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중학생이 일렬횡대로 걸어오고 있다. 모두가 짧은 교복치마 차림에 앞머리를 둥글게 말고 얼굴에는 풀 메이크업을 했다. 정성을 다한 티가 역력하건만 앳된 데다 교복이 받쳐주지 않아선지 뭔가 어색하다. 그러한들 못 본 척 지나치는 게 상책이다. 쳐다본다 싶으면 찌를 듯 당당한 눈빛이 돌아올 테니까. 한 아이의 마음의 소리가 내 귀에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다. 왜요, 아줌마?
# 장면 2. 제한된 공공장소에서 동영상이나 음악을 보고 들으면서 여과 없이 음향을 내보내는 ‘무개념’이 왕왕 있다. 주위에서 힐끗힐끗 무언의 항의를 보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저기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잖아요”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 어떤 험악한 대꾸가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교적 낮은 수위의 반발을 예상하자면 이런 정도겠다. 시끄러우면 그쪽이 이어폰을 끼시든가.
# 장면 3. 자주 이용하는 좌석버스의 어떤 기사는 내가 차에 오를 때부터 내릴 때까지 한 시간 남짓 쉬지 않고 전화로 수다를 이어간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니 문제다. ‘저희 운수 기사는 운전 중에 통화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결의에 찬 준수사항은 왜 붙여두었을까. 하물며 ‘운전에 방해가 되니 통화는 뒤쪽에 가서 작은 소리로 하시오’라는 경고문까지 붙여놓았다는 사실은 잊은 걸까. 다른 승객은 별말 않는데 혼자 유별 떤다며 되받아칠까 겁나서 통화 중지를 요청하지도 못한다. 안전벨트는 위로가 못 된다.
언제부턴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할 때가 많아졌다.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눈 감고 귀 닫고 입도 다문다. 과자봉지나 휴지를 함부로 버린 아이를 타이르는 일도, 가로수 아래 옹기종기 모여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눈치 주는 일도, 밤새 쿵쾅거리는 윗집에 주의를 부탁하는 일도 삼갈지니. 그저 끙끙거리며 ‘참을 인(忍)’ 자의 탑을 쌓을 뿐이다.
어쩌다 이렇게 간이 콩알만 해졌을까. 꼰대짓한다는 비웃음 때문이 아니라 돌발적인 완력에 대한 공포감이 커진 까닭이리라. 사소한 말다툼만으로도 대명천지에 칼에 찔려 죽거나, 가만히 지나가다가도 다짜고짜 두들겨 맞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만만해 봬는 여자(!) 주제에 공연히 한마디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뉴스를 시청하는 데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온갖 살벌한 사건들, 어처구니없는 사고들, 정치권과 이권단체의 이합집산 및 유치찬란한 몽니들, 비열한 ‘갑’들의 경악할 언사와 행태들, 가공할 증오범죄 또는 이별범죄들…. 보도를 접할 때마다 뭍으로 끌려나온 물고기처럼 심장이 팔딱팔딱 뛴다. 공포영화나 엽기소설은 픽션이라고나 하지, 뉴스가 전하는 세상은 생생한 현실인지라 동시대인으로서 받는 고통이 크고 상처가 깊다. 누구 탓, 세상 탓으로만 돌린다면 꼰대짓하지 못하는 비겁보다 더 비겁한 변명일 테다. 이 땅에서 살아온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이 모양이다. 그러니 내 탓이요, 우리 모두의 탓이다.
어느 산중에는 벌써 하얀 눈 내려 겨울이 들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잠언은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인간에 대한 절망감이 깊어지다 못해, 도대체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가라고 자조하는 슬픈 시간이 찾아오지 않기를. 쓴소리 못하는 겁쟁이가 되고서도 안타까이 바라는 마음만은 이러하다.
정길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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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