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위해 살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큰 것, 커지는 것을 좋아하면 작은 것, 작아지는 것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다. 대접받는 일이 당연시되면 홀대받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부채귀신이 설친다.
옛날 옛날에 깊은 산골 한 동굴에 부채귀신이 살았다. 그는 ‘부채’에 의지해 살았다. 그의 부채엔 신통력이 있었다. 무엇이든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있는 이 신통력으로 부채귀신은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그의 부채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그가 하라는 대로 제물을 바치며 숨죽이고 살아갔다.
마을에 개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천하게 굴러다녔을 아이가 있었다. 다섯 살 개똥이에게는 좋은 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누이가 제물이 될 차례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채귀신을 두려워해 하라는 대로 했으나 어린 개똥이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분연히 일어나 부채귀신을 잡으러 갔다. 제물로 잡혀온 이들은 귀신의 부채를 두려워해서 벌벌 떨며 기가 눌렸으나 개똥이는 달랐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해야 하나.
개똥이의 당찬 태도에 부채귀신은 같잖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장난을 걸었다. 개똥이는 호기심 어린 태도로 부채귀신을 자극했다. 기죽지 않은 어린이는 본능적으로 부채귀신과 노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개똥이가 부채귀신에게 놀라는 척하며 얼마나 커질 수 있냐고 묻자 허영심이 자극된 부채귀신은 한없이 커졌다. 개똥이가 다시 한 번 놀라는 척하며 그러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냐고 묻자 부채귀신은 한없이 작아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개똥이는 부채귀신을 먹어버렸다.
권정생 선생의 펜끝에서 다시 태어난 전래동화 ‘부채귀신 이야기’를 읽으며 가난했으나 풍요로웠던 선생의 삶을 기린다. 선생 가신 지 올해가 10년이다. 강아지똥, 개똥이 등 똥을 좋아했던 선생은 홀대받는 것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의 유언장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하나님께 기도해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베트 어린이들은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누이와 마을을 구한 개똥이는 그 엄청난 신통력을 가진 부채로 마을을 다스렸을까? 개똥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채를 태워버렸다. 그러고 나니 행복이 찾아왔다. 나는 왜 부채귀신이라는 전래동화가 한국판 반지의 제왕이라 느낄까?
예로부터 부채는 신성한 것이었다. 바람을 일으켜 불을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부채귀신의 부채는 무엇이든 크게 하거나 작게 만든다. 권력에 기대 자아팽창이 일어나 화려한 옷을 입은 힘센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작아지는 것이다. 작아지는 것을 두려워해 부채귀신의 비위나 맞추는 사람이 멀쩡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제물로 내주는지…. 당연히 부채귀신이 있는 곳엔 자기 크기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부채에 의해 작아지거나 커지기 때문이다.
절대반지를 옮길 수 있는 자가 반지에 흑심이 없었던 작디작은 호빗족이었던 것처럼 부채귀신에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쓸모 있을 것 같지 않고 주목받을 일도 없었던 어린 개똥이다. 부채를 통해 거대해지는 것에도, 부채를 이용해 누군가를 조정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개똥이의 부채는 부채를 통해 잃어버렸던 마을을 회복할 때까지만 사용됐다. 절대반지를 던져버릴 수 있는 자가 절대반지를 옮겨야 하듯 부채를 태울 수 있는 자가 부채의 주인이다. 부채 없이 살지 못하는 자, 귀신이 된다.
이주향 |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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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