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금] 영화 ‘옥자’가 내딛은 새로운 길

2017.07.09 최신호 보기

사실 새로운 길도 아니다. 이미 외국의 많은 영화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기에 말도 많고 논란도 많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고, 기술이 발전하면 영화 제작도, 개봉 방식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1980년대까지도 대형 단관 개봉관과 재개봉관으로 나누어져 있던 극장에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이 비디오테이프를 CD로, 케이블TV가 그것마저 삼켜버리고, VOD를 넘어 이제는 멀티미디어 디바이스와 스마트 디바이스의 기술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서 컴퓨터나 모바일 폰으로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시대에 홀드백(hold back)은 무의미해졌다.

영화가 꼭 순서와 기간을 지켜 다음 수익 단계로 넘어가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러기에는 유통이 너무나 다양해졌고, 한곳에서 소비되는 기간도 갈수록 짧아지기 때문이다. 꼭 첫 시장에서 수익을 가장 많이 낸다거나, 그곳에서 화제와 흥행이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어졌다.

이런 세상이니 영화도 더 이상 과거의 유통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어졌고, 그러다가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졌다. 꼭 ‘영화는 극장에서 먼저’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미국의 극장에 진출하려고 애면글면할 필요도 없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만 이용하면 얼마든지 세계 전역에 동시에 개봉할 수 있는 길도 있다.

플랫폼은 말 그대로 ‘승강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문화콘텐츠의 생산, 유통,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상징이자 출발이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옥자’가 이와 비슷한 미국의 인터넷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달 말에 전 세계에 개봉했다.

같은 날 극장에서 동시 개봉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 우리나라뿐이었다. 그런데 그 극장이라고 해야 영국과 북미를 합쳐 10개 정도이고, 우리나라는 전체 상영관의 90%를 차지하는 3대 메이저 멀티플렉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빠진 채 마음먹고 찾아가야만 하는 일반복합상영관이나 예술극장들이다. 소도시에 이름도 생소한 작은 영화관도 있다. 그나마 다 합쳐도 스크린 수가 100여 개밖에 안 된다.

영화 옥자 포스터

▶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 포스터  ⓒ넷플리스, 플랜B, 루이스 픽처스, 케이트 스트리트 픽처 컴퍼니

다른 감독도 아닌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로 이어지면서 흥행과 작품성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입증한 봉준호의 영화다. ‘괴물’ 개봉 때 전국 스크린의 38%인 620여 개를 장악해 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는 천양지차다. 그렇다고 ‘옥자’가 예술영화나 작은 영화도 아니다. 제작비만 600억 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설국열차’처럼 외국과의 합작으로 한국과 할리우드 배우가 함께 나오고, 스태프 역시 그렇고, 영화의 무대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옥자’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캐릭터(슈퍼 돼지)가 살아 있고, 그 속에서 인간의 탐욕을 풍자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소박하고 잔잔한 휴머니즘을 담아내 ‘머리와 가슴으로 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도 자신의 영화를 멀티플렉스에서 그것도 한꺼번에 수백 개 스크린에서 상영하고 싶었을 것이다. 컴퓨터그래픽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눈동자나 표정, 행동이 실물처럼 섬세하면서도 거대한 몸집의 ‘슈퍼 돼지’ 옥자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곳이 다름 아닌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이니 그들의 ‘온라인과 극장 동시 개봉’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극장 흥행에 자신이 없어서도 아닐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유통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워 머신’에도 투자했고, 데이빗 핀처 감독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자체 제작해 전 분량을 동시에 공개한 그들로서는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 같은 온라인 동시 개봉을 국내 멀티플렉스는 거부했다. “기존의 영화 유통시스템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존의 홀드백을 지켜 자신들이 먼저 극장에서 상영하고 나면, 그다음에 온라인에서 서비스하기를 원했다. 그래야 극장에 관객이 더 몰려 자신들의 수익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자칫 이런 영화 유통시스템을 받아들일 경우 극장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옥자’의 개봉 방식이 영화업계에 던진 충격은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5월에 열린 프랑스 칸영화제에서도 극장에 상영하지 않은 ‘옥자’의 출품 자격과 상영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극장 상영 작품만 영화제 초청 대상으로 한다는 기준까지 새로 마련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존의 틀만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나아가 문화콘텐츠의 플랫폼 전환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더구나 우리는 ICT 강국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머뭇거리고 거부만 하다가는 과거 할리우드 직배사가 그랬던 것처럼 자칫 영화의 새로운 유통시장을 외국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모두 내어줄지도 모른다. 극장까지 언제 과거 비디오 렌털 시장과 같은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

‘옥자’가 던진 돌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영화산업에 소중한 약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인 수직 계열화로 영화산업 전체를 독점하고서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해 과감한 투자와 제작, 새로운 영화 생태계 조성에 인색한 대기업 제작·배급사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옥자’가 100% 외국 자본, 그것도 세계 1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부터가 자랑이 아닌 부끄러움이다. 그래 놓고 자신들 극장에서 먼저 상영해야 한다고 우겼으니.

멀티플렉스의 상영 거부 ‘구실’을 비웃듯 온라인 동시 개봉에도 불구하고 ‘옥자’는 극장에서도 첫 주말 가장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라는 관객들이 아직도 많다는 얘기다. ‘옥자’가 새롭게 내딛은 길이 한국 영화의 생산과 유통, 소비 모두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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