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인 지역가입자에게는 정액의 최저보험료가 부과되고, 소득이 있어도 직장에 다니는 가족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보험료를 내지 않는 무임승차는 없애는 등 서민 부담은 줄이고 형평성은 높이는 작업들이 추진된다.
현행 방식은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직장가입자 모두에게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지역가입자는 성, 연령, 재산, 자동차로 소득을 추정하는 방식에 불만이 제기됐다. 피부양자에게는 충분한 소득과 재산이 있어도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수 외에 이자, 배당, 임대소득이 있어도 연간 7200만 원만 초과하지 않으면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정부 방안에 따르면,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2024년까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또 연소득 100만 원 이하 세대에 1만 3100원의 ‘최저보험료’를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정부의 개편작업이 마무리되면 지역가입자의 80%에 해당하는 606만 세대가 보험료 인하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월 23일 정부·국회 합동 공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개편방안은 직장가입자, 지역가입자, 피부양자로 구분된 현행 부과체계를 3년 주기의 3단계(1단계 2018년, 2단계 2021년, 3단계 2024년)로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주관으로 1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방안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
소득 있는 피부양자 3.6% 지역가입자 전환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우선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성, 연령 등을 기준으로 부과하던 평가소득 추정 기준이 17년 만에 폐지된다. 지금까지는 연소득 500만 원 이하 지역가입자에게 성·연령, 소득, 재산, 자동차로 추정한 평가소득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소득이 없거나 적더라도 가족 구성원의 성별, 연령, 재산으로 인한 보험료 부담이 크다는 문제가 제기돼왔다.
이를 위해 재산·자동차를 기준으로 부과되는 보험료는 단계적으로 줄인다. 지금까지 자가주택은 재산 공제 없이 전액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무주택 전세 거주자는 전세 보증금에서 500만원 공제 후 30%로 환산해 부과했다. 앞으로는 재산 보험료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재산에 부과하는 경우에도 공제제도를 도입해 공제금액을 단계적으로 상향시킨다. 1단계에서 세대 구성원 총 재산 과표 구간에 따라 500만 원에서 1200만 원까지 공제하고, 2단계에서 재산이 있는 지역가입자 중위 재산인 과표 2700만 원을 공제하며, 3단계는 하위 60% 재산인 과표 5000만원을 공제한다. 3단계가 시행되면 시가 1억 원 이하의 재산에는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또 지금까지는 15년 미만의 모든 자동차에 보험료가 부과됐지만 앞으로는 자동차 보험료 부과가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1단계는 배기량 1600cc 이하 소형차(4000만 원 미만), 9년 이상 자동차, 승합차·화물·특수자동차 부과를 면제하고, 3단계는 4000만 원 이상의 고가차만 부과한다.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의 3.6%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소득 초과로 지역가입자가 되는 피부양자는 연간 종합과세소득 합산금액이 2인 가구 중위소득인 3400만 원을 초과하는 6만 세대 9만 명이다.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 중 대다수가 연금소득자로 연금소득은 30%에만 보험료를 부과하여 보험료 부담을 완화했다. 재산 초과로 지역가입자가 되는 피부양자는 과표 기준 5억 4000만 원이 넘는 재산이 있으면서 생계가 가능한 수준의 연 소득이 있는 1만 세대다. 정부는 과표 기준 5억4000만 원 초과 9억 원 이하 재산이 있어도 생계 가능한 소득이 없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예정이다.
보수 외 소득 연 3400만 초과면 보험료 부담
직장가입자는 99%가 현재와 같이 월급에 대한 보험료를 그대로 부담할 예정이다. 다만 월급 외 종합과세소득이 많은 고소득 상위 0.8%는 부담이 증가한다. 구체적으로 보수가 월 7810만 원 이하이며, 보수 이외에 별도의 소득이 없거나 적은 직장인 대부분은 보험료 변동이 없다. 다만 보수 외 연간 종합소득이 2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을 초과하는 경우 보수 외 소득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참고로 중위소득은 2017년 기준 연 3400만 원이었다.
정부의 개편방안이 실현되며 저소득 지역가입자가 고소득 피부양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형평성 문제가 많이 개선될 전망이다. 과거 언론에 집중 소개되었던 저소득층 ‘송파 세 모녀’의 경우 월 4만 8000원의 보험료가 부과돼 문제가 됐다. 당시 소득, 재산이 있더라도 일정 기준을 넘지 않으면 피부양자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사례와 송파 세 모녀가 대비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고령화를 대비한 근로시기와 은퇴시기의 생애주기(life cycle)를 고려한 적정 부과 기준을 마련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직장가입자가 퇴직 후 지역가입자가 되면 소득이 감소해도 재산 때문에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경우가 최소화된다.
개편안은 국회와 협의를 거쳐 추진된다. 올해 상반기 중 개정을 완료하면 하위법령 마련, 시스템 정비 등 1년간의 준비를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보건복지부 누리집(www.mohw.go.kr)을 참조하면 된다.
문답으로 정리한 ‘건강보험료 개편안’
“직장 가입자 월급 외 소득에도 보험료 부과”
Q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왜 개편하나요?
A 직장과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던 건강보험을 하나로 통합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아 이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직장과 지역의 보험료를 달리 부과해온 가장 큰 이유가 보험료 부과 기준인 소득 파악률이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이었으나,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고 현금영수증 발급도 의무화되어 통합 당시에 비해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높아져서 이제는 소득에 부과하는 보험료 비중을 더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Q 카드 사용 보편화와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이제는 모든 소득이 그대로 노출되는데, 지역가입자도 직장과 같이 소득의 일정 부분만 보험료를 부과해야 하지 않나요?
A 지역가입자도 직장처럼 모든 소득에 대해 일정 비율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지역가입자는 직업 여건별(자영업자, 일용·단시간 근로자,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직, 은퇴자 등)로 소득원이 다양하고 소득 자료 보유 상황도 다르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Q 봉급자는 이미 월급에서 보험료를 꼬박꼬박 떼고 있는데, 월급 이외에 다른 소득이 있다고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요?
A 건강보험이 하나로 통합되었고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이외에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를 부담하는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직장가입자에게도 해당 직장의 월급뿐만 아니라 다른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형평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Q 직장 다니면서 받은 월급에서 보험료를 이미 냈고 월급의 일정 부분을 적립해 지금의 연금을 받는 것인데, 연금에 별도로 보험료를 부과해야 하나요?
A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은 기본적으로 부담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며, 부담 능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소득이기 때문에 연금소득에도 보험료를 부과해야 합니다.
Q 누적적립금이 20조 원이나 쌓여 있는데 단계적 개편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을 더 투입, 재산보험료를 대폭 인하해 어려운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줄여야 하지 않나요?
A 현재는 흑자 상황이지만 지속적인 보장성 확대, 급속한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추세 등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올해 보험료는 동결했지만 보장성 확대 등으로 올해 이후 당기수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고, 감염병 확산 등 예상치 못한 긴급 지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최소한의 적립금은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