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제2항의 내용이다.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었다. 모성 보호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국가까지 나서서 모성을 보호해야 하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모성 보호를 위한 법령에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보험법 등이 있다. 일 중심에서 가정과의 균형을 중시하는 인식의 변화에 발맞추고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여성의 경제활동을 늘리자는 취지에서 법의 명칭도 2007년 ‘남녀고용평등법’에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모성 보호정책과 제도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자.
1953년 우리나라에서 모성 보호 관련법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이 시기에는 부녀자와 연소 근로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잔여적(殘餘的) 복지 차원에서 모성 보호 문제를 논의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까지는 법조문의 내용에 변화가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여성의 모성 보호 조항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7년에 접어들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여성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요구가 급증해 모성 보호 문제가 사회적 담론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이후 여성 노동계 중심으로 모성 보호정책 확대 주장
2001년 모성 관련법 시행, 출산휴가 90일로 연장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여성 노동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평생 평등 노동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모성 보호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취업 여성이 증가했고, 여성의 경제적 기여도가 높아졌으며,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성과가 크게 나타나 사회 보편적인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정기검진 휴가제와 가족간호 휴가제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산전·산후 휴가를 12주로 확대하는 정책이 추진됐다. 산전·산후의 진찰비도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됐다.
2000년 5월 30일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제88차 총회에서는 1952년의 모성보호협약과 모성 보호 권고안을 개정해야 한다는 안건이 상정됐다. 여성 근로자의 상황을 배려해야 하며 임신에 대해 정부와 사회에서도 책임을 져야 하고 임신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결국 2002년 6월 15일 국제협약의 형태를 갖춘 모성보호협약과 권고안이 채택됐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도 국제노동기구의 개정된 모성보호협약과 권고안을 수용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7월 6일 ‘기업과 함께하 는 일·가정 양립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 참석해 격 려하고 있다. ⓒ동아DB
2001년 11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 모성 보호 관련법이 시행됐다. 모성 보호 관련법은 단독 법률이 아니며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등에서 모성 보호와 관련된 법안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주요 내용은 출산 전후 휴가 확대와 육아휴직에 대한 급여 지급, 남녀고용평등법 적용 대상의 확대, 간접차별 개념의 구체화, 성희롱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었다.
이 법에 따라 60일에 그치던 기존의 출산휴가가 90일로 연장됐고, 산후 휴가는 최소 45일이 보장됐다. 태아의 건강뿐 아니라 여성의 건강을 향상하고 고용의 안정을 보장하자는 정신이 반영됐다. 유급 육아휴직제가 실시되어 여성 배우자가 근로자가 아닌 경우에도 남성 근로자가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됐다.
또한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던 남녀고용평등법이 1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됐고, 18세 이상의 여성은 당사자 간에 합의 또는 본인이 동의한 경우에만 야간 및 휴일 근로를 할 수 있게 했다. 성희롱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성희롱을 한 사업주에게는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벌칙 규정도 신설했다.
이후 2006년 1월부터 모성 보호 관련 3법(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의 개정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유산 및 사산에 관련된 휴가 규정이 신설됐고 산전·산후 휴가급여 지원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고용보험법상 우선지원 대상 기업(중소기업)의 여성 근로자인 경우에는 고용보험에서 휴가급여를 지급하게 됐다. 여성 근로자가 유산이나 사산을 할 경우에도 45일의 유급휴가를 주는 ‘유·사산 휴가제’도 시행됐다. 2008년에는 배우자 출산휴가제도가 도입됐다. 처음에는 무급 3일로 시작했지만 2012년 8월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최대 5일까지, 그중에서 3일은 유급으로 늘어났다. 2013년 2월 2일부터는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까지 최대 5일로 확대됐다.
올해부터 비정규직 근로자, 남성의 육아휴직 강화
모성 보호 사각지대 없애기 노력을
2016년부터는 제3차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마련한 모성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남성의 육아휴직도 강화되어 2016년부터 ‘아빠의 달’이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됐다. 아빠의 달이란 남성 육아휴직을 촉진하는 사업으로,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쓰면 육아휴직급여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육아휴직급여가 통상임금의 40%에서 100%로 상향됐고, 상한액도 10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인상됐다.
육아휴직 대신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의 단축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부터는 1년에서 2년으로 기간이 확대됐고 분할 사용 횟수도 2회에서 3회로 늘어났다.
▶고용노동부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 축 급여제도에 대한 거리캠페인을 하고 있다. ⓒ동아DB
이상에서 살펴본 우리나라 모성 보호정책은 크게 두 가지 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여성의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제도로 ‘생물학적 모성’의 보호와 관련된다. 임산부의 시간외 근로 제한, 임산부의 야간 및 휴일 근무 제한, 요구가 있을 때 임신 중 가벼운 근로로의 전환, 출산 전후 휴가제도, 유산 및 사산 휴가제도, 배우자 출산휴가 등이다. 둘째, 양육 관련 제도는 ‘사회적 모성’의 보호와 관련된다. 예컨대 육아휴직제도, 육아 및 수유 시간의 부여, 직장 내 보육시설 설치 및 지원 등이다.
모성 보호정책은 여성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서 나아가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제도로 발전해왔다.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 아닌 부모의 공동 책임이며, 다음 세대 구성원의 양육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도 일찍이 ‘모성은 사회적 기능이다(Maternity is a social function)’라고 천명해왔다. 모성 보호는 임산부와 그 배우자만의 책무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돌보고 챙겨야 하는 사회적 약속이 됐다. 이제 모성 보호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우리 모두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글·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