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놀자'는 모텔, 펜션 등 숙박업소 예약 앱으로 유명한 벤처회사다. 누적 회원 340만 명, 앱 내려받기 횟수 1000만이 넘고, 하루 평균 5만 명이 이용한다. 2014년 연매출 200억 원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엔 그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직원도 200여 명에 이른다. 투자회사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는 야놀자의 기업 가치를 2000억 원으로 평가하고 지난해 7월 100억 원을 투자했다.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 등록된 숙박업소는 5만여 개, 객실 200만 개에 이른다. 현재 야놀자와 업무제휴를 한 곳이 7700여 곳이니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게다가 '코텔'이라는 신개념 숙박업소 직영을 시작했고, 프랜차이즈 사업도 확장 중이다.
▶이수진(가운데) 대표는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업 10년 만에 성공 신화를 일군 '야놀자' 이수진(39) 대표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섯 살 때 어머니가 개가해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담임선생님 도움으로 겨우 한글을 깨쳤다. 중학교 1학년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 쉬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방황하는 것도 사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빨리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공고와 공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했죠."
재테크 서적과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돈 벌 방법을 찾던 그는 직장생활 3년 동안 모은 전 재산 4000만 원을 털어 주식 투자를 하다 모두 탕진했다. 잠잘 곳도 없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원양어선을 타거나 모텔에서 일하는 것뿐이었다.
3년 동안 모텔에서 먹고 자며 모은 돈으로 샐러드 배달업을 시작했지만 6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다이어트와 채식이 유행이라 승산이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착각이었다.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청소하고, 시트 교체하고, 손님 받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에 '모텔 종사자 모임'이란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를 운영하며 숙박업소와 물품 납품업체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하면 되겠다고 판단한 그는 학교 후배 등과 함께 5000만 원을 투자해 물품 견적 서비스 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했다. 대부분 업소에서 기존 거래처를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
"연달아 실패를 겪으면서 난 뭘 해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2005년 3월 1일 '모텔투어'라는 모텔 소개 카페를 운영하던 운영자가 그에게 양수를 제안한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그는 카페를 인수하고, 서울과 근교 모텔촌을 돌아다니며 광고 영업을 했다. 1년여 만에 첫 유료 광고가 성사됐다.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직원들이 전부 경쟁사로 옮겼다. 새로 개발한 카페 플랫폼까지 들고 갔다. 게다가 사용하던 이름마저 경쟁사에서 먼저 상표권 등록을 해버려 쓸 수 없게 됐다. 이름을 바꾸면 신생업체나 마찬가지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들 "망했다"고 했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2006년 10월 '야놀자'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시작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요? 전혀 없었죠. 이번이 마지막이었기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견뎠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버틸 때마다 조금씩 길이 열리더군요."
연이은 실패 뒤 '내가 잘 아는 걸 해야 한다' 깨달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마음이 중요
그는 성공 원인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꼽았다.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안 하면 성공도 없죠. 취직이나 창업을 안 하고 그냥 있어도 배는 고파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똑같이 배는 고프지만 참고 계속하다 보면 전문성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뭔가 먹을거리가 생겨요. 누군가 도와주기도 하고요. 성공한 창업자들을 보면 대부분 버티다 보니까 투자도 받고 결국 성공한 거예요."
그는 요즘 '흙수저'니 '삼포세대'니 하며 자조하는 청년들에게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대학생이나 젊은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취업이 안 돼 힘들다,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하겠다, 맡길 데가 없어 아이를 못 낳겠다…. 그렇다고 조건 다 갖추고 결혼하고 아이 낳으려면 너무 늦어요. '나도 돈이 없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 낳아 잘 키우고 있다'고 하면 대부분 '사장님은 다르잖아요'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지금 청년들보다도 더 가진 게 없었고, 더 절박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결혼하니까 책임감이 강해지고 아이가 생기니까 더 강해졌어요.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생겼죠. 스스로 극복해나가야지 포기한 채 사회구조 타령만 하고 있으면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는 지금 제2의 성공을 위해 '리스타트'를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면, 지금부터는 숙박산업을 혁신해보려고요. 숙박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편의성을 높이고, 운영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거죠. 그래서 연인들의 공간뿐 아니라 비즈니스 고객, 여행자들도 만족스럽게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한 회사가 자신이 속한 산업 분야를 리드하고 혁신하려면 매출 규모가 적어도 1조 원은 넘어야 한다더군요. 솔직히 그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상상이 안 되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매출 1조 원이 넘는다는 전 세계 숙박 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도 처음엔 구멍가게로 시작했거든요."
그의 표정엔 도전 의지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글 · 최호열 (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201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