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과학] 감은 왜 나눠 먹어야 맛있을까

2018.11.25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대학 동창이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고향집 감나무를 자랑했습니다. SNS는 원래 자랑하는 공간이죠. 친구가 자랑을 하면 부러워해주는 게 또한 그 공간의 예의 아니겠습니까? 친구의 자랑에 “아주 부럽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친구는 고맙게도 대봉시를 한 박스 보내주었습니다. 오고 가는 자랑과 칭찬 속에서 명랑 사회가 싹트네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급한 마음에 크게 한 입 베어 물은 대봉시에서 엄청 떫은맛이 나는 겁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잠깐! 떫은맛이라니…. 떫은맛이라는 맛도 있나요? 학교에서는 혀가 느끼는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뿐이라고 배웁니다. 그리고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떫은맛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떫은맛도 분명 맛이 아닐 겁니다. 밥알을 입 안에서 굴려보세요. 밥알이 어디에 있는지, 밥알의 상태가 어떤지 잘 알 수 있잖아요. 바로 촉각 때문입니다. 떫은맛도 촉각입니다. 어떤 물질이 침 속이나 입 안의 점막에 있는 단백질에 들러붙으면 입 안의 촉각세포에 불쾌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때 떫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감에서 떫은맛을 내는 성분은 타닌(tannin)입니다. 타닌이 감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타닌은 과육 세포 속에 띄엄띄엄 존재하죠. 동물세포와는 달리 식물세포에는 액포(液胞)라는 소기관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물주머니입니다. 보통은 세포의 크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포 부피의 80% 이상을 차지하지요. 그런데 액포는 영양소나 독을 저장하거나 세포에서 필요 없는 물질을 분리해서 저장하는 역할도 합니다. 타닌은 바로 이 액포 속에 들어 있습니다. 단단한 감을 칼로 잘라보면 깨알처럼 작은 갈색 점이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타닌 얼룩입니다.

감에만 타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식물에 타닌이 들어 있죠. 길거리에서 마른 잎 하나 아무거나 집어서 씹어보세요. 떫은맛이 납니다. 마른 잎은 절반이 타닌이거든요. 식물에 타닌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화학자들은 타닌의 떫은맛이 초식동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방어 수단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파리가 아니라 과일에서 떫은맛이 나는 것은 열매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데 적합하지 않거든요. 모든 생명체의 최고 사명은 바로 번식입니다. 식물에게 번식이란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지요. 한자리에 뿌리 내리고 사는 식물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움직일 수 있으면 동물이지요. 하지만 식물도 씨앗은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씨앗이 자기 주변에 떨어지면 자기 후손과 경쟁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니까요.

식물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개발했습니다. 열매도 그 가운데 하나죠. 열매는 동물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동물은 단맛이나 신맛이 나는 열매에서 영양분을 취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씨앗을 먼 곳에 퍼뜨립니다. 사방에 다니면서 똥을 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동물은 떫은맛이 나는 열매는 먹지 않죠. 따라서 떫은맛이 나는 열매는 식물의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왜 열매 속에 타닌 성분을 저장할까요?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아직 씨앗이 충분히 여물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런데 동물이 와서 냉큼 열매를 따먹으면 동물에게 애써 축적한 양분만 제공할 뿐 자신의 번식에는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씨앗이 여물 때까지는 떫은맛을 내서 씨앗을 감싸고 있는 열매를 지키는 것이지요.

식물은 씨앗이 충분히 여물면 열매의 떫은맛을 없앱니다. 타닌을 없애는 것은 아니고요. 타닌이 더는 물에 녹지 않는 형태로 바꾸는 겁니다. 그러면 점막의 단백질에 달라붙지 못하거든요. 씨앗이 여물면 식물에서는 타닌의 형태를 바꿔주는 호르몬이 합성됩니다. 에틸렌(ethylene)이 바로 그것입니다. 에틸렌은 아미노산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입니다. 에틸렌은 싹을 틔우고,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열매를 숙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환경이 나빠져도 에틸렌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가뭄이 든다든지 서리가 내리면 식물이 자라기 어렵잖아요. 이때 에틸렌을 합성해서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얼른 열매를 숙성시키죠.

충분히 성숙한 열매가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지면 그제야 동물들이 먹습니다.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새들도 떫은맛은 느낍니다. 그래서 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요. 까치밥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이 충분히 익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은 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지혜롭습니다.

사람들은 감에서 떫은맛을 속히 제거하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빈 술독에 넣어두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술독에 남아 있는 알코올 성분이 타닌의 성질을 바꿔줍니다. 물에 녹는 타닌을 더는 물에 녹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나무에게 배운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에틸렌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화학물질에 겁을 내고 또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떫은 감과 사과를 함께 놔두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흔한 과일인 사과에서 에틸렌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모든 사람이 화학물질을 겁내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잘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죠. 이들은 에틸렌의 성질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합니다. 에틸렌은 꺾은 꽃이나 수확한 열매에서도 계속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꽃병에 꽂아둔 꽃이 시들게 되는 것이지요. 또 채 팔리지 않은 열매가 물러터지게도 됩니다. 그렇다면 화훼업자와 과일 도매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식물이 에틸렌을 합성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화학물질을 사용합니다.

저는 친구가 보내준 대봉시를 몇 개씩 나누어서 그늘에 두었습니다. 그런데요. 홍시로 익어가는 속도가 거의 같더군요. 아무리 감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하루 세 끼를 감만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채 익지 않은 대봉시를 이웃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비록 대봉시가 번식을 하지는 못하지만 널리 퍼뜨리라는 대봉시의 정신은 지켰습니다. 떫은맛을 내어 널리 나눠 먹게 하는 자연의 섭리에 고개를 숙입니다. 감에서 하나 배웠습니다. 감은 나눠 먹어야 맛있습니다.


이정모

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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