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스포츠 중 농구와 배구는 겨울 실내 스포츠의 꽃으로 통한다. 야구와 축구가 여름을 대표한다면 농구와 배구는 가을에 개막해 겨울을 지나 봄에 막을 내린다. 시장 자체만 놓고 보면 농구·배구는 야구·축구보다 규모는 작지만 팬들의 응집력은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좌) 2017년 1월 10일 안양에서 열린 프로농구 경기에서 KGC인삼공사와 KT가 대결하고 있다.
(우) 2017년 1월 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16~2017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우리카드와 OK저축은행이 혈전을 벌이고 있다. ⓒ조선DB
실력과 외모가 빼어난 선수들을 따르는 이른바 ‘오빠부대’는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존재다. 국내 스포츠에서 오빠부대의 원조는 1990년대 중반을 주름잡았던 대학농구지만 배구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오빠부대 이끈 농구와 배구
오빠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대학농구의 절정기는 1993~1994시즌 전후였다. 1983~1984시즌 ‘점보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시작돼 이듬해 ‘농구대잔치’로 이름을 바꾼 농구 경기에서 1992~1993시즌까지는 실업팀들의 전성시대였다. 대회 초기 현대전자, 삼성전자의 양강 구도에서 1986년 창단한 기아산업(울산 모비스의 전신)이 합류하면서 3강 체제를 구축했다.
기아는 당시 중앙대 출신인 허재, 한기범, 김유택, 강정수 등이 팀을 이끌었다. 여기에 유재학, 정덕화 등 연세대 출신들이 가세했다. 이후 강동희, 김영만 등 중앙대 출신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기아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기아의 독주에 제동을 건 곳은 대학팀 연세대학교였다.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김훈, 서장훈 등으로 구성된 연세대 농구팀은 결승전에서 국군체육부대(상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곧바로 절치부심한 기아자동차가 잇달아 우승을 차지했지만 연세대는 프로 출범 이전 마지막 시즌인 1996~1997시즌에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배구 역시 열혈 팬들이 적지 않았다. 프로배구 이전 1984년에 시작된 한국배구슈퍼리그(초창기에는 ‘백구의 대제전’ 혹은 ‘배구대제전’으로 불림)는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양강 구도였다. 장윤창, 정의탁, 류중탁 등으로 구성된 고려증권이 1984년과 1985년에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컴퓨터 세터로 통하는 김호철, 아시아의 거포 강만수, 이종경, 양진웅 등 대표급 선수들로 무장한 현대자동차서비스가 3연패를 이뤘다.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가 구축한 2강 체제는 1991년 한양대가 부상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한양대는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등 무서운 20대 초반 신예들이 관록의 실업팀을 차례로 꺾었고 챔피언전에서 이상열, 서남원 등이 버틴 럭키금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중 대한항공은 슈퍼리그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배구 명문 인하대 출신이 주축을 이룬 대한항공의 인기는 우승팀 못지않았다. 특히 최천식의 인기는 국내를 넘어 일본 팬들의 마음까지 빼앗았다.
배구 역시 대형 스타들의 탄생과 팬들을 매료시키는 수준 높은 경기력 덕분에 프로화로 이어졌다. 배구 대표팀은 김세진, 하종화, 신영철, 윤종일, 박희상 등이 주축을 이룬 1995년 월드리그에서 6강에 올라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배구의 프로화는 농구보다 상대적으로 늦어서 2005년에야 프로 출범을 이룰 수 있었다.
외국인 선수 도입이 가져온 변화
프로화로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는 외국인 선수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농구는 프로 원년인 1997년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했는데, 팀별로 외국인 선수를 2명 보유하는 것은 현재까지 큰 변화가 없다.
프로농구 초창기 가장 눈에 띈 외국인 선수는 대전 현대에서 활약했던 조니 맥도웰이었다. 1997~1998시즌 현대에 입단한 그는 드래프트 제도에서 자유계약으로 바뀌기 이전인 2003~2004시즌까지 무려 7시즌이나 활약해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힌다.
배구 역시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팀 전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배구는 V리그 두 번째 시즌인 2005~2006시즌부터 외국인 선수제도를 도입했는데, 팀별로 1명 보유 및 1명 출전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배구는 외국인이 1명인 만큼 의존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인 선수의 타점 높은 공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국내 라이트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는 상황이 이어졌다. 빠른 스피드를 추구하는 세계 배구의 흐름과 달리 장신의 외국인 거포에 의존하는 상황이 지속돼 한국 남자배구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4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암흑기에 들어서기도 했다. 그나마 올 시즌부터는 자유계약이 아니라 트라이아웃을 통한 선수 수급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현재 농구와 배구를 즐기는 젊은 팬층은 프로화 이후 태어난 세대다. 물론 스포츠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농구와 배구는 과거의 인기를 이어갈 수 없다.
올 시즌 같은 날 열리는 농구·배구 올스타전
선수와 팬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 중 하나는 바로 올스타전이다. 프로농구는 1월 22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프로배구도 같은 날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각각 올스타전이 열린다. 농구는 1989년 이후 출생자(만 27세 이하)로 구성된 주니어와 시니어가 대결한다. 허웅(원주 동부)은 지난 시즌에 이어 최다득표의 영예를 안았다.
농구 올스타전에서는 양팀 간의 맞대결 외에도 덩크슛, 3점슛 콘테스트 등이 열려 관심을 모은다. 오랜만에 승부를 떠나 선수들이 화려하고 다양한 기량을 선보여 관심이 집중된다.
배구 올스타전은 배구 도시로 통하는 천안에서 2년 연속 열린다. 7팀을 4팀과 3팀씩 나눠 K-스타팀과 V-스타팀으로 격돌한다. 배구 올스타전 역시 승부를 떠나 선수들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 있어 팬들도 편안하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
농구와 배구는 초창기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한 시점 그리고 프로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함께 겪으며 발전해왔다. 올 시즌은 우연찮게 같은 날 올스타전을 치르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됐지만 이들은 앞으로도 겨울 스포츠를 양분하며 상생할 전망이다.
시즌 주요 관전 포인트
1 코트를 빛낸 최고 외국인 선수는?
프로농구는 최근 리카르도 라틀리프(서울 삼성)의 귀화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2012년 울산 모비스에 입단한 뒤 올 시즌 삼성으로 이적한 라틀리프는 빼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농구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프로배구는 올 시즌부터 자유계약이 아닌 트라이아웃으로 외국인 선수를 수급하고 있다. 지난 시즌 시몬이 최고의 선수로 OK저축은행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번에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에 큰 차이가 없다. 가스파리니(대한항공), 파다르(우리카드), 바로티(한국전력) 등과 득점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2 첫 우승의 꿈?
1997년 개막한 프로농구에서 안양 KGC인삼공사는 정규시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12년 챔피언결정전에서 플레이오프를 거쳐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규시즌 우승은 하지 못했다. 1월 10일 현재 KGC인삼공사는 정규시즌 2위로, 1위 서울 삼성에 한 경기 뒤져 있다. 상위권 순위에 있는 팀들 간 승차가 적어 우승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올 시즌 첫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한을 풀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배구에서는 한국전력의 분전이 돋보인다. 한국전력은 역대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도 인연이 없었다. 2014~2015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것이 유일한 경험이었다.
3 최고 국내 선수는?
농구에서 국내 선수 중 최다득점자는 10일 현재 KGC인삼공사 이정현이다. 그는 경기당 평균 16.75점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3점슛 부문에서도 2.75개로 테리코 화이트(2.90개)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배구에서는 문성민(현대캐피탈)과 전광인(한국전력)이 단연 돋보인다. 득점 상위 5위까지 외국인 선수들이 포진한 가운데 문성민은 1월 10일 현재 431점으로 6위에 올라 있다. 전광인은 347점으로 전체 7위다.
4 올 시즌 우승 향방 가를 주요 매치
프로농구는 6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이 중 1위와 2위는 4강에 직행하는 만큼 챔피언 도전에 유리하다. 오는 3월까지 정규시즌이 이어지지만 1월 10일 현재 1위와 2위에 올라 있는 서울 삼성과 안양 KGC인삼공사의 맞대결 결과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올스타전이 끝난 이후인 1월 30일 맞대결을 펼친다. 프로배구는 올 시즌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우승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앞선 3번의 맞대결에서는 대한항공이 2승 1패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들은 올스타전(1월 22일) 이전인 17일에 맞대결을 펼치고, 이어 2월 9일과 25일에 잇달아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5 연봉킹은 누구?
프로농구 최고액 연봉자는 울산 모비스 양동근이다. 양 선수는 35세인데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정규시즌 MVP만 3번 올랐고 팀 모비스를 5번이나 정상에 올린 그에게 연봉 7억 5000만 원은 아깝지 않은 액수다. 프로배구 연봉킹은 한선수(대한항공)다. 군에서 전역한 이후에도 꾸준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한선수는 대표팀에서도 주전 세터로 자리 잡고 있다. 2013년부터 5억 원의 연봉을 받으며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는 그는 대한항공과 함께 사상 첫 우승을 노리고 있다.
차상엽 | 포커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