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보다는 잠재력, 학력보다는 열정으로 중소기업 문을 두드린 청년들이 있다. ‘중소기업이 성장하면 대기업 되는 것 아니겠냐’ 말하는 그들의 꿈 이야기.
청년실업률은 치솟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청년들이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청년 친화 강소기업’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임금 체불, 신용평가등급, 고용유지율 등의 지표를 평가해 청년 채용에 적극적인 강소기업 중에서 선정하며, 월평균 통상임금 200만 원 이상, 주중 야근 2회 이하, 4개 이상의 복지제도 등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청년 친화 강소기업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녁이 있는 삶이 있어 좋아요”
‘우정비에스씨’ 조미리 씨와 천주형 씨
▶경기도 수원시 광교테크노밸리의 우정비에스씨 직원 조미리 씨(왼쪽)와 천주형 씨 ⓒ김종연
경기도 수원시 광교테크노밸리의 ‘우정비에스씨’ 연구실을 찾았다. 우정비에스씨는 생명공학 연구와 바이오 멸균이 주요 사업인 벤처기업. 연구실에 들어서자 투명한 통에 담긴 수백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보였다. 비커, 현미경, 각종 약품들이 책상 위에 빼곡하게 놓여 있고 하얀 가운이나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앳된 얼굴의 청년 2명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이곳에 입사한 신입사원 천주형 씨(31)와 조미리 씨(27). 이들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미리 씨는 “단순히 영어점수나 학점 등 스펙을 많이 요구하는 대기업의 입사전형과는 달랐다. 면접 과정에서 내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기보다 잠재력을 얼마만큼 펼칠 수 있는지 더 보는 것 같았다. 아직은 규모가 작은 회사지만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지방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를 우정비에스씨가 뽑은 이유도 바로 가능성 때문이었다.
천주형 씨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을 공부하며 석사학위를 받았다. 남부럽지 않은 스펙도 쌓았다. 주변에서는 모두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기대했지만 그는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학부 때 첫 전공은 화학공학이었다. 대학원에서는 인지신경심리학을 전공하며 이 두 가지를 모두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기업은 규모는 컸지만 한정된 분야에만 지원이 가능했다. 반면 이곳은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기회를 주고 있었다.” 대기업과는 달리 유연하게 업무 분담이 이뤄지고 자유롭게 부서 이동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소기업은 야근이 잦고 업무 강도가 세다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이들은 한마디씩 했다. 조미리 씨는 “한 달에 야근하는 횟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나를 비롯해 다른 직원들도 어학원, 헬스장 등을 다니며 퇴근 후에 자기 계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자랑했다. 천주형 씨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저녁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며 “지금은 오히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나를 부러워한다”고 거들었다. 현재 우정비에스씨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개인직무분석 컨설팅을 외부 전문업체에 맡겼다. 이 컨설팅을 통해 직원들의 적성을 찾아주고, 원하는 부서로 자유롭게 이동시켜 업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조미리 씨는 “회사가 교육과 컨설팅으로 직원들의 능력을 높여주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할래요”
‘엘앤피코스메틱’ 박희민 씨와 이경아 씨
▶엘앤피코스메틱 직원 박희민 씨(왼쪽)와 이경아 씨. ⓒ김종연
또 다른 청년 친화 강소기업인 서울 강서구의 ‘엘앤피코스메틱’을 찾았다. 엘앤피코스메틱은 국내 1위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을 선보인 화장품 회사. 이곳에서 입사 2~3년 차인 이경아 씨(23)와 박희민 씨(27)를 만났다.
이경아 씨는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한 대기업보다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중소기업이 더 비전 있다고 생각했다”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역시 그만큼 직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시각디자인과 동기들 20여 명 가운데 이경아 씨만 취업에 성공했다고. 그는 “친구들에게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눈을 돌려보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민 씨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파. 그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마스크팩 사업은 대기업보다는 이런 중소기업들이 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조직은 작지만 대신에 유연하고, 소비자들의 의견을 빠르게 제품에 적용시킬 수 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기대되는 회사다.”
실제로 엘앤피코스메틱은 직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신입 직원들도 새로 출시되는 제품 디자인, 마케팅 등 다양한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이경아 씨는 중소기업의 장점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를 꼽았다. 직원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인사할 정도로 친밀한 분위기라고. 박희민 씨는 “지난 연말 선물로 회사의 마스크팩을 나눠줬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면서 “지금은 친구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기억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추천까지 하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회사 복지가 안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엘앤피코스메틱은 장거리 출퇴근자를 위해 한 달 30만 원의 월세를 지원해준다. 직원이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에는 학비의 절반까지 지원해준다. 육아휴직, 체력단련비 등 대기업에서도 쉽게 받지 못하는 복지혜택까지 모두 누릴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청년 친화 강소기업’인 우정비에스씨와 엘앤피코스메틱에서 만난 직원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있다. “중소기업이 성장하면 대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무조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강소기업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규모가 작을지라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김태형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