불리는 한희원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양림동이 고향이기도 한 한 작가는 양림동을 대표하는 화가로 그의 작품에는 가난한 시골 마을이나 간이역, 강가의 초라한 정미소, 정겨운 신작로 등 옛 풍경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담겨 있다.
별과 미술작품을 보며 가을을 즐기는 코스
11월 3일부터 4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경기아트투어는 ‘별빛 갤러리 낭만투어’를 주제로 진행된다. 합정역에서 출발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송암천문센터→양주아트시티→가나아트파트→합정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트 콘서트가 이 코스의 핵심이다. 미술관 나들이 형식으로 아틀리에(예술작업실) 체험과 가을밤 별자리 스토리텔링, 여행 멘토와 함께하는 모닥불 토크까지 이어져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화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프로 최-페레이라 건축(최성희, 로랑 페레이라)에서 설계했으며,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독특한 미술관으로 2014년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했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장욱진 화백의 장녀 장경수 경운미술관장과 함께하는 아트 토크 콘서트도 즐길 수 있다.
명사와 떠나는 백제시대 시간여행
송암스페이스센터에서는 600mm 국산 1호 천체망원경과 여러 종류의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천체관측소다. 양주의 가나아트파크와 오픈 아틀리에 전시된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전문 큐레이터의 생생한 해설도 즐길 수 있다.
10월 21일에 이어 28일과 29일, 11월 4일 열리는 금강 그랜드 아트투어는 금강을 따라 백제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한국적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신현림(시인), 고재열(시사IN 기자), 오은(시인) 등 명사들이 동행하는 코스다.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 신동엽문학관, 정림사지, 미륵사지, 문화예술의 거리 등 대표적인 문화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은 충남 공주시 송산리에 위치한 백제의 왕릉들로 추정되는 고분으로, 특히 7호분은 무령왕릉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사적 13호·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웅진백제시대의 문화를 주제로 하는 박물관으로서 웅진백제를 주제로 하는 전시실과 충청남도의 역사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실로 구성돼 있으며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부여 신동엽문학관은 시인의 문학정신을 추억하고 기리기 위해 개관한 문학관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은 1929년 발족된 부여고적보존회를 시작으로 80여 년에 이르는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충남 서부 지역의 선사문화를 비롯해 특히 사비백제의 문화유산을 보존 관리하며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나성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성곽이다. 사적 제58호로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 시설로 한반도 최초의 외곽 성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사적 제301호)은 사비성 내에 있는 백제의 중심 사찰이다. 절터는 주요 건물을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한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는 백제시대 최대의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이 왕비의 청을 받아들여 축조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여행
▶ 제주 알뜨르비행장의 작품 ‘파랑새’ ⓒ제주아트투어
▶ 금강 그랜드 아트투어의 익산 미륵사지(왼쪽) ⓒ충남아트투어
제주아트투어의 제주현대미술관 ⓒ제주아트투어
10월 22일·29일, 11월 5일 즐길 수 있는 제주 비엔날레 그랜드아트투어는 제주의 예술을 한가득 담았다. 한껏 밀착해 제주도의 예술활동을 감상할 수 있는 여행이다. 제주공항→알뜨르비행장→해변 산책→제주현대미술관→제주도립미술관→제주공항 순서로 진행된다.
알뜨르비행장은 일본이 모슬포 주민을 동원해 조성한 군용 비행장이다. 군 기지의 흔적인 격납고와 벙커가 남아 있는 아픔의 땅에서 역사와 장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예술가들의 작업을 관람할 수 있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비엔날레 기간 동안 생태와 예술의 관계,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태도,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함께할 수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관광의 역사, 관광 데이터, 랜드마크, 관광기념품, 오버 투어리즘 등 관광 메커니즘(mechanism)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다룬다.
여행 주간을 맞아, 매월 마지막 수요일(10월 25일)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역시 지역별로 더욱 풍성하게 열린다. 지역별 행사는 문화가 있는 날 누리집(www.culture.go.kr/w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번 가을 여행주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과학관 체험프로그램, 국방부 안보견학 프로그램,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체험휴양마을 할인, 환경부 국립공원·생태관광지 특별 프로그램, 국토교통부 지역별 철도 연계 패키지 여행상품 10선, 해양수산부 어촌체험마을 프로그램, 중소벤처기업부 전통시장 가을축제, 문화재청 4대 궁 및 종묘 할인, 산림청 누리소통망(SNS) 경품이벤트 등 정부 각 부처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욱진 미술을 한눈에
경기 아트투어,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우수진(사진) 에듀케이터는 “마치 아이들이 장난친 것 같은 장욱진 작가의 작품을 아이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경기 아트투어 ‘별빛 갤러리 낭만투어’ 코스에 포함된 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먹그림과 도자기그림—선·선·선(線·禪·善)’ 전시회를 개최 중이다. 장욱진의 ‘먹그림’ 작품 30여 점과 윤광조, 신상호 등 도예가들과 함께 협업해 제작한 도화 작품 30여 점을 전시 중이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처럼 단순하게 아이, 동물, 집, 해, 달, 산을 그린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다.
화가 장욱진(張旭鎭)은 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다. 장욱진은 가족이나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주로 그렸다. 장욱진은 1947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신사실파’를 결성했는데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 에듀케이터는 “그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붓의 운필을 통해 하나로 어우러진 각각의 메타포들은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조형성을 지니고 있다”며 “간결한 선에 응축된 에너지가 자유로운 붓놀림을 통해 하나의 즐거운 유희로 발현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각공원도 있어 장욱진미술관은 가족과 연인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유명하다. 우 에듀케이터는 “경기 아트투어는 관람객들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작가의 미술 세계를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가 장욱진은 평소 ‘나는 심플하다’고 말했다”며 “평생을 자연 속에서 심플한 삶을 살면서 그림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선·선·선 전시회 ⓒC영상미디어
“조선시대 문인들의 정취를 느껴보세요!”
문화가 있는 날엔 ‘종로문화산책’
10월 마지막 수요일인 25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가을 여행주간을 맞아 더욱 풍성한 행사가 준비 중이다. 문화가 있는 날 열리는 ‘원데이. 종로문화산책’ 역시 종로의 역사를 친근하게 전할 예정이다. 코스는 ‘시정(市井)의 문학, 골목의 문인들’ 및 ‘모던보이들의 종로’ 두 가지다. 모두 문화탐방 해설사들이 동행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시정(市井)의 문학, 골목의 문인들’ 코스는 상촌재, 위항문학 벽화, 송강 정철 시비, 송석원 터, 천수경 터, 수성동 계곡을 돈다. ‘모던보이들의 종로’는 횡보 염상섭 동상, 이상의 집, 염상섭 생가 터, 이상범 가옥, 윤동주 문학관 등지를 방문한다. 스탬프 투어도 있어 미션을 완료하면 소정의 상품을 수여한다.
당일 문화 해설을 담당하는 인문학자 이용희(사진) 씨는 “서울 종로구 구석구석을 돌면서 문학과 역사를 설명할 예정”이라며 “미처 몰랐던 종로의 역사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복궁 서쪽 지역을 포함하는 서울 종로구의 통의동, 체부동, 누상동, 옥인동 등지는 조선시대에 중인계급이 주로 거주했던 생활공간이었고 1920~1930년대에는 조선의 걸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문학적 기량을 갈고닦던 ‘문학공간’이었다.
이용희 씨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경복궁 서쪽 지역을 무대로 번성했던 문학은 서민들의 생활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시정(市井)의 문학’이었다”며 “종로를 거닐며 이들의 문학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 ‘원데이, 종로문화산책’의 내외주가. 내외주가는 문학공동체인 ‘송석원 시사’의 맹주로 알려진 천수경 집터이다. ⓒC영상미디어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