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잘 모르는 그를 우리 앞에 불러냈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시작 전에 “이 영화는 철저히 고증을 거친 영화입니다”라고 말한다. 역사와 사실의 단초로 만들어진 수많은 사극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영화적 상상력이 허구를 가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이준익 감독 영화 ‘박열’ 포스터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나 사극이라고 해도 영화에는 ‘가짜’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 담는다는 다큐멘터리도 그렇다. 몰래카메라로 현장을 담지 않은 이상 연출이 들어가고 연기가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열’도 100% 사실 그대로는 아니다. 다만 역사의 한 줄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감독의 전작인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와 달리 표현은 조금 과장되고 영화적 구성에 맞춰 시간과 거리는 당기고 줄였을지언정 시대 상황과 인물, 사건은 철저히 사실을 확인하고 그렸다는 말이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았다고 해도 감독에 따라,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빛깔과 느낌이 다르다. 이는 같은 역사라도 마치 사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거울이고, 미래의 나침반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유명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을 영화가 수없이 반복해 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종이 그랬고, 이순신이 그랬고, 정조가 그랬다.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진 항일투사들도 마찬가지다. 김구나 안중근, 윤봉길 의사야말로 역사 교과서를 통해 역사의 영웅으로 알고 있지만, 그들이 영화를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우리에게 더 가까이, 그리고 더 크고 생생하게 다가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과장과 허구가 섞였을망정.
역사가 그렇듯, 영화도 소설가 이병주가 말했듯이 골짜기보다는 산맥, 그것도 가능한 햇빛이 훤히 내리비치는 높은 산들에 눈길을 먼저 보낸다. 영화가 대중예술이기 때문이다.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 역사적 기록도 많이 남아 있고, 문학의 주인공으로도 익숙한 인물일수록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이다.
반면 때로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민초들, 산맥이 아니라 골짜기를 영화는 용기 있게 찾아가기도 한다. 누구도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고 그곳에 삶과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곳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영화도 모른다. 그저 생생하게 상상할 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된다. 영화니까.
영화가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역사도 있다. 산맥으로 우뚝 솟아오르지 않아 역사의 조연으로 기록된 사람들, 큰 영웅들에 가려 후세 사람에게 이름과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지만 역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그들도 큰 영웅들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역사에 남겼다. 때문에 사실을 무시한 채 영화가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과장할 수 없다.
박열도 그런 인물의 하나일 것이다. 영화 ‘박열’이 허구를 완전히 배제하고 인간 박열을 영화로 생생하게 불러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와 편견으로 우리가 잘 몰랐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예나 지금이나 진실을 감추려는 일본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을 퍼부어댄 한 애국청년의 존재를 알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 ‘박열’은 철저한 고증이란 선언에 이어 나오는 인물들까지 모두 실존(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그것만으로도 박열은 영화적 코드로 말하자면 여느 주인공보다 개성적이고 극적이며, 우리 민족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나와 있다. 그중에는 인물연구서도 있고,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도 있고, 평전도 있다. 일본인으로 유일하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두 사람의 변호인인 후세 다쓰지가 공판 기록과 신문 조서를 정리한 <운명의 승리자, 박열>도, 이준익 감독이 영화로 만들 용기를 얻었다는 가네코 후미코가 직접 쓴 옥중수기
<나는 나>, 일본 역사학자인 야마다 소지의 평전 <가네코 후미코>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때문에 영화 ‘박열’은 무엇이 아닌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많은 책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란만장한 애국투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열이란 인물을 우리 젊은이들이 잘 모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만한 시선으로 평가하려 하지도 않았다. 사실의 기록을 드라마틱하고 융통성 있게 선택하고 강약을 조절했다.
그 재구성만으로도 경성고보 재학 중에 3·1운동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로 활동하다 1923년 4월 불령사(不逞社)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일본 왕세자 혼례식 때 암살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박열과 함께 감옥에 있다가 몇 달 후 자살한 그의 동지이자 아내로 천황제를 부정한 가네코 후미코의 존재와 관계, 용기와 신념의 시간이 살아서 우리 앞에 서 있게 했다.
자칫 큰 봉우리에 밀려 지나쳐버릴 수 있을 인물을 영화 ‘박열’이 가까이서 만나게 하고 기억하게 해줬다. 그것만으로도 영화 ‘박열’은 좋은 역사책이 됐다. 더구나 건조하면서 무겁기만 하지 않은 깊은 감정의 울림과 가벼운 유머로 영화적 재미까지 살린 평전, 기록이 됐다. 많은 관객이 박열이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중에는 두 시간짜리 영화가 담지 못했거나 줄여버린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평전과 소설을 읽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흔적을 확인하러 그의 고향인 경북 문경시의 깊은 산골인 마성면 생가 터에 2012년 10월에 건립한 박열 의사 기념공원과 기념관, 그 옆에 있는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를 찾을 것이다. 이렇게 역사와 인물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다른 문화까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영화의 힘이다.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