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점이 동네 독서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쇠퇴해가는 골목상권도 활성화할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주관한 ‘2017년 출판유통 해외 사례 현장조사’에 참가한 지역 서점 대표와 출판유통 종사자 등 조사단원들은 이 같은 질문을 마음에 담고 지난 5월 29일 대만으로 떠났다. 조사단은 중소기업의 천국인 대만에서 대형 서점, 독립 서점, 중고 서점, 인쇄소 등 출판 관련 업체를 두루 살펴보고, 특히 대만의 지역 서점이 어떻게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골목상권에도 이바지하게 됐는지를 집중적으로 파악했다. 5월 31일에는 대만독립서점문화협회(The Taiwan Independent Bookstore Culture Association)의 첸룽하오 회장과 면담을 했다. 이 단체는 2008년 대형 체인 서점 및 온라인 서점과의 치열한 경쟁에 맞서서 지역 서점의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다양한 활동을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어 영세한 우리 지역 서점의 활로 모색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대만 문화부는 2013년부터 서점 창업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당신 꿈속의 서점’이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자기 고향에서 서점을 창업하는 경우에 한해 매년 200명을 선정해 2000만 원씩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이 보조금으로 서점의 임대료를 충당하거나 문화 프로그램 운영비로 사용하기도 한다. 문화부는 이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창업 컨설팅 자문단을 만들어 컨설팅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렇게 창업한 사람들은 자기 고향에서 각기 특색 있는 서점을 열고 청소년 독서 상담, 동화구연 행사 등 다양한 독서문화 행사를 개최해 지역사회의 환영을 받고 있다.
조사단이 방문한 대만 남부 가오슝 시의 삼려서점은 창업한 해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으로 ‘당신 꿈속의 서점’ 사업에 선정된 지역 서점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매장을 운영하는데 2층은 북카페 형태로, 3층은 저자 강연회와 독서 토론회 등 독서문화 활동 전용 공간으로만 운영해 지역 주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 지역 주민은 이곳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며, 저녁이나 주말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회를 듣거나 독서 토론회를 통해 책에 대한 이해와 독서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 결과 삼려서점은 이 지역 독서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됐다. 조사단의 한 지역 서점 대표는 “평일에 이렇게 많은 고객이 서점을 찾는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만은 국토가 협소하고 출판시장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출판사와 서점이 겸업을 하고 있어 대형 출판유통 업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또 지역 서점에서는 책 이외에 문구류와 음료수, 기념품을 같이 판매하는 등 부수적인 영업 활동을 통해 영업이익을 추가적으로 올리는 곳도 있다.
▶ 1 당산서점 주인(대만 독립서점문화협회장)과 조사단원들 2 모리서점(중고 서점) ⓒ안병윤
조사단은 6월 1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기금회를 방문해 대만의 출판시장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의 전반 업무에 관한 설명을 듣고 토론도 했다. 설명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대만의 출판사 수는 5030곳, 신간 발행 종 수는 3만 9717종이고 이 중에서 25%인 9930종이 번역물이었다.
2016년에 발행된 대만의 신간을 분야별로 나눠보면 소설 11.9%, 예술 7.7%, 인문 7.6%, 아동문학 7.2%, 사회과학 6.4%, 만화 6.1% 등의 순이었다. 한국어 원서를 번역해 펴낸 2016년 신간 번역서의 종 수는 총 508종으로, 이 중에서 아동도서 분야가 178종(3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의 아동도서가 현재 그리고 향후에도 대만 수출에 가장 유망한 분야인 이유는 한국의 그림책이 대만에서 인기가 높고, 대만 아동의 정서가 한국 아동의 정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국제도서전기금회는 ‘2017 서울국제도서전’ 행사 기간인 6월 14일 코엑스에서 ‘중국·해외 출판시장 분석 및 한국-대만 출판시장 협업 가능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만 지역 서점이 독서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만은 출판에 대한 열기가 뜨겁고 탄탄한 유·무형 출판 인프라 환경이 잘 구축돼 지역 서점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만은 인구 대비 신간 발행 종 수가 세계 2위(2015년 총 3만 9717종 발행)인 데다, 공공도서관 수(690개) 및 공공도서관 직원 수(1만 1000명), 출판사 수(5030개), 서점 수(2227개) 등이 대만보다 인구가 2.2배인 한국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특히 인구 1만 명당 서점 수가 한국의 3배에 이른다. 또한 대만의 공공도서관 직원 수가 많은 것은 은퇴 후에 무료로 근무하는 시니어 자원봉사자(다수의 고학력자 포함)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 대만의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는 지역 서점의 판매 도서를 직접 구매해주는 적극적인 지원책을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기업과 각종 단체도 서서히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대만의 지역 서점은 고객층이 두터워졌고, 그래서 대만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천국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 같다.
셋째, 대만의 지역 서점은 ‘책’과 ‘고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주민에게 유익한 각종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주민은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함으로써 지역 서점과 주민의 삶이 상당히 밀착되어 있다. 대만 사람들이 지역 서점을 자주 찾고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애용한다는 것은 세계 출판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우리 조사단이 대만을 조사지역으로 선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조사단은 이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만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중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문화적 자긍심이 높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이 문화를 사랑하고 애용하며 보존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대만의 중고 서점에서도 오래된 중고 도서의 훼손을 막기 위해 투명한 비닐로 일일이 포장해 서가에 조심스럽게 진열해놓고 있었다. 이를 보고 조사단의 어느 출판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중고 서점은 중고 책을 ‘문화재’처럼 다루는 것 같고, 후스 중고 서점은 매장 구석구석을 인형으로 예쁘게 꾸며놓아 정말 예상 밖이네요.”
현재 대만의 서점은 스스로 문화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경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으며, 매장 안에 경영이념이나 독서와 관련된 좋은 문구를 현판에 새겨 걸어둔다.
대만에서는 모든 사람이 ‘책’을 단순한 재화로서의 상품이 아니라 문화가 녹아 있는 진정한 ‘문화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타이베이의 성품서점에서 만난 어느 중년 남성은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책을 산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책은 사람처럼 각기 다른 표정과 느낌이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책도 그렇다고 생각해 직접 책을 보고 구입합니다.”
이처럼 대만의 지역 서점은 유·무형의 출판 인프라가 탄탄하게 구축된 환경 속에서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고객 만족 경영을 실현해 국민의 사랑을 받고 골목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대만의 지역 서점은 ‘우리 지역 서점의 성공 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병윤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기반조성본부 출판유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