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제목 가운데 ‘나는’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면 아마도 제목이 이렇게 바뀔 것 같다. ‘스마트폰은 네가 평소 하는 일들을 다 알고 있다.’ 젊은 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유치원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너 나 할 것 없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세 가지 중요한 쓰임새는 통화, 인터넷 연결, 촬영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스마트폰 본연의 기능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의 이들 기능은 단말기 소지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지만 일반에 공개돼서는 안 될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을 확률 또한 높다. 따라서 범죄 혐의를 받을 만한 사람이나 비밀리에 무슨 일인가를 벌이는 사람, 혹은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이들이라면 유사시 카톡이나 인터넷 검색 기록, 저장된 사진 등의 우선 삭제를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하게 스마트폰 사용 기록을 삭제한다 해도 단말기 자체만 살아 있다면 여전히 그 소지자의 사생활이나 활동 반경에 관한 적잖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인체와 생활 주변의 각종 물품과 기기 등 사물의 접촉에 대해 천착해온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연구팀에 따르면 스마트폰의 기기 표면 등에는 문자 그대로 엄청난 ‘사생활 정보’가 담겨 있다. 평소 어떤 과일이나 음식을 즐겨 먹는지, 고급 화장품을 사용하는지 아닌지, 어떤 환경의 집에서 사는지, 방 안의 벽지가 무엇인지, 무슨 이불을 덮고 자는지 등 한 사람의 사생활이 스마트폰에 고스란히 ‘기록’돼 ‘증거’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 기록을 삭제해도 스마트폰 표면의 화학물질 분석을 통해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shutterstock
연구를 주도한 피터 도레스타인 교수는 사람 피부에 남아 있는 각종 화학물질 등에 대해 10년 안팎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 미국 과학학술원 회보에 피실험자 두 사람이 사용한 2개의 스마트폰 등에서 수집한 약 500개의 화학물질 샘플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스마트폰 소지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구분해낼 수 있고, 머리 염색약을 사용하는지, 사용한다면 어떤 계통인지, 맥주와 와인 가운데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등도 다 추정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매운 음식을 주로 먹는지,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 어떤 질환이 있어 평소 먹는 약이 있는지 등도 대략 밝혀낼 수 있다. 더불어 스마트폰 표면의 화학물질을 분석해 야외 활동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까지도 가려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선스크린이나 해충 퇴치제 등의 잔류량을 밝힘으로써 골프나 테니스, 낚시, 사냥 등을 어느 정도 빈도로 즐기는지를 추론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손바닥 등에 남아 있는 각종 미세 화학물질이 스마트폰에 옮겨 달라붙는 건 손을 꼼꼼히 씻지 않을 경우 이들 미세 물질이 제대로 씻겨나가지 않는 탓이 크다. 예를 들면 골프나 테니스 동호인들이 자주 바르는 선스크린은 동반자나 상대와 악수를 나누는 정도만으로도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선스크린 물질이 옮겨지는데, 설렁설렁 씻어서는 잘 사라지지 않는다. 평소 스마트폰을 쓰면서 매일매일 꼼꼼히 세척하는 등 극단적으로 철저하게 스마트폰을 관리하지 않는 이상 스마트폰에는 그 사용자의 생활 양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낱낱이 기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 김창엽(자유기고가)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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