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A대표팀에 사령탑이 새로 오면 나름의 ‘허니문 기간’을 가진다. 새 감독과 그가 이끌 새로운 대표팀 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어 뜨거운 응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신태용호는 그렇지 못했다. 주지했듯, 출범 후 네 경기에서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면서 사방에서 날선 비난이 날아들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온전히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시끄러웠던 이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11월 A매치 2연전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남겨야 했다. 실험과 동시에 결과를 내야 하는 쉽지 않은 미션이 주어졌는데, 다행스럽게도 해냈다. 강적을 상대로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 11월 14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구자철 선
수가 골을 넣고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연?
막바지 위기에서 길을 찾다
결과를 소개하기에 앞서 강조할 부분이 있다. 11월 A매치 2연전의 상대는 최근 3년간 태극전사가 마주한 상대 중 스페인·체코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팀이었다는 점이다.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은 콜롬비아는 2014 브라질월드컵 8강에 오른 남미의 전통 강호이며, 나흘 후 울산문수경기장에서 만난 세르비아 역시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 D조에서 아일랜드·웨일스·오스트리아 등 유로 2016 본선 진출국을 모조리 따돌리고 티켓을 손에 넣은 팀이다. 이처럼 강호인 두 팀을 상대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놓인 신태용호가 과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기서 또 밀리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축구계의 바람과 달리 신 감독이 정말로 지휘봉을 내려놓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돌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신태용호는 하메스 로드리게스 등 스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한 콜롬비아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더니, 한때 첼시의 간판 수비수로 맹활약했던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를 중심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한 세르비아와도 물러섬 없는 일전을 벌여 1-1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어렵다고 여겼던 경기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인 1승 1무를 거둬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 콜롬비아전을 하루 앞둔 11월 9일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공식훈련 전 신태용 감독과 토니 그란데 코치가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단순히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도 흡족하다. 신 감독이 새롭게 내세운 4-4-2 포메이션에 대한 선수들의 이해도가 대단히 높았다. 그간 A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볼 점유에만 치중하는 경 향이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 포메이션인 4-4-2를 바탕으로 한 압박과 속공으로 팀 컬러의 변화를 꾀한 게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손흥민·기성용 등 그간 부상 등의 이유로 부진했던 에이스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한 것 역시 호재다. 특히 13개월간 필드 골이 없었던 손흥민이 다시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빈공에 시달리던 신태용호에 큰 힘이 됐다. 기성용은 전술적 측면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보였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로 공격 전개의 방향타 구실을 하던 기성용이 돌아오면서 보다 수월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연속 실점 기록을 이어가긴 했어도, 10월에 치른 두 차례 A매치에서 일곱 골이나 내주던 수비가 안정된 점도 이번 2연전에서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전리품은 자신감이다. A대표팀은 그간 심각한 부진 때문에 외부로부터 십자포화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 선수들이 공을 넘겨받는 걸 두려워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주눅 든 감이 있었는데, 이 악물고 이번 두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면서 다시 팬들의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득 충전했고, 이는 월드컵 본선 준비를 위한 커다란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경기 결과에 도취돼선 안 된다. 겨우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숨 돌릴 틈 없이 월드컵 본선을 향한 여정이 이어진다. 오는 12월 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상대가 결정된다. 객관적 전력상 강하다고 볼 수 없어 어느 팀을 만나도 힘든 경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되찾았으니 필요 이상으로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본선 조 추첨식 이후, 한국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 경기를 치러야 할지도 결정된다. 당연히 본선 경기장 점검 및 베이스캠프 선정 작업도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 특히 베이스캠프는 상당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베이스캠프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맛본 실패의 기술적 원인 중 하나로도 거론됐다. 경기를 치를 도시에서 항공편으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라 오로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포스 두 이구아수를 베이스캠프로 삼았었다. 분명 환경적 측면에서는 대단히 좋긴 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든 한 시간 이상의 항공편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당연히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도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이러한 잘못된 결정은 대회 직후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백서에도 포함됐다.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단을 이끌 신 감독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내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러시아 각 도시를 면밀히 살핀 후 환경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이동으로 선수들의 컨디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그라운드가 아닌 곳에서도 신태용호의 월드컵 본선 준비는 치밀하면서도 뜨겁게 진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12월 동아시안컵 어느 때보다 중요
본선 조 추첨식이 끝나면 12월 9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에 돌입한다. 동아시아를 근거지로 뛰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엔트리를 구성해 중국·일본·북한과 맞붙어야 하는데, 이 대회 역시 11월 A매치와 마찬가지로 실험과 결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보통 동아시안컵은 우승 여부를 떠나 선수 자원 기량 점검 정도로 끝나는 대회다. 신 감독도 이 점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라이벌전 시리즈다. 참고로 한일전에선 일명 ‘박지성 산책 세리머니’로 기억되는 2010년 6월 사이타마 원정 경기 이후 승리가 없으며, 한중전에선 불과 얼마 전 0-1로 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A매치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에도 밀린다는 점은 최근 A대표팀을 바라보는 팬심이 악화되는 데 꽤 큰 영향력을 주고 있다.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제 막 세찬 소나기를 피하게 된 신태용호가 동아시안컵에서 다시 삐끗하게 될 경우 11월 A매치를 통해 가까스로 잦아든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게 팀을 뒤흔들 수 있다. 만에 하나 이럴 경우 월드컵 본선 준비에도 또다시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팀을 뒤흔드는 외부 충격은 더는 있어선 안 된다. 따라서 선수들의 기량 점검이라는 실험에 지나치게 함몰돼서도 곤란하다. 동아시안컵은 11월 A매치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더욱 증폭시킬 도약대로 삼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응당 팬들을 만족시킬 성적이 필수다.
김태석 |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