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의외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으로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에 근무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에서 후학을 기르고 있다. 그의 이력만 보면 원전을 예찬할 것만 같다. 하지만 원전 현장에서 안전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박종운 교수가 내린 결론은 “원전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갖고 에너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원전을 둘러싼 환상에 가감 없는 일침을 가하며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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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 교수의 전문 분야는 ‘원전사고 대응과 안전’이다. 전공을 살려 2013년 월성 1호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실시했고 원전사고 시 방사능 누출량, 내진 테스트 기간 등 평가에서 보완돼야 할 점을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요구했다. 이후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취소 소송을 낼 때 원고 측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원자력 학계의 집단 성명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원전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 추가 건설을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이쯤 되면 원자력계의 소신 있는 이단아가 맞다.
박 교수는 스스로를 “탈원전론자도 친원전론자도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단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우선 에너지전환이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점으로 선진국이 원전 축소를 주도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일마저 원전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어 원전 제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전이 주는 편익과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상황을 왜곡해서 바라봐왔다고 했다. 세계적 흐름에서 원전은 사양 추세이고 재생에너지는 확대되는데 한국도 이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높은 원전 밀집도, 위험성 배가
세계적 추세에는 이유가 있는 법. 원전 보유국은 우리와 같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기에 참고할 만하다. 원전 선행국이 이탈하는 이유는 ‘안전과 비용’이다. 박 교수는 원전이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그를 만난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경북 포항을 덮쳤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긴급 재난 문자가 4.6의 추가 지진을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 안전상황 점검을 지시했으며 한수원도 모든 원전이 정상 운전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원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 발생하는 지진 규모가 커지고 주기도 짧아져 불안함 역시 배가되고 있다. 정부가 모든 원전이 규모 7.0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학생들이 수업 도중 대피에 나섰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보다 먼저 원전을 지은 해외에서는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원전 안전에 신경 쓴다. 안전 강화는 그만큼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2011년 프랑스는 원전을 건설하는 데 강철에 탄소가 과다 함유된 사실을 발견했다. 프랑스는 문제의 강철이 공급된 원전 20기를 한꺼번에 일시 중지시켰다. 그만큼 강력한 안전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일본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을 일시 중지하고 대대적 점검에 나섰다. 재가동 승인은 강화된 원전 가동 조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으나 재가동에 들어간 원전은 총 42기 중 5기에 불과한 실정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일본 원전의 재가동이 절반도 이뤄지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원전 비용에는 안전이 저평가돼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원전 1기당 수명 연장 비용으로 프랑스는 약 2조 원, 우리나라는 약 2000억 원을 책정했습니다. 폐로비용에 영국은 1조 8000억 원, 독일은 3조 6000억 원인 데 반해 고리 1호기는 6400억 원 수준입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투입하면서 안전성 보장을 자신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한빛 4·5·6호기에서 부실시공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 보관 건물 외벽과 보조건물 내벽에 구멍이 잇따라 발견된 것이다.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원전이 밀집해 건설된 지역은 위험성에 더 노출된다. 그럼에도 원전을 줄이면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이에 박 교수는 “원전 비율이 70% 이상인 프랑스는 전기요금이 안 올랐을까?”라고 반문한다. 2009~2014년 프랑스의 전기요금은 44.6% 올랐다. 원전과 전기요금 인상의 상관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이다. 원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에서 방사능이 나온다. 최종 처리장에 옮겨지기까지 중간 저장을 10년 이상 하며 방사능을 떨어뜨리지만 여전히 강한 방사능이 누출된다. 때문에 사용후핵연료를 수용할 지역이 없을뿐더러 보상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도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흔히 이 현상을 ‘화장실 없는 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서울에 처리장을 짓자고 하면 동의할 건가?”라고 물었다. 섣불리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당연한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마찬가지로 어느 지역도 사용후핵연료 처리장을 원하지 않을 거라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m 내에 노출되면 1분 안에 죽을 것”이라고 하니 누구도 근처에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경주 월성에 있는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결정할 때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중저준위는 원전 내에서 사용한 작업복, 장갑, 교체 부품 등으로 방사능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그런데도 부지 확보에 20년이 걸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 부산물 등 고준위 처리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대안이 없다. 2013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개최하며 수백 번 논의를 진행했지만 평행선만 달릴 뿐이었다. 최종 처리장 확보가 어려우니 중간 저장시설 건설에 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중간 저장시설은 최종 처리장에 가기까지 머무는 임시 저장소로 콘크리트 건물에 건식으로 저장하는데 수명이 100년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왜 몰랐을까? 알려고 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알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침묵했기 때문은 아닐까? 박종운 교수가 이단아를 자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분야도 단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드러내고 논의를 하며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에너지전환 정책이 수십 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질 텐데 원전도 재생에너지 발전과 조화롭게 맞춰 가야 하지 않을까요.”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