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우리나라보다 엄격하게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제한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직자 등에게 허용되는 선물과 접대의 금액 기준이 우리나라보다도 낮다.
미국은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한 것과 관계없이 청탁행위뿐 아니라 직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만약 공직자가 이 같은 사항을 위반하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데, 기준은 주(州)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메인주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달러(약 225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몬태나주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5만 달러(약 5627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공직자의 뇌물 수수 역시 엄격히 제한한다. 미국은 1962년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방지법(Bribery, Graft and Conflict of Interest Act)’을 마련해 공직자의 뇌물 수수 등을 철저히 금지한다. 이 법은 공직자가 공무 수행 과정에서 대가성 금품을 수령하면 15년 이하 징역 또는 25만 달러(약 2억8137만 원)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고의가 있는 뇌물과 고의 없이 공무와 관련한 금품 수수(불법 사례)를 구분해 처벌한다. 미국은 뇌물죄가 금품 수수보다 죄질이 나쁘다고 보기 때문에 ‘징역 15년’, ‘벌금 25만 달러’ 또는 ‘뇌물액의 3배’ 중 대상자에게 형벌이 가장 높은 것을 적용해 처벌한다. 선물 수수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다만 20달러(약 2만 원) 이하, 1년 합계 50달러(약 5만 원) 미만의 선물이나 예금증서 등의 수수는 예외로 인정한다.
1995년 로비공개법을 제정한 미국은 로비스트 제도가 합법화됐지만 입법 로비 등 청탁에선 ‘허용 및 공개’의 원칙을 갖는다. 로비를 허용하되 투명하게 하라는 것이다. 만약 공직자가 로비스트를 만난다면 이 원칙에 따라 일시와 사유를 기록하고 이 내용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미국·독일·영국·일본 부정 청탁 엄격히 금지
선물·예금 수수액 美 연간 50달러, 獨 25유로 이하 제한
로비 활동이 합법화된 독일도 정당한 로비 활동과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구분한다. 근거는 1997년 제정된 ‘부패단속법’이다.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상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공공기관을 비롯해 재단, 주식회사 등 민간단체다. 우리나라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공직자뿐 아니라 교사(사립학교 포함), 언론인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독일의 반부패법은 ‘공무’를 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공직자의 금품 수수는 어떻게 제재할까. 독일연방정부는 각 기관별 실정을 고려해 공직자의 선물 수수 기준을 설정하도록 하는데 상한선은 25유로(약 3만1000원) 이내다. 만약 이 금액을 초과한 선물을 받게 되면 기관 담당자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부처가 다르다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독일 연방내무부는 25유로, 독일 연방법무부는 5유로(약 6300원) 이하의 선물만 허용한다.
독일은 형법에서 공무원이 상대방에게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대가로 이익을 요구하거나 받으면 ‘수뢰’한 것으로 보고 6개월에서 5년형을 구형한다. 의무 위반은 아니지만 직무 수행과 관련해 이익을 얻으면 ‘이익 수수’로 3년 이하의 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같은 범죄라도 판사가 다른 공무원보다 무거운 벌을 받고, 공직자가 이익을 제공하는 사람보다 강력하게 처벌받는다.
2011년 뇌물방지법(Bribery Act)을 시행한 영국은 각 부처와 시가 자체적으로 선물 및 접대 수수 기준을 마련하고 있어 가액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런던시 소속 공무원은 25파운드(약 3만7000원)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경우 관리자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영국 외무부 공무원은 30파운드(약 4만4000원)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수 없다. 법을 위반한 개인과 법인에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무제한의 벌금이 부과된다. 나아가 2002년 제정된 범죄수익법(Proceeds of Crime Act)에 따라 재산 몰수가 가능하고, 회사 이사 자격 박탈법(Company Directors Disqualification Act)에 근거해 이사의 자격까지 박탈할 수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일단 국가공무원이 원칙적으로 이해 관계자로부터 금전 등의 이익을 받는 행위를 금지한다. 만약 과장급 이상의 공직자가 5000엔(약 5만5000원)이 넘는 금품이나 선물을 받았다면 각 성(省)·청(廳)의 기관장 등에게 보고해야 한다.
美 공직자 외부 강의 사례금 수수 금지
英 장관은 매체 기고문 게재해도 보수 받을 수 없어
이들 국가는 외부 강의 사례금 기준도 우리나라보다 엄격하다. 미국은 1978년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제정된 ‘정부윤리법(Ethics in Government Act)’을 통해 공직자가 재직 중에 자신의 직무와 직접적으로 관계되거나 직위로 인한 출연, 강연, 기고 등의 대가로 어떠한 사례금도 제공받지 못하게 한다. 이를 위반하면 1만 달러(약 1125만 원) 이하의 민사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은 금품 수수와 관계없이 공직자의 청탁행위뿐 아니라 직무에 영향력을 행사하 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연합
영국도 ‘영국 장관 행동강령’을 통해 장관이 연설 또는 매체 기고문을 게재한 대가로 보수를 받을 수 없도록 금지한다.
일본은 공직자 부패행위 관련 법제 중 하나인 ‘국가공무원 윤리규정’에서 구체적으로 공직자의 외부 강의 사례금을 제재한다. 보수를 받는 강연, 토론, 강습, 연수 등의 활동뿐 아니라 저술 감수, 편찬, 라디오 및 TV 방송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사전에 윤리감독관으로부터 승인을 얻어야 한다.
부패방지법은 공직자 개인을 넘어 기업에까지 적용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평소 얼마나 효과적으로 부패방지컴플라이언스(Anti-corruption Compliance, 준법감시인제도)를 수립해 운영하는지가 기소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부패방지법을 철저히 지킨다. 심지어 양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때 단순히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마련 여부를 보는 게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부패방지컴플라이언스는 1977년 제정된 해외부패방지법 가이드상의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2011년 통합 제정된 영국의 뇌물방지법도 공무원이나 기업 간에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금지한다. 직원이 뇌물 범죄를 저지른 경우 해당 직원은 물론 기업까지 함께 처벌받는다. 10년 이하의 징역과 무제한 벌금이 부과된다.
이들 외국의 사례는 강력한 부패방지법이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패 감시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 순위를 살펴보면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보다 부패인식지수가 높다. 2015년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았고 168개 조사 대상국 중 37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회원국 34개국 중 27위로 하위권이다. 반면 미국은 17위, 일본 15위, 영국 14위, 독일은 12위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우리나라가 해당 국가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요 국가별 공직자 선물 수수 금지 규정 및 예외 한도
미국 1회 20달러(약 2만 원), 연간 50달러(약 5만 원)
일본 5000엔(약 5만 원)
과장급 이상은 금액 초과 시 상부에 금액, 날짜, 제공한 사람의 이름, 직책, 주소 등 보고
영국 25~30파운드(약 4만 원)
런던시는 25파운드 이상 선물 및 접대 시 관리자 승인 필요
독일 25유로(약 3만 원)
금액 초과 시 기관 담당자 사전 승인 필요.
연방법무부는 허용 가액 5유로(약 6000원)
글· 김건희(위클리 공감 기자) 201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