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하계올림픽이 한창이다. 연일 전해지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에 국민들은 밤잠을 설친다.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야만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과 열정을 마음껏 불사르는 그 모습이 곧 ‘메달’이고 ‘감동’이다. 올림픽 정신이 그렇고 스포츠맨십이 그런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그 가치를 알고 그것에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한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지상주의에 빠진 적이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그랬다. 심지어 은메달을 따고도 선수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 상대 선수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왜 한국 선수들은 은메달을 땄는데도 조금도 좋아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외국인이 많았다.
어디 선수들뿐이랴. 응원하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실력이 어느 정도이든,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하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메달만 원했다. 그래서 예선에서 탈락했거나 메달을 놓친 선수는 거들떠보지 않았고, 소위 취약 종목은 선수 이름조차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승자독식주의, 결과중시주의, 황금만능주의가 가져온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결과보다 최선의 모습에 격려하는 모습
성숙한 응원문화로 성장
이런 태도와 가치관은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 메달 수상자, 특히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엄청난 포상을 걸었고, 연금도 나날이 높여주었다. 여기에 협회와 대기업들이 큰돈을 얹어주었고, 언론은 그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그러니 선수들의 목표는 오로지 메달이었고 국민들도 한때는 메달 수가 국가의 수준과 국력의 상징인 양 여겼다. 대회 자체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그래서 이전 어느 올림픽보다 화려하고, 멋있고, 역대 최고였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성공적이란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1988 서울올림픽이 그랬고 몇 번의 아시안게임이 그랬다.
▶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역경을 딛고 동메달을 따낸 브라 질 마라토너 반달레이 데 리마가 2016 리우올림픽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섰다. ⓒ뉴시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올림픽을 정말 축제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올림픽 스스로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자성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 올림픽과 스포츠의 본래 정신과 의미, 그리고 메달보다 값진 것들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결과보다는 최선을 다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국민들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진심으로 사랑의 응원과 박수, 격려를 보낼 줄 안다.
스포츠 선진국, 성숙한 응원문화란 이런 것이다. 오로지 1등만을 원하고, 1등만이 환영받고, 돈만을 위해 뛰는 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라 투전판이다. 우리 선수만 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 선수는 아무리 잘해도 찬사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욕을 해대는 응원은 응원이 아니라 행패이고 패악질이다. 유럽의 훌리건들을 보라. 누가 그들을 진정한 서포터스라고 하겠는가. 심지어 그들이 지지하는 선수들조차도.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자부심, 열정으로 경기장에서 혼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지구 반대편에서12시간 시차로 벌어지는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밤새워 보면서 응원하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개최 장소가 멀어 2002 한?일월드컵 때처럼 길거리로 모이거나 돈을 많이 들여 대규모 인원이 경기장을 찾을 수는 없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으로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실시간 개성 넘치고 재치 있는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선수들도 그것으로 힘을 내고 위로받고 마음을 나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나라 국민들, 심지어 개최국인 브라질 국민까지도 리우를 찾은 세계인과 기꺼이 축제를 즐기고, 상대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 얼마나 많은 진통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의외다. 개막을 눈앞에 두고도 리우 시내 곳곳에서 대낮에 손가방을 뺏고 휴대전화를 날치기하는 광경을 TV 뉴스로 보지 않았는가. 지카바이러스 공포에 경제 사정 악화로 개막식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 8월 6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 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 에서 화려한 불꽃과 함께 평화의 상징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리우는 올림픽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류의 축제이며, 그래서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화려한 돈잔치가 아닌 진정 지구촌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마당임을 증명했다. 2008년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와 2011년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남수단이 처음으로 참가했고, 유럽의 아주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과 산마리노, 안도라 선수들도 입장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난민들까지 ‘하나의 팀’으로 나오게 해 올림픽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난민팀 참가 · 반달레이 데 리마 성화 최종 주자
리우올림픽 지구촌 화합의 마당
그뿐인가. 리우올림픽은 성화 점화의 주인공으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골인 5km를 남기고 갑자기 뛰어든 괴한의 습격으로 선두 자리를 빼앗겼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동메달을 딴 마라토너 반달레이 데 리마를 선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이 끝난 뒤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라는 이름의 명예 메달을 걸어준 그에게 리우올림픽이 성화 최종 주자로 존경을 표한 셈이다.
베이징올림픽과 런던올림픽이 ‘나’와 ‘돈’을 외쳤다면 리우올림픽은 ‘우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거창한 특수효과도, 어마어마하게 돈을 들인 깜짝쇼도 없었지만 인류가 나아갈 방향과 그 방법을 가장 효과적이고 감명 깊게 보여주었다. 참가 선수들 모두가 한두 알씩 심은 씨앗이 거대한 숲을 이루는 것을 보고, 브라질의 광활한 대자연과 다인종의 공존 역사를 보면서 인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존중과 공존과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어떤 화려한 쇼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개막식 비용 약 55억 원. 2008 베이징올림픽의 20분의 1, 2012 런던올림픽의 12분의 1 수준이었지만, 인류에게 준 메시지와 감동은 장이머우(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총감독)의 장대한 스케일의 화려한 오리엔탈 쇼보다 훨씬 컸다. 올림픽 개최의 성공과 감동은 돈이 아니라 국민들이 진정으로 화합하고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며, 인류의 평화와 미래를 함께 고민할 때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아름다운 마음의 리우올림픽이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글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