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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분석_‘평화’ 20차례 사용, 한반도 문제 자주권 강조

2017.08.21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평화’(20차례)였다. 미국과 북한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현재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그다음이 ‘국민’ 17차례, ‘역사’ 14차례였다. 역대 광복절 경축사에 등장하지 않았던 ‘국민주권’과 ‘촛불’이란 단어도 각각 8차례, 5차례 등장했다. 경축사 초반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 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대목에서 터지기 시작한 박수는 총 39차례나 이어졌다. 역대 최다다. 20분 남짓으로 예정했던 경축사는 30분을 꽉 채우고 나서야 끝났다.

이번 경축사는 어느 때보다 광복절 본연의 취지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며 ‘진정한 보훈’을 천명했다. 애국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3대까지의 생활안정 지원을 공언했다. 국가를 위한 헌신에는 반드시 그만한 예우가 따른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빛을 되찾다’라는 광복의 의미가 국가뿐 아니라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에게까지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연설문의 3분의 1을 차지한 대북 관련 메시지에는 분단된 민족이 하나 되어 ‘진정한 광복’을 이룩하기 위한 염원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며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민족의 존망과 관련한 문제에서 정부의 자주적 해결 의지를 확고하게 밝혔다.
 
경축사, 고조된 긴장 완화에 이바지 평가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전반적으로 광복절 경축사 본연의 취지가 잘 드러났고, 국제사회에 대해 자주 주권국으로서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는 평가였다. 특히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통해 보훈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조성은 코콤포터노벨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연구소 소장은 “문재인정부의 확고한 역사 인식, 국정 철학과 방향을 보여준 연설”로 평가했다. 특히 “독립운동가 3대까지 예우하겠다”는 공언에서 과거와 같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 헌신, 애국만 강조하고 예우하지 않은 것과 차별화된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무엇보다 국민이 문재인정부가 지향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방향과 의지를 확신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했다. 또 새로운 대한민국 준비를 위해 그동안의 보수와 진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구분, 정파의 틀을 뛰어넘자는 메시지를 통해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분석했다.

최항섭 국민대 교수는 “촛불혁명, 국민주권, 대북평화, 일제청산과 같은 핵심 메시지가 잘 드러났다”고 전했다. 특히 ‘완전히 새롭게’라는 단어를 수차례 강조하며 역사 청산을 위한 현 정부의 의지를 확인해줬다는 반응을 보였다. 역사 청산과 관련해 임청각 사례를 든 점을 효과적으로 봤다. 일제가 철도를 놓아 지금도 방치된 임청각처럼 우리는 일제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관계로 불의와 타협하는 가치관을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했다고 한 부분이 공감된다고 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확고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점”을 높이 샀다. 조 위원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시도할 경우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 막아내겠다는 뜻이자, 그동안 북한에 제안해온 제의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준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진정한 광복’으로 규정한 것에 이어 ‘진정한 보훈’의 개념을 도입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19년 임시정부 발기인들이 사용한 ‘국민주권’ 개념에 기초해 “국민주권을 실현하여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데 따름이다. 또 이 시대의 애국 개념에 입각해 보수와 진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망라하는 국민통합정신의 맥을 이었으며, 대북·대일 메시지를 통해 문재인정부 100일 이후의 정책 구상을 잘 담아냈다고 총평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8월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8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 비전 제시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가 “고조된 긴장을 완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북한의 두 차례 ICBM급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강경 반응, 북한의 괌 포위 사격 등으로 긴장이 조성된 상황에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또 8월 위기설이 조성된 상황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해 한국의 역할이 없다는 일각의 우려 섞인 시각을 불식했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의 비전 제시가 국민통합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점도 부각했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을 대한민국 100년 역사로 평가해 통합의 대한민국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중국이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력을 다해 각종 방식으로 전쟁을 막고 한반도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민감한 상황에서 대화로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며 “북한은 즉각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문 대통령의 촉구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입장을 전하지 않았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어떤 군사행동에 대해서도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라 했다. AP통신은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하고 미국의 군사행동은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표명한 것”으로 분석했다.


임청각은 독립운동의 산실
숭고한 희생 보여준 독립운동가 6명은 누구?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임청각을 언급하자 순간 접속자가 몰리면서 임청각을 소개하는 누리집이 마비됐다. 경북 안동에 소재한 임청각은 2016년 5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이 방문해 복원을 약속했던 곳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충절의 집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멸사봉공 애국애족 정신을 새기며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을 다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일제가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절반만 유지돼왔는데, 이제 원형 복원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생가가 임청각이다. 선생을 중심으로 아들 이준형 공, 손자 이병화 공, 동생 이상동 공, 조카 이형국 공, 이광민 공 등 독립운동가만 모두 9명을 배출했다. 부인 김우락 여사와 며느리 이중숙 여사, 손부 허은 여사까지 하면 12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셈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 6인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1883~1921) 선생은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일제가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한 이태준 선생은 몽골로 망명했다. 근대 의술로 몽골 사람들을 치료하며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낸 그는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1980년 건국공로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장덕준(1892~1920) 선생은 한국 언론사상 첫 순직 기자다.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한 선생은 일본의 3·1운동 왜곡을 비판하는 논설을 썼다. 1920년 만주에서 청산리 대첩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취재 중 소식이 끊겼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은 그가 일본군에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1872~1933) 여사는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해 항일단체에 가담했다. 북만주 일대에서 여성 계몽운동을 펼치고 부상한 독립군 치료에 힘을 쏟았으며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독립군 뒷바라지를 했다. 1933년 일본 고위관리 암살을 위한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순국했다.

과학자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섰다. 일본 유학 중 근대화의 뿌리가 발명과학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하고 우리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도 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32년 ‘발명학회’를 조직, 1933년 우리나라 최초의 발명과학 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일본의 탄압 가운데서도 발명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감독 나운규(1902~1937) 선생은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자 북간도로 이주했다. 철도와 통신 등 일제의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했으며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6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주목받았으며 독립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찾아서’, ‘벙어리 삼룡’, ‘잘 있거라’ 등을 제작했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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