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과학자 세 명이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됐다. 행동유전학자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쉬, 마이클 영·모두 미국인이다. 초파리가 하루 24시간이란 생체 주기를 갖고 있다는 메커니즘을 알아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유전학자가 실험하는 초파리는 노랑초파리다. 학명은 드로소필라 멜라노가스테르(Drosophila Melanogaster). 영어권은 이 초파리를 과일 파리(fruit fly) 또는 초산 파리(vinegar fly)라고 부른다.
초파리 과학자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건 이번으로 여섯 번째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 마틴 브룩스의 <초파리>(2002)에 따르면, 1933년 미국 컬럼비아대학 유전학자 토머스 헌트 모건이 염색체에 유전자가 있다는 걸 알아낸 공로로 처음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1946년 허먼 조지프 멀러(유전학자. 돌연변이 초파리를 X선으로 만들어냄), 1995년 에드워드 루이스, 크리아티안 뉘슬라인-폴하르트, 에릭 위샤우스(배아 발달에서 유전자 통제 과정을 발견), 2004년 리처드 액셀(냄새 수용체와 후각 시스템 구조 발견), 2011년 율레스 호프만(면역체계 활성화하는 수용체 발견), 2017년 홀, 로스배쉬, 영(24시간 신체 활동 주기 분자의 메커니즘 발견)이 그들의 초파리 사랑을 보상받았다.
초파리는 마치 과학자를 돕기 위해 디자인된 듯 하다
초파리는 1900년 미국 하버드대학 윌리엄 캐슬 교수 실험실에서 모델 생물로 데뷔했다. 찰스 다윈과 같은 박물학자가 화석과 표본을 수집하던 관찰생물학 시대가 19세기로 끝나고, 20세기 들어 실험생물학 시대가 열릴 때였다. 초파리는 이후 110년 넘게 꾸준히 과학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초파리 연구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한창이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케임브리지대학 유전학과는 초파리 사육 센터(Fly Facility)를 갖고 있다. 이곳에서는 500만 마리를 키운다(초파리가 든 실험관 튜브 기준으로는 6만 개). 센터는 유전학과 내 30개 연구 그룹에 초파리를 공급한다.
초파리는 무엇보다 키우기가 쉽다. 몸 크기가 작고, 생활 습성이 까다롭지 않아 가둬 키우고 먹이기가 편하다. 생애 주기가 2주일로 짧아 변이 연구를 하기에 좋다. 수컷과 암컷 두 마리를 같이 플라스틱 시험관에 썩어가는 바나나와 함께 넣어놓고 2주 뒤에 보면 새롭게 연구할 다음 세대가 태어나 있다.
유전학은 특히 초파리에 의존해왔다. 영국 유전학자 스티브 존스(<자연의 유일한 실수, 남자> 저자)는 “초파리는 마치 과학자를 돕기 위해 디자인된 듯하다”고까지 말한다. 알려진 인간 질병 유전자 75%가 초파리에게서도 발견된다. 다운증후군, 알츠하이머, 자폐증, 당뇨병, 그리고 모든 형의 암 관련 유전자가 초파리에도 있다.
한국에도 초파리 과학자가 있다. 카이스트 최광욱 교수, 전남대 김창수 교수는 <초파리> 책에 등장하는 시모어 벤저(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시모어 벤저는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세 명의 학문적 아버지로, ‘행동유전학’의 대부다. 행동유전학은 “초파리 행동 뒤에는 유전자가 있다. 그러니 초파리 유전자로 그 행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창수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연구를 위해 초파리를 몇 마리나 키우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전적으로 다른 초파리 돌연변이 라인 수백 종을 갖고 있다”면서 “1라인당 수십 마리씩을 손가락보다 큰 유리관 병에 넣어 키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초파리로 줄기세포 연구를 한다고도 했다.
마틴 브룩스의 <초파리>에서 등장하는 초파리 연구자는 크게 보아 다섯 명이다. 유전학자 토머스 헌트 모건, 허먼 멀러, 유전발생학자 에드워드 루이스, 집단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행동유전학자 시모어 벤저. 이들을 통해 인간이 초파리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를 얘기한다.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 연구의 대부다. 그의 존재감은 제자 그룹이 엄청나게 넓은 데서 알 수 있다. 모건은 초파리 눈 색깔의 돌연변이를 연구했다. 초파리 눈은 빨강인데 흰 눈을 가진 초파리 돌연변이가 나타난 걸 보고 ‘유전의 법칙’을 찾아냈다. 체코 제2도시 브르노의 가톨릭 수사 그레고어 멘델이 1866년 완두콩으로 알아낸 걸, 1911년 초파리 눈 색깔로 다시 확인했다. 모건의 발견이 현대 유전학의 시작이다.
초파리 연구자는 가도 초파리는 영원하다
모건은 컬럼비아대학 내 4층짜리 셔머혼 홀 건물 내 ‘파리실(fly room)’이라고 불리는 방에서 수억 마리의 초파리를 키웠다. 모건은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직선으로 배열돼 있다고 믿었고, 각각의 유전자는 염색체 위에 정해진 위치를 차지한다는 걸 알아냈다.
모건의 성공으로 초파리는 유전학자가 선호하는 실험 생물이 됐다. 1910~1911년에는 초파리 연구 실험실이 미국에 다섯 군데, 유럽에 두 군데밖에 없었다. 하지만 1936~1937년에는 미국 26곳, 유럽 20곳에서 초파리 실험을 했다. 하지만 초파리는 1950년대 실험실에서 급속히 인기를 잃었다. <초파리> 저자 마틴 브룩스는 “스스로의 성공 때문에 희생됐다”고 말한다. 유전 법칙을 알아낸 유전학자가 그다음 단계로 연구한 건 유전자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가였다. 이는 분자생물학과 생화학 영역으로 전혀 다른 실험 생물, 즉 가장 기본적인 몸을 가진 생물이 필요했다. 초파리 대신에 단순한 생물 4총사가 1950년대 중반에 각광받았다. 바이러스, 세균, 효모, 곰팡이 시대였다. 하지만 1970년대 초파리는 다시 유전학자 실험실로 복귀했다. 초파리는 발생생물학자와 행동유전학자의 부름을 받았다.
<초파리>에 나오는 위대한 초파리학자 다섯 명 중 마지막 인물은 시모어 벤저다. 그의 후학이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된 제프리 홀 등 행동유전학자다. 행동유전학이 흥미로운 게 미국 개미 연구자 에드워드 윌슨(하버드대학) 때문이다. 윌슨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생물학자가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 1970년대 중반 박수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사회학자는 사회학이란 영역을 생물학자가 넘보는 데 불같이 화를 냈고, “사람 행동은 단순한 유전자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공격했다.
윌슨 주장이 일정 부분 옳다는 걸 유전자 연구로 증명해낸 게 시모어 벤저다. 가령 벤저는 바보 초파리를 만들었다. 유전자 돌연변이인 바보 초파리는 학습을 시켜도 기억 수준이 바닥이었다. 유전자가 바뀌면서 학습 행동에 변화가 온 것이다. 벤저 연구실 출신 팀 털리(Tim Tully)는 학습 지진아인 새대가리 초파리의 학습 장애를 유전적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유전자를 바꾸면 기억 행동을 다시 바꿀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시모어 벤저는 2017년 노벨상에서 주목받은 두 개의 유전자 중 하나인 ‘피리어드 유전자’ 발견자다. 그와 그의 제자 로널드 코노프카가 1971년 초파리 24시간 리듬을 유지하는 이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들은 행동유전학 개척으로 노벨상 수상이 오랫동안 예상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됐다. 김창수 교수는 “코노프카가 갖고 있던 돌연변이 초파리를 넘겨받은 게 제프리 홀이다. 코노프카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종신교수가 되지 못해 학교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제프리 홀은 크게 공헌한 게 없다고 본다. 그와 같이 연구한 로스배쉬가 분자생물학자로 연구를 다 했다”며 노벨상 수상자의 뒷얘기를 들려주었다.
마틴 브룩스는 <초파리>에서 “초파리 연구자는 가도 초파리는 영원하다”며 책을 마친다. 저자는 컬럼비아대학의 전설적인 초파리 학자 헌트 모건의 초파리 연구실을 찾아갔으나 초파리 방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노벨상을 받은 이 전설적인 초파리학계의 대부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은 갔다. 하지만 초파리 이름은 영원하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