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한 카페 안으로 중년 여성 여럿이 들어선다. 가방 속을 뒤적이던 그들은 익숙하게 간식거리를 꺼내들어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뒤이어 주문한 음료와 곁들여 담소를 나누는가 싶더니 다 함께 뜨개질을 시작한다. 엄마를 따라 이곳을 찾은 어린아이도 당연하다는 듯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놀이 시간을 보낸다. 여기 ‘우리동네나무그늘(이하 나무그늘)’만의 풍경이자 존재 이유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우리동네나무그늘’에서 뜨개질에 한창인 주민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우리동네나무그늘’에서 뜨개질에 한창인 주민들](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8.12/16/20181216213855936_AS02EZYC.jpg)
▶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우리동네나무그늘’에서 뜨개질에 한창인 주민들 ⓒC영상미디어
나무그늘은 지난 7년 동안 수많은 주민들의 땀과 웃음, 눈물로 일궈온 공간이다. 해체되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지역 활동가들이 2011년 지역주민 중심의 거점을 꾸렸다.
“과거에는 이웃 주민과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노는 게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는데 이젠 각자도생의 사회잖아요. 시대 흐름에 따른 사회적 변화라지만 ‘공동체 가치’를 너무 잃는 게 아닐지 걱정이 돼요. 더 많은 지역 사람들과 마주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겠더라고요.”
![나무그늘 입구 상단에 조합원의 명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나무그늘 입구 상단에 조합원의 명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8.12/16/20181216214009222_K2WIIP2A.jpg)
▶ 1 나무그늘 입구 상단에 조합원의 명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2 서울 마포구 내 사회적기업이 제작한 물품을 모아 판매하는 공간 ⓒC영상미디어
창립 멤버들은 공동체 공간으로 지역 단체 사무실을 조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득 ‘주민들이 사무실에 자연스럽게 오고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불어 사무실 임대료를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멤버들은 카페 성격의 공간이 이 두 가지 고민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정종현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이사장은 “(나무그늘은) 여느 카페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게 드나들고 그렇게 생긴 수익으로 임대료를 내는 카페이자 협동조합 또는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라고 했다.
협동조합원은 200여 명. 30여 명으로 출발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조합원임과 동시에 나무그늘의 주인이기도 하다. 카페 입구 상단에 달린 조합원의 숱한 명패가 그 의미를 상징한다. 조합원 모두 이 가게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자신의 가게처럼 생각해도 된다는 것이다.
나무그늘은 조합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동네 카페다. 정종현 이사장은 “꼭 마포구 주민만 해당하는 공간이 아니라 실재하는 장이 존재함으로써 이곳에 오는 누구나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무그늘을 찾는 사람 중 인근 주민은 40%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합이 바라는 공동체는 마을에서 나아가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사회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능 품앗이·주민 강좌·지역 축제 등
사람들은 배우고 싶은 것을 나무그늘 안에서 이웃과 함께 습득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일종의 재능 품앗이인 셈이다. 불공정한 계약, 부당한 근로조건, 재개발·재건축 때문에 받는 불이익과 관련해 생활법률상담도 가능하다. 일상에 필요한 생활밀착형 강좌, 음악회 등도 나무그늘에서 열린다. 마을 엄마들의 육아모임 ‘마더센터’도 만들어졌다. 아이와 엄마가 한데 모여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고 공동으로 풀어나가는 형태로, 독일 마더센터를 벤치마킹했다.
![나무그늘에서는 배우고 싶은 것을 이웃과 함께 습득하는 일종의 재능 품앗이가 이뤄진다. 나무그늘에서는 배우고 싶은 것을 이웃과 함께 습득하는 일종의 재능 품앗이가 이뤄진다.](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8.12/16/20181216214103544_1TJDM6L4.jpg)
▶ 1 나무그늘에서는 배우고 싶은 것을 이웃과 함께 습득하는 일종의 재능 품앗이가 이뤄진다. ⓒC영상미디어
2 생활밀착형 강좌, 음악회 등도 나무그늘에서 가능한 활동이다.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3 우리동네나무그늘이 그리는 지역 공동체 모습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해마다 진행되는 ‘소금꽃마을축제’는 나무그늘의 지향점과 맞닿은 주요 행사다. 주민들이 매년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을 통해 더불어 사는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 ‘소금꽃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염리동 일대에 전국의 소금이 모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금이 모였던 것처럼 주민들 마음도 결집해 꽃을 피우자는 의미다. 노동하는 사람의 옷에 밴 땀자국을 ‘소금꽃’이라 하듯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뜻도 담겼다.
“축제에 참여하는 지역·사회단체들이 늘어났어요. 그러다 보니 이들과 함께 1년에 한 번 축제를 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일상에서 같이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지역공동체로서 정보도 공유하고 사업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소금꽃마을네트워크도 생겼고요.”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은 2013년, 2014년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마을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한 수익사업을 통해 공동 지역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공동체 이익을 실현하는 마을단위의 기업을 가리킨다.
마을기업의 면모는 카페 내부에서 쉬이 보인다. 조합원이 내놓고 싶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작은 공간 ‘소금꽃장터’, 서울 마포구 내 사회적기업이 제작한 물품을 모아 판매하는 ‘희망키움샵’이 대표적이다.
다만 지역공동체 장(場)으로서 역할과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서 역할을 모두 극대화하기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았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일반 카페와 같은 수익을 낸다는 게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인건비, 임대료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인건비 문제는 조합원들이 틈날 때마다 카페 스태프를 하겠다고 자원해서 개선할 수 있었지만 임대료는 부침을 거듭했어요.”
2년 전 현재 위치로 매장을 이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전에는 대로변 1층에 자리 잡았던 반면 지금은 다소 눈에 띄지 않는 2층 자리다. 보증금 3000만 원은 1억 원까지, 월세 290만 원은 3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5년 동안 다져온 공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더했고 이전 위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나무그늘이 사라지는 건 막았지만 유모차, 휠체어를 끌고 오던 사람들의 접근성이 떨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때 너무 서러워서 다들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우리 건물 안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주변 시세를 확인하고선 정말 꿈같은 바람이란 걸 곧 깨달았죠. 때마침 시민 자산화 이슈를 접하게 됐어요. 우리가 새롭게 도전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시민 자산화는 다수 주민이 공동으로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이로 인해 이익이 발생하면 그것을 공동체에 다시 투자하는 개념이다.
“영국이 좋은 사례예요. 영국에도 저희 같은 협동조합, 주민 자치 공간이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펀딩 기금을 하는 등 다양한 통로로 비용을 마련해 공간을 지켜냈죠.”
영국 런던의 ‘아이비하우스’는 영국 최초로 이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펍이다. 펍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당시 주민 80여 명이 모여 지역공동체를 조직하고, 이들은 공동체 주식을 발행해 지역주민 투자자를 유인했다. 또 사회적 투자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펍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동네나무그늘’은 주민들의 투표를 거쳐 지어진 이름이다. 소통의 공간인 한편 쉼터로서 기능에 대한 기대감, 달라질 동네 모습에 대한 설렘이 녹아 있다.
“골목이 안전하면 마음 놓고 아이들을 내보낼 테고 골목이 활기를 찾으면 상점들도 덩달아 장사가 잘될 겁니다. 결국 이웃이 협력해서 만드는 마을기업은 사람 사는 재미로 가득한 마을을 만들 거고요. 우리동네나무그늘의 목표입니다.”
마을기업 요건과 사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마을기업 요건은 기업성, 공동체성, 공공성, 지역성 등 크게 네 가지다. 우선 마을기업은 각종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경제조직이어야 한다. 단순히 공익만 추구하는 비영리 사회단체나 조직은 마을기업으로 부적합하다.
마을기업은 출자자 개인의 이익과 마을기업 전체의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 마을기업 회원 외에도 구매자, 소비자, 고용자 등 지역주민 및 지역 내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며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또 사업계획과 운영 방침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스스로 결정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마을기업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운영돼야 한다.
옛 구로공단 지역 장인들은 서울 관악구 봉제 생산 공동체 베블리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16년 인연을 맺은 봉제 전문가들이 이듬해 관악구 마을기업 실행지원사업센터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거쳐 조합을 설립했다. 주요 사업은 친환경 유아용품 제작이며, 이 밖에도 지역 청소년 대상 미싱 교육, 저소득층 대상 무료 수선을 계획하는 등 지역과 같이 발전하는 협동조합을 꿈꾼다.
서울 중랑구 느티나무그늘아래평상은 주민들을 위한 식당이자, 술집, 모임공간으로 꽃망우리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을기업이다.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소통이 활기를 띠면서 공동체 기반 지역 성장의 필요성에 따라 탄생했다.
‘평상’은 시골 마을 어귀에 하나씩은 있을 법한 그런 편한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누구나 와서 쉬다 가고 술 한 모금 들이켤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동네 기존 상권을 해치치 않기 위해 낮에는 백반 가게, 저녁엔 맥주 가게가 된다. 평상의 수익은 전액 망우동 교육복지기금으로 쓰인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도시마을방역협동조합은 해충 없는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가정과 사무실, 사업장 등의 소독방역작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한 가정이나 사업체가 방역을 신청하면 취약계층에게는 무료 방역이 진행되는 ‘해충 방제서비스 1+1’은 마을기업으로서 지역 발전에 공헌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