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팬들에게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건국 이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레슬링 양정모와 여자배구 조혜정을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몬트리올올림픽이 끝난 뒤 나온 언론 기사에는 온통 양정모와 조혜정의 이야기뿐이었다. 특히 조혜정의 활약으로 배구의 인기는 크게 높아졌다. 선생님들은 체육시간에 허름한 네트를 (국민학생 키에 맞춰) 낮게 달아놓고 배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조혜정은 훗날 여자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프로배구단(GS칼텍스) 감독이 되면서 체육계에서 또 하나의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기록된다. '날으는 작은 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키가 작았는데, 포털사이트의 자료를 찾아보니 164cm로 나온다. 그 작은 키로 월등하게 큰 서양 선수들을 상대로 자유자재로 스파이크를 날리면서 귀중한 동메달을 따낸 것이었으니 한국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음이 분명하다. 그의 별명도 현란한 플레이에 감탄한 외신기자들이 'Flying Little Bird'라고 붙여준 것을 한국 기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몬트리올올림픽으로부터 딱 40년. 오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몬트리올 이후 열 번째 대회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40년 만의 메달에 다시 도전장을 던진다. 이정철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5월 22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2016 리우올림픽 세계예선에서 최종적으로 4승 3패(승점 13)를 마크하면서 리우행 티켓을 따냈다. 세계예선에 나서면서 "4승 이상을 따내면 본선행이 가능하다"고 예상한 이정철 감독의 구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번 대표팀의 핵심은 '네트의 여제'로 통하는 김연경이었다. 주장으로 나선 그는 지난 5년간 터키리그 페네르바체에서 쌓은 노하우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대표팀을 진두지휘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표팀의 강점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상대팀을 공략하는 시발점인 서브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김연경과 김희진의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뿐 아니라 김수지, 박정아의 목적타 서브도 유효적절하게 터졌다.
둘째, 전위의 높이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192cm로 대표팀 최장신인 김연경을 비롯해 양효진(190cm), 김수지(186cm) 등 두 센터의 키가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높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황연주와 염혜선(이상 177cm)을 포함해 블로킹 높이가 290cm를 넘어서는 선수가 7명이나 포함돼 있다.
셋째, 공격 루트가 다양해졌다. 세계적 스타인 김연경에게만 공격 루트가 집중되지 않고 양효진의 속공, 김수지와 김희진의 이동 공격, 박정아의 오픈 공격 등이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상대팀의 블로킹을 흔들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연경을 활용하는 공격 성공률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대표팀의 특징을 분석하다 보면 요소마다 김연경의 이름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연경은 경기력뿐 아니라 주장으로서 선배와 후배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 메이커 구실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테크닉과 멘탈 측면에서 모두 김연경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주장으로서 반드시 메달을 따고 싶다는 ‘네트의 여제’ 김연경 선수
세 완숙미 자랑하는 '네트의 여제'
"두번째 올림픽 리우에서 메달 한 푼다"
이제 관심은 여자배구 대표팀이 리우에서 40년 만에 메달 획득에 성공할 것인지에 모아진다. 조혜정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응원을 보냈다. "스포츠에서 기록은 언젠가 깨지게 마련"이라며 "김연경이 자신의 포인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팀플레이를 알고 팀 전체를 리드하는 모습을 이번 세계예선전을 통해서 봤다. 그런 리더십이 빛을 발휘하면 리우에서도 분명히 메달을 따낼 수 있다"고 격려했다.
김연경이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인 2012 런던올림픽에서 김연경은 대표팀을 4강까지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몬트리올 이후 최고 성적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일본과의 3, 4위전에서 완패하며 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런던 대회에서 김연경은 여자배구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40년 만에 메달 획득에 도전하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맨 왼쪽에 주장 김연경이 보인다.
메달권 밖의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김연경의 경기력이 경쟁 선수들을 압도했다는 뜻이다. 런던에서는 MVP 외에도 득점상을 차지했는데 김연경이 올린 207득점은 2위 선수(147득점)보다 60점이나 많았다. 경쟁 선수들과 차원이 달랐다. 이런 개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따내지 못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런던 대회 당시 24세이던 김연경은 이제 28세의 완숙미를 자랑하고 있다. 4년 전처럼 똑같이 10번을 달고 있지만 번호 밑에는 주장을 상징하는 밑줄이 하나 더해져 있다. 그만큼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는 의미다. 김연경은 "리우가 두 번째 올림픽인데 다시 한 번 기회가 온 만큼 반드시 메달을 따내 4년 전의 한을 풀고 싶다"면서 "런던에서는 선배들이 많았다.
이번엔 어린 후배들이 많은데 주장을 맡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든다. 내가 잘해야 대표팀 경기력이 전체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굳은 각오를 내비쳤다. 40년 전 몬트리올에서 조혜정이 만들어낸 꿈을 리우에서 김연경이 이어받을지 배구 팬들은 오는 8월을 고대하고 있다.
글 · 위원석 (스포츠서울 체육1부 부장) 201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