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해소하고 약자 배려하는 장치 필요

2017.08.20 최신호 보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이 갑질에 시달린 경험을 갖고 있다. 갑질을 심하게 당한 사람은 우울과 불안, 불면, 무력감에 빠질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을 끝내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갑질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토록 처참하게 개인의 인격과 삶을 짓밟는 것일까?

갑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상습적인 갑질이다.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약자를 얕잡아보고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부당한 행위를 반복한다.

그런 사람도 권력의 중심에 서지 못한 경우 불안과 우울, 불면으로 괴로워한다. 갑질을 하던 임원이 서열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면 더욱 심하게 부하직원을 짓밟으며 자신의 힘을 확인하려고 한다.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뒤틀린 열등감을 발견하게 된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열등감에서 나온다. 갑이 을에게 퍼붓는 무능하고 게으르며 불손하다는 비난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열등의식에 대한 자기혐오인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우발적인 갑질이다. 평소에는 원만하고 평등하게 인간관계를 맺어오던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폭발하듯 화를 내고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데, 화를 낸 자신과 상대방 모두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갑질을 하는 상황에서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은 탓에 본인도 불안과 공포에 압도되어 몸을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화를 버럭 내고 자리를 뜨는 것으로 상황을 피해버리기도 한다. 

다소 내향적인 사람들이 우발적 갑질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평소에 조용하고 소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큰 권력을 잡게 되거나,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 폭발적으로 분노하고 주위 사람들을 억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갑질을 당한 사람은 마음의 큰 상처를 입는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과 희망을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오랫동안 괴로워한다. 동료들마저 도와주지 않을 때 고립감과 절망감은 극에 달한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가해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쏟아져 우울증이 깊어진다. 급기야 피해의식 때문에 사람들이 무서워 외출을 꺼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갑질이 화제가 됨으로써 우리는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인식하게 됐다. 다들 갑질을 하는 사람에게 눈살을 찌푸리지만, 현실에서는 그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현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바람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늘 힘의 우열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식민지배와 전쟁 등 급변하는 현대사를 겪으며 권력의 위세가 얼마나 큰지 절실히 경험했다. 갑질은 독재자나 폭군과 같은 권력의 오남용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갑질을 해대고, 열세에 있는 자는 당하기만 할 뿐 항의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개인을 짓누르는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갑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올바른 평등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지위 고하로 사람을 차별하는 계급주의 문화를 청산하고, 각 개인의 개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맹목적인 경쟁에 내몰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약자를 배려하고 강자를 견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도 갑질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권력이 강해질수록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권력을 가진 자는 의식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하무인의 독재자가 된다. 힘과 감정은 대극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갑질을 당한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부당함에 저항하라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약자를 배려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갑질을 당한 사람이 상담 받으러 올 때 반드시 해주는 말이 있다. “무력감의 늪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집단 따돌림을 당한 아이가 저항을 포기하고 우울증에 빠져버리는 것처럼, 어른들도 반복적인 갑질을 당하면 자신이 비참하고 무력하게만 느껴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려 한다. 무력감이 사람을 집어삼키면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린다.

사람마다 모두 고유한 개성을 갖고 있듯이 고통을 딛고 회복하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피해의식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갑과 을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다. 우리는 수시로 을이 되기도 하고 갑이 되기도 한다. 갑질을 당한 을이 병을 찾아가 화풀이하기도 한다.

우리는 내면에 갑과 을의 마음을 다 갖고 있다. 권력 콤플렉스가 우리를 사로잡게 놔둬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자신 안에서 회복의 힘을 발견해야 한다.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해나갈 때 갑과 을이라는 획일적 집단성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고유한 개인이 될 수 있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찬승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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