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뉴스로 접한 쓸쓸한 풍경 하나. 전남 광주시 동구 광주고 인근 거리에 있던 헌책방 모습이었다. 폐업을 하면서 남은 책들을 1톤 트럭 석 대에 실어 폐지로 팔았다. 그 속에는 한눈에 봐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지금은 절판돼 구경조차 하기 힘든 희귀 도서들도 있을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 전직 교수가 화물차 짐칸을 뒤져 <조선왕조실록>, <씨알의 소리> 영인본(影印本)을 챙겼다. 이제 더 이상 책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없게 된 책방 주인은 40여 년 동안 또 다른 주인을 만나기 위해 이제껏 버텨온 책들을 한낱 ‘폐지’로 떠나보내면서 오랜 세월 자신의 손때 묻은 책들과 함께해온 책방 문을 닫았다.
그곳 거리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헌책방이 즐비했다. 어디 광주뿐이랴. 헌책방 거리는 전국 어느 도시에나 있었고, 서울은 헌책방이 청계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태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고, 손님은 줄어 가게 임대료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극심한 운영난에 허덕이면서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광주의 헌책방 거리에도 겨우 7곳만 남아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곳들도 책이 잘 팔려서가 아니다. 자기 건물에서 책방을 하는 주인들이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해온 책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그냥 두고 있지만 더는 책방을 이어갈 사람이 없는 이곳들도 머지않아 문을 닫을 것이다.
인천에는 경인선 철로가 놓이기 전 인천의 대표적인 서울로 가는 통로인 우각리길이었던 금곡동과 창영동 경계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수레에 책을 싣고 팔던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1960년대에는 헌책방이 40여 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5개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인기 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뭘 하나. “대부분 기념사진만 찍고 책은 안 산다”는 책방 주인들의 탄식이 이를 말해준다.
부산에도 역사 깊은 헌책방 거리가 있다. 한국전쟁 때 한 피란 온 부부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나 만화 등 각종 헌책들을 수집해 팔면서 시작된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지금도 크고 작은 헌책방 50여 개가 남아 있지만 1970, 1980년대 학생, 공무원 준비생, 직장인들이 즐겨 찾던 전성기 때의 모습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도서정가제 도입, 인터넷 서점의 등장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헌책방. 그래도 서울 청계천에는 아직 20여 개가 남아 있고, 신촌, 이문동 등 곳곳에 드문드문 문을 여는 곳도 있다. 하지만 어느 곳 할 것 없이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어 동네 헌책방들이 언제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새 책만을 찾거나, 아예 책을 읽지 않거나, 종이책보다는 휴대폰이나 태블릿PC로 e북을 읽는 세대들에게는 헌책방이 ‘고물상’처럼 생각될지도 모르니까.
운영난에 허덕이거나 후계자를 찾지 못한 광주의 헌책방 주인들은 협동조합을 만드는 방안 등을 모색했고, 보수동 책방골목의 헌책방들은 인터넷 쇼핑몰과 번영회로 활로를 뚫어보려 했지만,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 헌책방 거리는 전국 어느 도시에나 있었고, 서울은 헌책방이 청계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태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뉴시스
물론 독자적으로 대형화와 시장 다각화를 통해 과감하게 도전한 헌책방도 있었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고구마’란 헌책방은 규모가 130평에 30만 권의 책을 구비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서울 금호동에 헌책방을 열어 30년 넘게 운영하다 그곳이 재개발되면서 2011년 화성으로 옮긴 이 책방은 시대 흐름에 맞춰 1998년 국내 처음으로 온라인 중고서점 사이트를 열었지만 대형 온라인 서점에 밀려났다.
이렇게 하나둘 문을 닫는 헌책방들을 일부 지자체들이 살려보겠다며 앞장서고 있다. 주변, 아니면 도시의 다른 거리나 명소와 연결하는 이른바 ‘관광상품화’ 작업이다. 헌책방을 추억이 깃든 관광명소로 만드는 작업이다.
인천시 동구는 골목문화 투어를 한 아이템으로 전통공예상가, 헌책방 골목, 역사문화마을,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 등으로 이어지는 1.6㎞를 ‘우각로를 따라 걷는 근·현대사길’로 조성했다. 헌책방 골목 입구에는 옛 배다리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린 벽화 거리도 만들었다. 인천시의회는 헌책방을 지역문화를 살리는 실핏줄이라면서 지원 조례까지 제정했다.
부산시도 르네상스 사업에 보수동 책방골목을 포함시켜 특화거리로 만들겠다고 한다. 자갈치시장, 광복동, 차이나타운 역 등과 연결하는 ‘원 도심 스토리 투어’ 코스에 넣을 계획이다.
서울시 역시 헌책방을 포함한 시내 서점 470여 곳을 담은 ‘서울시 책방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지역서점 활성화를 위한 조례로 헌책방을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의 생각은 비슷하다. 헌책방을 단지 과거의 유물, 이제는 필요 없어진 옛것, 추억의 산물로 관광객들의 ‘볼거리’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시각과 인식으로 사라져가는 헌책방의 생존과 부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나 서점이 단순히 책을 읽고 파는 곳이 아니듯, 비록 그 역할이 점점 작아진다 해도 헌책방은 지식과 역사와 삶의 창고다.
이런 본래의 역할과 의미를 되살리기보다는 단지 추억의 ‘상품’으로서 헌책방을 보존한들 그것은 밀랍인형이나 기념물과 다를 바 없다. 헌책방은 단순히 가난했던 시절 고학생들이 공부할 책을 사기 위해 찾았던 ‘유물’이나 ‘추억의 장소’만은 아니다. 헌책방은 자칫 아무도 모르게 버려질 뻔한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서적과 자료들이 숨어 있는 곳이다. 광주의 그 헌책방처럼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길이 없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영인본이나 초판본이 숨어 있는 곳이지 않은가.
동네 서점들이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특화를 통해 ‘살아 있는’ 존재로서 생명을 이어가듯 헌책방 역시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비록 그 역할은 작을지라도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자료와 지식 창고일 때 존재 가치가 부여될 것이다. 지금도 일본 도쿄 간다에는 수많은 고서점이 문을 열고 관광객이 아닌 일본 국민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칩 하나에 수만 권의 분량을 담은 e북을 읽는 시대라고 하지만,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낡은 책 한 권도 함부로 버리지 않아야 한다. 헌책이라고 그 내용까지 낡아버리는 것은 아니며, 언젠가는 그것이 역사로 남기 때문이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