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요맘때 다녀오는 가평 민박집이 있다. 관광객들의 동선에서 벗어나 있어 한적할 뿐 아니라, 해발고도가 높아서 굳이 등산을 하지 않아도 탁 트인 절경을 밥상머리에서 만난다. 가는 길에 어느새 단골이 된 양어장에 들러 송어회 한 마리 떠서 가면, 이 게으른 여정의 8할이 완성된다. 게다가 지금이 어느 때인가. 단풍 시즌의 가운데토막이다. 민박집의 너른 통창 밖으로 울긋불긋한 산자락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아내는 경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젓가락질도 까먹는다.
첫날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산촌에 해가 지면 그대로 밤이다. 곧장 칠흑 같은 어둠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어. 시골에 왔으니 우리도 해 떨어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고 그러자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걸 머쓱해 하는 나를 향해 아내가 채근했다. “막상 자리에 누우면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 곤히 잘 거면서 그런다”는 소리도 보탰다.
아내 말이 맞다. 남들은 등산하러 산에 간다는데 나는 잠자러 산에 가는가 보다. 소음 없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는 잠은 그만큼 달고 깊다. 보나마다 아침 햇살이 머리꼭지를 간질일 때까지 곯아떨어지게 될 것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그런데 새벽녘, 어둠을 뚫고 이상한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처음엔 고막만 때렸을 뿐 대뇌까지 닿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십 번을 되풀이한 끝에, 뇌의 인지시스템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청각 신호를 해석하기로 결정했던가 보다. 나를 괴롭히던 그 정체불명의 소리가 어느 순간 사람 목소리, 그것도 다급하게 외치는 “살려주세요!”로 들린 것이다.
눈이 번쩍 떠졌다. 같은 순간, 아내도 잠이 깼던가 보다. “들었어?” 아내는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어쩐지 기분이 으스스했다. 누굴까. 이 밤중에. 산속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걸까. 설마 못된 사람들에게 폭행당하는 건 아니겠지? 살려달라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걸 보니 그건 아닐 성싶다. 제법 먼 데서 외치는 목소리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울리는 건 상해를 입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난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계곡 건너편에는 제법 큰 요양병원이 들어서면서 등산로를 정비해 조난을 당하려야 당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들은 게 살려달라는 소리가 맞다면, 병원 측에서 벌써 달려가지 않았겠는가. 아내와 나는 어둠 속의 고함 소리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어보기로 했다. 과연 ‘살려주세요’라는 말 앞에 잘 들리지 않는 삼음절의 단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그 단어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인 끝에 휴대폰의 119 버튼을 눌렀다. 그 앞에 무슨 단어가 오든, 살려달라는 요청을 뒤집을 수 있는 말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아까 신고하신 분이시죠?” 경찰은 한참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정확히 소리 나는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자기네 환자는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더란다. “출동해보니 조난은 아니고요. 근처에서 요양하는 분인데 기도를 하신 거랍니다. 그렇게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시면 안 된다고 주의는 드렸는데,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거 같기도 해서….”
그러니까 신을 향해 ‘나를 살려내라’며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는데, 엉뚱하게 하느님도 아닌 우리가 응답했던 모양이다. ‘살려주세요’ 앞에 있던 요령부득의 삼음절은 그의 이름이었던가 보다. 수수께끼가 허탈하게 풀렸다. 어쩐지 힘이 쭉 빠졌다. 밤새 신을 향해 살려달라며 멱살잡이도 해보고 매달려도 보았을 그 마음이, 산자락의 운무로 먹먹하게 차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왜 이리 간절하고 누군가에게는 왜 이리 무거운가, 인생이란. 멀리서 빨간 해가 잰걸음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구승준 번역가·칼럼니스트