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70~1980년대 경남 창원시는 기계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산업도시였다. 공장은 쉴 새 없이 가동됐고 여기서 만든 제품은 해외 각지로 수출돼 우리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는 데 적지 않은 공을 쌓았다. ‘IMF도 비켜가는 도시’였던 창원은 베트남,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이 등장하자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경쟁력에 밀려 이제 쇠퇴 일로에 접어드나 싶었던 제조업이 ‘스마트공장’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스마트공장은 제조 전 과정을 정보통신기술(ICT)과 통합해 에너지 효율을 강화하고 제품 불량률을 줄이는 등 생산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맞춤형 공장을 말한다. 제품 기획과 설계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ICT를 접목해 제조 단가를 낮출 뿐 아니라 제품의 품질,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남 창원시에 있는 ‘삼천산업’은 스마트공장을 잘 구축한 기업 중 하나다. 세탁기에서 진동과 소음을 흡수하는 서스펜션(suspension)이 주력 제품이고 식기세척기, 정수기, 의류관리기에 들어가는 노즐, 케이스, 펌프 등 부품도 제작하고 있다.
삼천산업이 자리하고 있는 창원시 차룡단지 일대는 성냥갑 같은 공장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장이 바삐 돌아가는 시간이어서인지 도로엔 지나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 최원석 삼천산업 대표(왼쪽)와 직원들 ⓒC영상미디어
최원석 삼천산업 대표가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현장으로 들어서는 문을 여는 순간 조용하던 일대가 시끄러워졌다. 왱왱거리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옆 사람이 하는 말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현장에서는 소리 지르며 대화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정도는 기계 소음이 적은 편이라고 최 대표가 말했다.
현장은 생각 외로 정말 깔끔했다. 반짝거리는 초록색 바닥에는 먼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기계에도 기름때나 오물이 묻어 있는 모습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최 대표는 공장 한쪽에 있는 기계를 가리키며 사용한 지 20년이 넘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로 말해주지 않으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만큼 윤이 났다. 새것처럼 말끔한 기계들 앞에 모니터가 있다. 모니터는 삼천산업이 스마트공장으로 전환하면서부터 현장직 근로자들과 함께해온 것이다. 모니터 화면으로 생산 제품, 일 생산 합계 현황, 실적, 제품 생산 현황 등을 확인한다. 기계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관리자를 호출할 수도 있는데, 이 기능을 사용하면 담당직원에게 바로 문자가 간다. 현장근로자들은 모두 이 모니터 화면으로확인한다. 저마다 소음 방지 귀마개를 끼고 제품이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는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스마트공장 도입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다
벽 한쪽에는 기계 담당자가 설비를 스케치해놓은 것들이 전시돼 있었다. 최 대표는 직원들이 손수 그린 스케치를 가리키며 “스마트공장으로 전환한 후 직원의 역량 교육 중 하나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비 스케치와 직원 역량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이 교육이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다.
▶ 1 경남 창원시에 있는 삼천산업 공장에서 근로자가 모니터로 제품 생산 현황을 체크하고 있다.
2 삼천산업 근로자들이 그린 설비 스케치
3 삼천산업 공장에서 작업 중인 현장 근로자들 모습 ⓒC영상미디어
“스마트공장으로 전환하면서 강한 현장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현장이 달라지면 근로자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로자 마인드 교육, 역량교육을 직접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자기 설비의 청소 매뉴얼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청소 매뉴얼을 다 만들고 난 다음 했던 게 스케치 경진대회예요. 그림을 그리면서 설비를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됐어요. 장치 이름을 쓰고 기억하게 된 거죠. 스케치를 하기 전에는 설비가 고장 나면 고장 났다고만 했는데 이제 명칭을 아니까 어느 부분, 무슨 버튼에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는 식으로 자세히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스케치 다음에는 설비 수리 경진대회를 열었다. 15년 가까이 설비 수리를 해온 직원이 2분 9초 만에 수리하고, 설비를 3개월 배운 담당직원은 2분 15초 만에 해냈다. 본인이 다루는 기계를 직접 수리할 수 있게 되자 직원들에게 자부심이 생겼다. 자연히 직원들 역할도 변했다. 스마트공장 이전에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생산직 근로자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설비를 수리할 줄 알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 개선에 적극 참여하는 능동적인 근로자로 변한 것이다. 왜 역할 변화가 필요했을까? 스마트공장 시대에 생산직 근로자가 살아남으려면 근로자 역시 스마트해져야 한다. 로봇을 가르치고 현장을 개선하는 법을 배우는 등 역할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생산직 근로자의 설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스마트공장 하면 으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설 자리를 기계가 대신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면 일의 생산성이 올라가는 만큼 일자리가 줄어든다. 이것은 그 아이템만 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한다. 예를 들어 볼펜을 만든다고 하자. 볼펜 하나를 만드는 데 3명이 필요했다면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후에는 관리자 1명만 필요한 상황이 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맞다. 하지만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은 결론이다. 기업은 꾸준히 이익을 낼 아이템을 구상해야 한다. 때문에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생산직 인원이 줄어도 볼펜을 개선할 점을 찾고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는 인원은 여전히 필요하다.
스마트공장은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은 기계가 대체한다. 그렇게 되면 뛰어난 생산성과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생산한다. 삼천산업은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면서 제조경쟁력이 향상됐다. 과거 1개 라인에서 시간당 생산량(UHP)이 1200개였다면, 지금은 1개 라인당 1950개를 생산하고 있다. 꾸준히 좋은 제품을 생산하면 기업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안정적인 공급처에는 일감이 더 생긴다. 일감이 더 생기면 자연히 일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 실제로 삼천산업은 스마트공장화 이후 고용 인력은 3년 사이에 60여 명 늘었다. 자연히 매출도 오를 수밖에 없다.
공장이 스마트해지면 근로자의 잔업시간도 줄일 수 있다. 올해는 주60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했다. 이런 추세로 나아가 내년에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정착할 계획이다. 잔업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매출도 줄겠지만 이를 기존 직원의 역할 변화나 또 다른 아이템으로 해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스마트공장이 주는 장점이다. 임금은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저임금 국가도 마찬가지다. 과거 근로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했다 하더라도 물가가 오르고 그에 따라 근로자도 소득 향상을 원하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품의 경우는 어떨까. 비슷한 가격에 품질이 균일한 제품과 들쭉날쭉한 제품 중 소비자는 무엇을 선택할까. 당연히 전자다. 삼천산업은 회사를 설립한 32년 중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동화를 추진했다. 제품 수급은 물론 스마트공장을 가동하는 데 안정적이라는 말이다.
“이제 우리 제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전 세계에 우리 회사 주력 상품 점유율이 10% 정도 되는데 앞으로는 20~30% 더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보고 있어요.”
스마트공장의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는 삼천산업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고 안정화하는 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20여 년 전에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대기업을 제외하면 중소기업 중에서는 초기에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그룹에 속한다. 최 대표는 삼천산업 대표로 취임하기 전 다른 대기업에서 10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다. 그때 스마트공장의 장점과 프로세스를 경험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삼천산업도 발 빠르게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려면 두 가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제조실행시스템(MES;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과 전사적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다. MES는 주문에서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관련 정보를 제공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장의 활동을 관리, 착수, 응답, 보고하는 생산실행관리 시스템이다. MES를 적용하면 모든 생산 활동을 최적화해 의사결정이 빠르고 전략적이어서 주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최 대표는 MES를 다른 기업보다 빨리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보통 시스템 정착에 1년 정도 걸리는 데 비해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만 단순하게 넣어 12주 만에 시스템을 구축했다. MES는 직원들이 더 좋아했다. 과거에는 손으로 직접 쓰다가 이제 바로바로 데이터를 넣기만 하면 되니까 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공장도 직원도 함께 똑똑해지다
MES가 쉽게 안착된 데 비해 ERP시스템은 안정화하는 데 애를 먹었다. ERP는 기업 내 생산, 물류, 재무, 회계, 영업과 구매, 제고 등 경영 활동 프로세스를 통합적으로 연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조직의 모든 영역에 정보가 끊이지 않고 흘러 업무처리 방식이나 기업의 구조를 본질적으로 개선해 궁극적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ERP는 직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기존의 업무시스템을 모조리 바꾸는 일이 추가로 생긴 탓이다. 기존 업무를 전산으로 옮기고 아직 전산화가 완전히 안 된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초기 1~2년은 그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2년 정도 지나자 어느 만큼 시스템을 갖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정화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결론적으로 두 가지 시스템을 도입한 덕에 스마트공장의 이점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1 삼천산업에서 만드는 세탁기의 진동과 소음을 흡수하는 서스펜션
2 삼천산업 스마트공장 내부 모습 ⓒC영상미디어
스마트공장을 안정화한 다음에는 다른 회사에서 견학을 많이 온다고 최 대표가 귀띔한다. 1년에 100명 이상이 삼천산업이 구축한 스마트 시스템을 보러 온다. 오는 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자동화에 관심을 갖고, 어떤 사람은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최 대표는 두 가지 모두 도입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전에만 해도 설비 자동화가 메인이었어요. 현장 컴퓨터 기계로 어떻게 자동화할지가 화두였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동화 설비를 사물인터넷으로 사무실에서 컨트롤하고 통제하는 게 포함됐어요. 들어오는 정보를 신속하고 빠르게 분석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으면 스마트공장이 아니죠. ERP로 정보가 배포되면 MES에 필요한 생산량이 확인돼서 거기에 맞게 생산이 진행되는데 둘 중 하나가 빠진다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견학 오는 사람들에게 이 점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최 대표의 눈에 안타까운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시스템 도입이 너무 늦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에 피력한다.
“스마트공장을 운영하는 법이나 스마트공장으로 전환한 현장 근로자들의 직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이 없어요. ERP 교육을 한다고 하면 ERP란 무엇인가, 기능은 무엇인가 이런 이론교육만 있지 이걸 어떻게 활용하고 현장에 적용하는지를 알려주는 교육이 없어서 아쉬워요. 그나마 있는 교육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전국 단위로 확대해서 지방에서도 쉽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해요.”
1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삼천산업을 방문했다. 그때 스마트공장 지원금을 좀 더 올려달라는 말과 함께 협력사끼리 그루핑을 해서 스마트공장을 함께 구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 제안도 내놨다. 영세한 중소기업은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의 지원 사업을 신청하려 해도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어마어마해 아예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영세한 기업 대부분이 현장인력만 있거나 사무업무는 가족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력사가 함께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면 기업 하나하나 제품의 품질이 균일해지기 때문에 서로의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 기업 간의 동반 성장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듯이 기업도 혼자서만 모든 일을 도맡을 수 없어요. 하청업체가 제품 품질을 향상하면 원청업체 역시 경쟁력이 생기죠. 그렇다면 결국 모두가 함께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국내에서 기업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런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으로 일자리도 만들고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어요. 스마트공장으로 우리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