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꼭 쓰려고 했던 책인데! 언젠가 정원을 가꾸게 되면, 바로 이런 책을 쓰고 싶었는데. 카렐 차페크의 <원예가의 열두 달>을 읽으며 나는 무릎을 쳤다. 부러움과 반가움과 애틋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꽃과 나무를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면서도 어딘가 서투르고 성질이 급한 나머지 걸핏하면 실수를 저지르고 매사에 투덜거리는 사람, 그럼에도 ‘정원가로 살아가는 일’에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정원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쓸 수 있는 책도 아니며, 정원을 가꾼 남의 이야기만 들어서도 안 되며, 반드시 내가 직접 정원가의 삶을 실제로 살아야만 쓸 수 있는 책이기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카렐 차페크의 <원예가의 열두 달>은 ‘언젠가 나도 꼭 나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거야’라는 꿈을 꾸며 매연과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상큼한 강펀치를 날린다. 이 책은 ‘마음속에서만 가꾸는 정원’의 환상을 단번에 날려주며 ‘진짜 정원 가꾸기란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거란다, 그래도 도전할래?’라는 패기 넘치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카렐 차페크가 제안하는 정원가의 삶은 결코 뜻밖의 고생만으로 얼룩진 것이 아니다. 그는 일상의 모든 에너지를 탈탈 쏟아부어야만 느낄 수 있는 정원 가꾸기의 아름다움, 때로는 휴가까지 반납해야 할 정도로 ‘풀타임 잡’에 가까운 정원 가꾸기의 일상 속에 깃든 찬란한 생의 신비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알고 있다. 우리가 꽃과 나무와 하늘과 땅을 그리워하는 인간인 한, 생명이 있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정원 가꾸기의 이상을 결코 버리지 못할 것임을. 정원 가꾸기란 끊임없이 날씨의 변동과 꽃들의 예측 불가능성에 좌절하면서도, 그럼에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 집 안으로 초대하는 삶의 눈부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었다.
정원가가 된다는 것은 한 세계를 낳는 것, 그리하여 그 세계를 아무런 군말 없이 온전히 품어 안는 더 커다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멜빵바지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땀을 닦으며 친구들에게 ‘내 정원에 놀러 오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정원가의 삶을 꿈꾸었다. 화가 클로드 모네처럼, 작가 헤르만 헤세처럼, 그리고 작가이자 정원가였던 카렐 차페크처럼. 나도 언젠가는 나의 정원으로 당신을 초대할 수 있는 사람,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 집 안으로 초대할 수 있는 꿈 많고 바지런한 정원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 멀리 나갈 필요 없이 바로 내 집 안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바로 정원 가꾸기의 힘이다. 나는 카렐 차페크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저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돌봐야 할 작은 정원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서로에게 너그럽고 사랑이 넘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카렐 차페크의 글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정원 가꾸기란 자신의 작은 앞마당을 더없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우주로 만드는 일임을.
정여울│문학평론가. <내성적인 여행자>,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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