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홀에서 열린 ‘촬영감독과의 대화’에서 촬영감독들이 관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
여러가지 이슈들로 지금은 영향력과 규모가 급감한 부산국제영화제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지난 2011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끝난 뒤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오인혜였다. 물론 그가 레드카펫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드레스가 화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부산국제영화제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었고 개막식 시청률도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징물로 건립된 영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첫 개막식은 그렇게 오인혜라는 뜨거운 검색어와 함께했다. 당시 전 세계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그즈음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였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오인혜가 1위 자리를 오랜 기간 지켰다. 그만큼 부산국제영화제는 막강했다.
▶ 개막식 사회를 맡은 배우 장동건과 소녀시대 윤아
▶ 파격드레스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배우 서신애
진정한 터전인 영화의 전당을 건립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기대감이 컸다. 영화 ‘다이빙벨’로 시작된 논란을 어느 정도 극복한 만큼 더 이상 정치적 외압이 없는 영화 축제로 거듭날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또 하나의 핫한 검색어로 시작됐다. 바로 서신애다. 아역배우 출신인 서신애는 올해 스무 살이 됐다. 아역배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서신애는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개막식에 등장했고, 그 모습은 금세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문근영과 윤아 등의 드레스도 눈길을 끌며 화제몰이에 나섰다.
현장 분위기 달군 문재인 대통령 깜짝 방문
그렇지만 TV로 중계되는 화려한 개막식 레드카펫 열기와 달리 현장은 그리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했다. 워낙 사람이 적었다. 남포동에서 시작해 해운대로 주 무대를 옮긴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전당 건립 이후 그 중심이 센텀시티로 바뀌었다.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영화 상영 등 영화제의 중심은 센텀시티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이 해운대와 센텀시티로 나뉘면서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개막식이 열린 10월 12일과 13일 해운대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13일 오후 5시 10분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시작된 장동건의 오픈 토크 행사는 다소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톱스타의 오픈 토크 행사는 차량에서 내려 행사 무대까지 이동이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 자리에서 장동건은 “부산국제영화제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다. 최근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계속해서 국제적 명성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면서 “더 좋은 영화제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문화예술계에 정치적 성향을 띠는 것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스타들의 아쉬운 마음은 13일에도 내내 이어졌다. 영화 ‘메소드’ 야외무대 인사에 참석한 배우 출신 감독 방은진은 “1회 때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까이서 봐온 사람으로 그때 있었던 많은 분들이 지금은 이곳에 안 계셔서 마음이 아프다”며 “부산영화제가 오래갈 수 있도록 영화제를 사랑하는 분들 모두 힘을 실어달라”고 울먹이며 호소했다.
문소리 역시 오픈 토크 행사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설날과 추석처럼 영화인인 내게는 큰 명절”이라며 “나는 개·폐막식 사회, 작품으로도 참석, 오픈 토크 등 부산영화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다. 이렇게 계속 부산영화제를 위해 무언가를 하며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영화 <남한산성> 출연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다행히 분위기는 토요일인 14일 반전됐다. 아무래도 12일과 13일 해운대가 다소 조용했던 까닭은 너무 긴 추석 연휴 직후라는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긴 연휴를 보내고 주중에 다시 일상에서 벗어나 부산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분위기는 주말을 맞은 14일 완전히 해소됐다. 해운대 비프빌리지는 오후 2시 이제훈의 오픈 토크 행사 때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해 오후 5시 이병헌 등이 참석한 ‘남한산성’ 야외무대 인사를 즈음해서는 절정을 이뤘다.
▶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
▶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김희라·김수연 부부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목요일에 개막해 열흘 동안 열린다. 아무래도 절정은 개막식부터 토요일까지 사흘 간이다. 부산을 찾는 스타들과 취재진도 대부분 일요일까지 부산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일반 관광객도 주말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 상당수의 스타와 취재진이 철수하면 다소 차분해진 분위기에서 영화 상영을 중심으로 영화제가 이어진다.
올해도 일요일인 10월 15일부터 영화제가 다소 차분해지는 분위기였지만 깜짝 반전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것.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자격으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최초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를 관람한 뒤 GV(관객과의 대화)에도 참여한 문 대통령은 이후 예비 영화인들과의 오찬,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들과 함께한 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부산국제영화제를 과거의 위상으로 되살리겠다는 생각”이라며 “초기처럼 정부와 부산시가 지원은 하되 운영은 영화인에게 맡기는(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살리면 된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올해 부산을 찾는 스타들과 취재진, 그리고 영화팬들 사이에선 기대감이 컸다. 지난 몇 년 부진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에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 기반에 있었다. 그럼에도 올해 역시 아쉽다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문 대통령의 깜짝 방문으로 내년 영화제에 대한 희망이 다시 이어지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 방문 이후 월요일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시 썰렁해지나 싶었는데 10월 17일 또 한 번 반전이 있었다. 배우 고현정이 그 주인공. 고현정은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에서 열린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GV에 참석했다. 사실 고현정은 13일 GV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불참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측을 조금은 아쉽게 만든 바 있다. 결국 고현정은 고심 끝에 17일 GV 참석을 확정지었는데 이것은 신의 한 수가 됐다. 고현정의 GV 참석으로 부산국제영화제는 활기를 되찾았고 그의 다양한 발언이 화제를 유발하며 또다시 부산국제영화제에 뜨거운 관심을 끌어모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세 번째 살인’ 등 화제작
사실 부산국제영화제의 힘은 출품 영화들에 있다. 개막식부터 토요일까지 사흘 동안은 스타급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행사에 포커스가 집중되지만 일요일 오후부터 한 주 동안은 올곧이 출품 영화들의 힘으로 영화제가 진행된다. 따라서 진정한 영화팬들에게는 오히려 월요일 이후가 진짜 축제일 수도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출품작 가운데 가장 관심이 뜨거웠던 영화 중 하나는 일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10월 15일 오후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야외무대 인사 행사가 열렸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많은 팬들이 비프빌리지에 몰려들어 국내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그대로 보여줬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야외무대 인사에 참석한 배우 하마베 미나미와 츠키카와 쇼 감독은 이날 밤 야외 상영과 GV에도 함께했다. 이 영화는 10월 18일과 20일에도 큰 호응을 끌어내며 상영됐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세 번째 살인’도 큰 관심을 받은 영화다. 부산국제영화제와도 매우 친숙한 일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의 유명 연기파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출연해 더욱 화제가 됐는데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또 다른 영화 ‘맨헌트’ 역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세 번째 살인’은 10월 19일 기자시사회와 기자회견 등 공식 일정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19일과 20일 일반에 상영되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마지막 후반부에 큰 힘을 실어줬다.
신민섭 | 일요신문 기자
사진|신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