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꽃 수요 증가로 화훼농가는 바쁘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매출이 30%가량 줄어들었지만 판로 확대, 꽃 나누기 운동 등을 전개하며 농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화훼산업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꽃봉오리를 틔울 수 있을까?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경기 용인 남사화훼단지를 다녀왔다.
형형색색의 꽃이 향기를 내뿜는다. 그 화사함에 절로 취할 것 같다. 하우스 내부는 온통 꽃으로 물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완연한 봄을 알리는 이곳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남사화훼집하장. 봄철 특수를 맞아 꽃을 다듬고 포장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화분을 싣고 내리는 트럭도 줄지어 서 있다.
남사화훼집하장은 국내 최대 규모인 용인 남사화훼단지 내에 위치한 곳으로 이 일대 270여 개의 화훼농가는 요즘 봄철 꽃 생산에 여념이 없다. 남사화훼집하장에도 프리지어, 수국, 베고니아 등 다양한 품종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은 약 100여 명으로 95%가 도·소매업자다.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소매상들은 강렬한 붉은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펠라르고늄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둔 터라 화분을 고르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기욱(52·사진) 대표. 그 웃음이 소박한 수국을 닮았다. 우리나라 화훼산업의 1.5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30년간 이 분야에 몸담아왔다. 1993년 개장한 남사화훼집하장은 연매출 100억 원 이상을 기록하는 대규모 화훼집하장이다. 꽃의 계절 봄을 맞아 이곳에서 그는 30여 명의 직원과 함께 밤낮 쉴 새 없이 일한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꽃이 주는 힘에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 1 봄을 맞아 화훼단지를 찾아 꽃을 고르는 손님들과 화분을 싣고 내리는 트럭.
2 남사화훼집하장 이기욱 대표.
3 남사화훼집하장은 1년 동안 1만여 종의 작물을 재배한다. ⓒC영상미디어
직무 관련자도 5만 원 이하 꽃 선물은 OK
어떠한 시련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대규모 화훼단지지만 이곳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 대표는 “인건비 상승과 낙후한 유통구조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터에 ‘청탁금지법’까지 겹쳤다. 특히 기업 및 기관에 납품하는 물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지난해 대비 매출이 25~30% 정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소비 위축에는 꽃 선물을 주고받으면 안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깔려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동료 사이에 직무 관련성이 없을 경우 5만 원 초과 꽃 선물이 가능하며, 직무 관련자라 하더라도 원활한 직무 수행 및 사교·의례 등의 목적일 경우 5만 원 이하의 꽃 선물이 허용된다.
정부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화훼산업을 살리기 위해 소비 촉구 운동에 나서고 있다. 사무실 꽃 생활화를 위해 ‘1테이블 1플라워(1table 1flower)’ 운동을 전개하고, 예쁘고 저렴한 꽃을 판매하는 ‘착한꽃집’을 인증하며 내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훼농가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기욱 대표는 일대 화훼 종사자들과 회의를 거듭해 소비자들이 꽃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홈플러스, 이마트 등 전국 대형마트에 판매대를 마련하고 소비자들을 만나며 판매경로를 확대했다. 특히 판매실적이 저조한 난을 중심으로 판매에 나섰다. 그러자 소비자들도 화훼농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구입에 동참했다.
판매 외에도 꽃이 주는 행복을 공유하기 위해 ‘꽃 나누기 운동’도 펼쳤다. “꽃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이 무척 크다. 식탁에 꽃 한 송이만 있어도 식사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가?” 이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꽃을 잊고 살던 사람들이 정서적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요즘 화훼 농가는 다가올 5월을 준비하고 있다. 5월은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어 1년 중 소비가 가장 큰 때이다. 이곳에서는 어버이날 하루에만 약 1400만 송이의 카네이션이 나갈 정도다. 곧 있을 카네이션 출하를 위해 직원들은 쉬지 않게 교대근무를 이어간다. 이 대표는 “평소 꽃을 잘 구매하지 않는 사람도 이날만큼은 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자동차 한대-꽃 한송이’ 같은 협력 전략 필요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박스 포장에도 신경 쓰고 있다. 물품이 손상되는 것은 거래처에 대한 신뢰도 하락, 수익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표는 포장박스와 트롤리(운반수레)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면 농가의 유통비용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화훼 선진국 일본도 한때 불황으로 화훼산업이 어려웠다면서 우리나라도 지금 닥친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본의 화훼산업이 어려움을 맞았을 때 도요타 자동차가 나서서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했다. 작은 실천이 일본 화훼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 우리도 민·관이 협력한다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화훼산업의 부흥은 농가의 힘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서 소비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도 꽃을 특별한 날에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함께하는 대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기욱 대표는 화훼산업의 르네상스를 꿈꾼다. “젊은 사람들의 꽃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이들에게서 화훼산업의 희망을 볼 수 있다.”
‘안심화분’ 스티커 믿고 사세요!
청탁금지법 때문에 화환 선물이 망설여진다면 ‘안심화분’ 스티커를 활용하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안심화분’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안심화분’ 스티커가 부착된 화훼류는 5만 원 이하의 상품으로서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 스티커가 부착된 화분은 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측은 “안심화분 스티커가 부착된 상품의 경우 반송 사례가 적고 소비자가 직접 가격을 확인할 수 있어 구매율이 높다”면서 ‘안심화분’ 스티커 상품을 권장한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